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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의 신파

영화사가인 고 이영일 선생은 한국전쟁, 우리 식으로 말해서 6·25사변이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지표면의 모든 것이 깡그리 무너져서 새롭게 세워져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상상해본 이미지는 정말 놀랄 만했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나서 선생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때 무너진 “지표면의 모든 것”이란 산야와 도시와 건축물만이 아니었다. 우리 몸의 피와 살, 인간 정신을 유지시키는 정서와 믿음 체계, 삶의 기반으로서의 가족, 대의명분으로서의 국가 윤리, 이 모든 실존의 기반이 산산이 흩어졌던 듯하다. 한국의 근대는 혹시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두려움과 증오, 죄의식과 그리움으로 뒤범벅된 남한과 북한의 괴물스러운 집단의식에 마음을 열고 접근할 수 있는 심리적인 기반을 영화로부터 선물받은 느낌이다.

남동철 기자의 지적대로 <태극기 휘날리며>는 스펙터클과 가족멜로라는 장치를 대담하고 효과적으로 구사하면서 시장 소구력에 관한 한 “지금 한국영화가 갖고 있는 잠재력의 최대치”를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우리에게는 여러 갈래의 숙제가 던져질 테고, 기왕이면 다각도의 논점들이 형성되면 좋겠다.

지금 나에게 가장 의미있게 여겨지는 것은,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실미도> 등 흥행의 역사를 다시 쓴 대부분의 영화들이 분단의 상처와 연루되어 있고 <태극기 휘날리며>에 이르러 그 상처의 기원이 대폭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놀랍게도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집단적인 상처를 살풀이하는 중이며, 영화는 그런 상상적 해원을 가능케 하는 무당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이래로 가족 멜로드라마가 기본 틀을 이루는데, 이것이 흔히 ‘신파’라고 부르는 장치이자 효과로서 카타르시스 작용을 담당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사회장에서 주연배우인 장동건씨가 얼굴을 감싸쥐고 흐느낀 것을 예사롭게 볼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신파는 한국의 대중과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로서 중요하게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