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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르고 음습한 유혹의 기술, <영 아담>
박은영 2004-11-30

태초의 아담 혹은 <이방인>의 뫼르소가 된 이완 맥그리거, 검푸르고 음습한 욕망에 몸을 내던지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떠돌아다니는 신세로, 글래스고와 에든버러를 오가는 부부의 바지선에 일꾼으로 고용돼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강에서 젊은 여자의 익사체를 발견한다. 얇은 속치마만 걸친 채 떠내려온 여자의 허옇게 불어터진 시신. 그는 남몰래 시신의 등을 쓰다듬고, 경찰의 들것에서 떨어진 여자의 다리를 응시한다. 그녀는 사고를 당한 것일까, 자살한 것일까, 살해당한 것일까. 범죄스릴러의 모양새로 시작하는 <영 아담>은 뜻밖에도, 범인의 정체와 사건의 진상을 풀어가는 과정에 집중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담이 아니라 조다. ‘영 아담’이라는 제목은 그러니까, 인간의 선과 악, 본성과 실존의 문제를 건드리는 영화가 될 거라는, 가장 직접적인 힌트다.

여인의 익사체를 발견한 건 ‘계기’에 불과하다. 이때부터 바지선 남녀의 ‘캐릭터 반전’이 시작된다. 수줍고 우직해 보이던 그 남자 조(이완 맥그리거)는 노골적으로 바지선의 여주인 엘라(틸다 스윈튼)를 유혹한다. 엘라가 남편 레스(피터 뮬란)와의 부부관계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차린 직후다. 무표정하고 신경질적인 엘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를 받아들이고 밀애를 즐긴다. 벗은 채로 자고 있는 둘을 발견하고 돌아선 남편의 발자국 소리에도 “자기가 왔다는 걸 알리려고 저런다”며 태연자약하다. 전형적인 뱃사람으로 보이는 레스에겐 익사체를 발견한 것이 대단한 자랑거리다. 지역신문에서 자신을 언급한 사실에 들떠 축배를 들 정도로 삶이 무료한 남자.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지만, 아내의 소유인 바지선을 떠나야 하는, 무력하고 유순한 남자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조의 ‘이면’이다. 엘라와 관계를 맺는 와중에, 조는 또 다른 여자 캐시(에밀리 모티머)를 생각한다. 엘라와의 관계가 위험수위를 넘어서면서, 캐시와의 관계도 위태롭게 끓어오르는데, 어느 순간 캐시가 조의 현재가 아니라 ‘과거’라는 것이 드러난다. 이건 일종의 ‘트릭’이다. 순서대로 진행되는 사건이라는 듯 직렬로 엮은 에피소드에 그만이 알고 있는 과거의 플래시백이 오락가락 끼어들어 있다. 그러니까 관객은 철저하게 주인공 조의 시선, 그의 기억과 경험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는 유혹의 기술을 타고났고,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빠져든다. 그는 자신을 변명하지 않고, 영화도 그를 규명하지 않는다. 그의 ‘성욕’과 ‘죄의식’을 보여주지만, ‘도덕’과 ‘윤리’를 말하지는 않는다.

조는 성적 일탈을 통해 기성사회에 저항하는 것인가?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강가에서, 바닷가에서, 트럭 밑에서, 뒷골목에서 여자를 품고, 매질 뒤에 커스터드 소스와 케첩을 뿌리고 강간하는 그의 행동은, 많은 평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데자뷰로, 성욕으로 나타나는 자아도취와 허무를 닮아 있다. 감독 데이비드 매켄지는 카뮈의 <이방인>에 영감을 받아 <영 아담>을 쓴 비트 세대의 대표 작가 알렉산더 트로키의 ‘스피릿’을 이어받았다. “도덕적 회색 지역을 탐색하는 경험, 비도덕적인 도덕의 이야기”라는 수수께끼 같은 변은, 그 자체로는 명료한 설명이다. 하지만 어떤 ‘태도’와 ‘입장’이 없어서인지, 다소 장황하고 느슨해지는 결론 때문인지, 허탈하고 찜찜한 뒷맛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퍼즐 같은 이야기 구성과 더불어 <영 아담>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영상과 연기의 힘이다. 음악과 대사를 아끼는 대신 영화는 천천히 전진하는 바지선, 옆으로 갈라지는 물살, 차고 푸른 물안개, 운하의 검은 그림자를 반복적으로 공들여 보여준다. 느리고 조용하고 서정적인 이런 풍광들은 이상하게도 아주 강력한 힘으로, 보는 이를 정체 모를 긴장과 불안과 슬픔으로 밀어넣는다. 스토리와 주제를 ‘육화’한 영상은 꿈결처럼 혼란스럽고 또 모호하다. 2차대전 직후 궁핍하고 무료하고 우울한 스코틀랜드의 일상은 에덴(낙원)이 아니고, 여자들을 유혹하고 착취하는 조는 이브 때문에 타락한 아담이 아니다. 미국에서 NC-17등급을 받아 제한 상영할 정도로 적나라한 섹스신을 연출한 것은 물론, 비겁하고 이기적이지만 사악하지는 않은 ‘경계의 인간’이 되어 나타난 이완 맥그리거의 열연이 돋보인다. 그가 틸다 스윈튼(<올란도>), 피터 뮬란(<내 이름은 조>) 등 영국의 국가대표급 배우들과 엮어낸 연기 ‘앙상블’은 <영 아담>의 가장 큰 미덕이다.

:: <영 아담>의 원작자 알렉산더 트로키

삶과 문학을 마약과 공유한, 평가절하된 작가

<영 아담>은 1954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돼 컬트가 된 소설이다. 헤로인 중독으로 떠돌며 살았던 알렉산더 트로키의 첫 소설이자, 그의 최고작으로 일컬어진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트로키는 2차대전 이후 과격하고 반항적이고 자극적인 문학을 추구했던 비트 세대 작가이지만, 생전에 인정받지는 못했다. 90년대 후반 <트레인스포팅>을 계기로 불어닥친 비트 문학 열풍으로 차츰 주목받기 시작한 그는 <영 아담>이 영화화되고 각종 영화제에 소개된 지난해 즈음부터 영국권에서 ‘재평가’되고 있다.

1925년 태어나 공황기에 글래스고에서 성장한 트로키는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열여섯살에 어머니를 잃은 충격으로 트로키는 삶과 관계에 있어 영원하고 견고한 건 없다고 비관하게 됐고, 이는 이후 그의 생활과 작업방식, 작품의 주제에도 반영됐다. 50년대 초 파리로 건너간 그는 아방가르드 문학잡지 <메를린>을 창간하고, 사뮈엘 베케트 등 당대의 중요 작가들과 교분을 쌓았다. 코카인과 헤로인에 중독된 그는 생계를 위해 포르노 소설을 쓰고, 잡지사를 운영하던 중에 첫 장편소설 <영 아담>을 내놓았다. 당시 출판사의 요구로 섹스신을 잔뜩 추가하기도 했지만, 훗날 대부분 삭제했다고 전해진다. 실존주의 스릴러 <영 아담>은 가족을 버리고, 애인을 착취하고, 유랑하며 살았던 트로키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반자전적 소설로, 보수적이고 금욕적이면서도 가십을 좋아하고 타인에게 가혹한 전후 기성사회의 위선을 고발하고 있다. “이건 중독에 관한 이야기다. 원작자 트로키는 헤로인 중독자였고, 내가 연기한 조는 섹스에 중독돼 있다”는 것이 이완 맥그리거의 감상평. 이후 뉴욕에서의 생활을 담아내놓은 <케인스 북>도 주목을 받았지만, <영 아담>만큼은 아니었다. 트로키의 삶과 문학은 마약과 불가분의 관계다. 그는 “미지의 정신세계를 탐사하고 실험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헤로인 사용을 정당화하고, 그 효과를 전도하기도 했다. 마약 거래 혐의로 캐나다로 탈주해 생활할 당시, 무명 시인이던 레너드 코언에게 과다한 아편을 제공해 죽음 직전까지 몰고간 사건이 한 예다. 국가주의와 금욕주의를 설파한 작가 휴 맥디아미드와의 불화도 유명한데, 그는 트로키에게 “코스모폴리탄 쓰레기! 문학적 재능이 조금도 없는 인간”이라고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적이 많은 탓인지 84년 폐렴으로 사망한 뒤에 화장한 유골함이 분실되고, 집이 불에 타 작품이 손실되는 등 사후에도 수난을 겪었다. “전후 스코틀랜드의 가장 뛰어나고 가장 평가절하된 작가”라는 그의 작품들은 안타깝게도, 아직 한국에 소개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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