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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을 넘어선 희귀한 리메이크,<이탈리안 잡>
박은영 2003-09-30
■ Story

베니스에서 수천만달러 상당의 금궤를 훔쳐낸 찰리(마크 월버그) 일당은 ‘이탈리안 잡’의 성공을 자축하지만, 함께 일했던 스티브(에드워드 노튼)에게 금을 빼앗기고 목숨도 위협받는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찰리는 조직의 아버지격인 존(도날드 서덜런드)의 죽음에 크게 상심하며, 스티브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1년 뒤 스티브의 거취를 확인한 찰리 일당은 금궤를 되찾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금고 전문가로 활약 중인 존의 딸 스텔라(샤를리즈 테론)까지 가세하면서, 이들은 최강의 팀으로 거듭나지만 스티브의 방어와 역습 또한 만만치 않다.

■ Review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조직을 배신한 남자에게 또 다른 이가 선전 포고를 하는 중이다. 스승의 가슴에 총탄을 날리고 함께 나눴어야 할 금궤를 독차지해 배를 불린 배신자는 옛 동료의 도전장을 비웃는다. “난 보디가드도 많고, 첨단보안 시스템도 있어. 그래, 내 금을 어떻게 되찾아갈 작정이지?” 그러나 도전자의 여유로운 웃음. “네 문제가 뭔지 알아? 넌 상상력이 부족해.”

<이탈리안 잡>의 이 장면은,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작품에 대한 자부심의 발현으로 비친다. 수억달러를 호가하고, CG와 특수효과가 배우의 기여도를 앞서지만, 눈이 번쩍 띄는 개성이나 여운은 증발된, 이즈음 액션블록버스터에 대한 경고 또는 불만. 1969년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라는 정보도 이러한 자신감에 찬물을 끼얹지는 못한다. 유난히 많은 속편과 리메이크가 쏟아져나온 올해, <이탈리안 잡>은 오리지널의 재미와 완성도를 넘어선 희귀한 리메이크,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오락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이탈리안 잡>은 조직 내의 배신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답을 붙들고 오래 뜸들이지 않는다. 베니스 운하에서의 금궤 강탈 작전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알프스 설원에서 샴페인을 나눠 마시며 자축연을 벌이기가 무섭게, 일당은 ‘내부의 적’의 배신과 반란을 마주하고 경악한다. 자신들의 정신적 지주를, 자랑스런 전리품을 앗아간 배신자에 대한 복수와 응징은 당연한 수순. 일찌감치 천기를 누설해버린 플롯은 이제 ‘어떻게’라는 물음 앞에서, <제5전선> <오션스 일레븐>류의 ‘앙상블’드라마로 방향을 선회한다. 참, 깜박 잊고 있었네, 하는 식으로 캐릭터 개개인에 대한 소개가 뒤늦게 이뤄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이들이 저마다 다른 개성과 재주를 지닌 것은 당연한 일이다. 타고난 도둑이자 뛰어난 전략가인 찰리, 뭐든 척척 해킹하는 컴퓨터 천재 라일, 광란의 질주와 이성 유혹의 달인 롭, 폭파 전문가 짝귀로 이뤄진 드림팀은 배신자의 총탄에 급사한 금고털이 존의 빈자리에 그의 딸 스텔라를 앉히며 전열을 갖춘다. “기술, 동기, 복수심”이 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힘. 탐욕스러운 배신자 스티브와의 두뇌전과 심리전도 진땀나게 묘사돼 있는데, 감독 게리 그레이가 <네고시에이터> <셋 잇 오프>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캐릭터 내면 묘사와 조화가 관건인 앙상블 액션에 주력해온 그의 재능과 소신에 고개를 주억거리게 될 것이다.

CG와 특수효과에 기대지 않고 철저히 아날로그적으로 만들어낸 액션장면들 역시 ‘사람 냄새’를 풍긴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위층의 금고를 빼내려 층층이 폭탄을 설치해 건물 밑 수로로 빼내는 도입부부터 소형 자동차인 미니 쿠퍼 3대가 지하철 역사와 선로에 뛰어들어 전동차를 앞질러 질주하는 하이라이트 추격신까지, <이탈리안 잡>의 액션은 시종 아이디어와 손맛으로 승부한다. 이런 장면들을 가리켜 <LA타임스>가 “빠르고 거친(fast and furious) 액션으로 가득한, 영리하고 정교한 여름영화”라고 추어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안 잡>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은 상당 부분 <오션스 일레븐>을 참조한 듯한 혐의 때문이다. 캐릭터와 이야기 구성은 물론, 음악이나 화면 전환 기법 등에서도 <오션스 일레븐>이 겹쳐 떠오르곤 하는 것. <오션스 일레븐>이 구미에 맞았던 관객이라면, <이탈리안 잡>의 캐릭터가 평면적이고 스토리가 단순하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이런 허점을 덮는 미덕 또한 갖추고 있다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건 바로 액션영화에 취미가 없던 이들을 스크린 앞으로 바짝 다가앉게 할 만한 재기와 유머를 갖췄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안 잡>은 그런 의미에서 액션영화의 새로운 경지다.

:: 배우들의 앙상블

아기자기한 재미와 놀라움 선사

<이탈리안 잡>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오션스 일레븐>처럼 배우들의 인원이 많지도, 그 면면이 화려하지도 않지만, 티코만한 몸집의 미니 쿠퍼 몇대로 연출된 스펙터클처럼 이들의 팀워크는 아기자기한 재미와 놀라움을 선사한다. 조직의 리더 찰리 역할의 마크 월버그는 아무래도 카리스마와 임팩트는 부족해 보이지만, 앙상블 드라마라는 전체적인 틀 속에서는 잘 어우러지는 편이다. <프라이멀 피어> 이후 <파이트 클럽> 등 분열적인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온 에드워드 노튼이 비열하고 탐욕스런 배신자 스티브 역할을 맡았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함께 빼돌린 금궤를 혼자 차지한 것으로도 모자라 알프스 얼음 호수로 가라앉은 동료들의 차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잔인무도한 악당의 얼굴을 보여준 에드워드 노튼은 젊은 날의 숀 펜을 연상시킨다. 이들 두 주연배우가 다소 타입 캐스팅됐다는 느낌을 준다면, 조직의 홍일점인 스텔라 역의 샤를리즈 테론은 그 반대다. 아름답지만 나약하고 수동적인 여인의 인상이 강했던 샤를리즈 테론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미니 쿠퍼로 지하철 역사를 질주하고 금고를 열어젖히는 등의 터프한 매력을 발산한다. 알트먼의 에서 이스트우드의 <스페이스 카우보이>까지 선 굵은 연기를 선보여온 베테랑 연기자 도널드 서덜런드는 스텔라의 아버지이자 찰리의 정신적 지주였던 금고털이 존 역으로 짧고 굵게 출연한다. 식인상어 영화 <딥 블루 씨>에서 새뮤얼 잭슨이 영화 초반에 어이없게 죽어버린 데 비견할 만한 난데없는 죽음은 충격적이지만, 아버지처럼 도인처럼 팀원들을 리드하던 그의 모습은 긴 여운을 남긴다. 찰리의 친구이자 동업자들로 출연한 배우들의 개성도 빛난다.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을 도난당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컴퓨터 천재 라일 역의 세스 그린은 예의 그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팀의 ‘브레인’ 역할을 톡톡히 한다. 우디 앨런의 <라디오 데이즈> 등에 출연한 아역배우 출신으로, 인기 TV시리즈 <버피와 뱀파이어>에 고정 출연했고 <오스틴 파워> 시리즈에서 닥터 이블의 버림받은 아들로도 얼굴을 알린 바 있다.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 <스내치> <트랜스포터> 등에서 무뚝뚝한 남성미를 과시한 바 있는 제이슨 스태덤이 자동차 레이싱과 여자 유혹이 특기인 ‘핸섬’ 롭으로, <몬스터볼> <쇼타임> 등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모스 데프(Most Definitely에서 따온 이름)가 사고로 한 귀가 멀어버린 폭파 전문가 짝귀로 ‘맞춤’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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