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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선댄스영화제 결산 [2] - 집행위원장, 프로그래머 인터뷰
글·사진 문석 2005-02-22

“우리는 초심을 잊은 적이 없다”

제프리 길모어 집행위원장 인터뷰

-1985년 시작된 선댄스는 올해 21회를 맞았다. 초기와 비교하면 변화도 많았을 것 같다.

=일단 규모가 커진 것은 틀림없다. 인디영화계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커졌기 때문이다. 인디영화라 하면 인디펜던트 스튜디오의 영화가 있고, 스튜디오의 인디영화도 있으며, 그냥 인디영화도 있고, 저예산영화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인디영화라는 스펙트럼을 이루는 구성요소다. 독립영화계와 선댄스는 함께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처음 시작했을 때의 정신을 버린 적이 없다. 이번 상영작 중 51편이 데뷔작이며, 상영작 중 절반은 50만달러 이하, 80%는 100만달러 이하의 제작비로 만들어졌다. 우리는 처음과 같은 기치를 걸고 새로운 영화와 감독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쿠엔틴 타란티노나 케빈 스미스, 리처드 링클레이터 등 슈퍼스타를 배출한 것에 비하면 요즘은 슈퍼스타가 부재한 것 아닌가.

=그 이후도 마찬가지다. 데이비드 O. 러셀, <사이드웨이>의 알렉산더 페인, 그리고 브라이언 싱어에서 케빈 스미스까지. 더이상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감독들이 선댄스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들이 중요한 감독의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것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올해는 월드 시네마 섹션이 새로 생겼다.

=그동안 선댄스는 항상 미국 외의 해외영화를 상영해왔다. 하지만 그 영화들은 작품에 걸맞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언론과 평론가들은 경쟁부문에 대해서만 항상 주목하고 떠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부터 월드 시네마 경쟁부문을 만들었다. 경쟁부문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선댄스가 다큐멘터리와 인디 극영화의 플랫폼이 돼왔다면 이젠 해외영화를 위한 플랫폼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외영화가 미국에서 더 잘 팔릴 수 있는, 그리고 새로운 해외감독이 좀더 많이 소개되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외부인들은 선댄스가 지나치게 시장 지향적이라고 말한다.

=언론들이 마켓에 대해서만 떠들기 때문이다. 나는 한번도 상업성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짠 적이 없다. 우리는 꼭 보여주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들로 프로그래밍을 한다. 영화제 전체를 살펴보면 다큐멘터리, 해외영화, 실험영화 등 상업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많이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자, 정혜>는 지지하고 싶은 영화”

캐롤라인 리브래스코 프로그래머 인터뷰

-이번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몇편의 영화를 봤나.

=이번에 출품된 영화들은 6500편 정도다. 그중 4200편은 단편이고 2300편은 장편이다. 다른 팀이 담당하는 단편을 제외하고 모든 영화는 프로그램팀의 5명 중 2명이 보고 판단한다. 그 누구도 모든 영화를 볼 수는 없다. 한 영화를 2명이 좋아하면 다른 두 사람이 보기 시작한다. 내가 본 영화는 아마도 400∼500편 정도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4개월 동안 주 7일씩 근무하면서 매일 밤까지 일했다.

-세계 극영화 경쟁부문 16편 중 한국영화가 두편이다.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미국 밖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움직임에 주목하려 한다. 우리는 김기덕, 박철수, 이명세, 박찬욱 감독 등 매년 한국영화를 소개해왔다. 이런 역동적인 움직임을 반영하려 했기 때문에 올해 우리는 2편의 아르헨티나영화와 2편의 한국영화를 편성했다.

-<여자, 정혜> <녹색의자> 등 한국영화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나.

=나는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가진 않았다. 우리 프로그래머인 트레버 그로스와 제프리 길모어가 이들 영화를 보고 반해서 돌아왔다. 특히 <여자, 정혜>는 우리를 캐릭터의 내적인 감성 속으로 끌고 간다. 우리는 영화에서 그녀를 걱정하고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하고, 그녀의 복잡하게 얽힌 세계를 알고 싶어한다. 정말 지지하고 싶은 영화다. 이윤기 감독은 재능있는 이야기꾼이다. 특히 남자감독으로서 흔치 않은 섬세함을 갖고 있다. <녹색의자>는 <여자, 정혜>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영화다. 매우 논쟁적이며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처럼 평등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평등한 관계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영화는 무엇보다 야하고, 섹시하다. (웃음)

-선댄스는 독립정신을 가진 독특한 영화가 상영되는 반면 스튜디오들은 대박을 꿈꾸며 비즈니스를 지향한다. 두 이질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매우 독특한 영화제라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영화는 유럽이나 아시아영화처럼 공공자금이 전혀 투여되지 않는다. 다큐멘터리의 경우엔 일부 공공자금이 투여되지만. 결국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으면 순전히 자신의 힘으로 영화를 만들고 배급라인을 잡아야 한다. 선댄스는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장이 돼왔다. 흥미로운 점은 5∼10년 전부터 독립영화가 성공하려면 스타가 있어야 했다. 스타 또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고 좋은 역할을 맡기 위해 기꺼이 인디영화에 출연했다. 지금은 이 모든 일이 캐스팅 에이전트로부터 시작된다. 독립영화에 스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파라마운트에 900만달러에 팔린 <허슬 & 플로>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모든 스튜디오를 거쳤다. 하지만 그들은 이 영화가 논쟁적이며 위험하다는 이유로 투자를 기피했다. 그랬다가 선댄스에서 이 영화를 보고 경쟁을 벌였다. 이처럼 선댄스는 매우 복잡한 곳이다.

<여자, 정혜> 관객과의 대화

“이 영화, 정말 잘 만들었어요!”

파크시티에서의 일정이 비교적 뒤쪽으로 잡혀 있던 <여자, 정혜>는 지난 1월26일 오후 6시 메인상영관인 이집션 극장에서 일반 상영을 가졌다. 300여석을 촘촘히 메운 관객은 보는 동안 함께 웃고 한숨을 쉬었으며, 영화가 끝난 뒤에도 80% 이상이 남아 감독과의 질의응답에 참여했다. 관객은 감독의 연출의도와 한국 영화계의 사정을 궁금해했다. 다음은 이날 관객과 이윤기 감독의 대화내용.

-영화에서 심리묘사가 대화없이 이뤄진다. 그 이유는.

=이야기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혜(김지수)의 심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대화나 이야기를 통해 관객을 설득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양이가 소파 밑에서 나오지 않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 장면을 넣은 이유가 있나.

=나도 고양이를 키워봤는데 실제 경험상 고양이가 소파 밑에 누워서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좀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정혜의 실제 모습, 그러니까 두려워서 눕는 것, 상황을 지켜보고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등을 표현하려고 했다.

-영화에서 정혜의 속눈썹이 자꾸 빠진다.

=작가(황정민)와 정혜의 만남의 계기 또는 그런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애령씨의 원작소설에서는 다른 내용이었지만 김지수씨의 속눈썹이 실제로 촬영날 얼굴에 떨어져서 그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준비기간은 어느 정도였나.

=시나리오를 쓰는 데 2년이 걸렸다. 하지만 촬영기간은 6주 정도였고, 후반작업에는 4주가 걸렸다.

-정혜가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이 매우 파워풀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배우의 연기가 뛰어났다.

=김지수씨는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로 TV스타였지만 장편영화는 처음이었다. 훌륭하게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줘 나 또한 만족한다.

-소재나 주제가 특이한데,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여기 선댄스에 나오는 다른 영화들처럼 한국에서도 여러 편의 저예산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영화 또한 제작사와 스탭들의 고생과 노고로 완성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최선을 다했다. (객석에서 “You did a great job!”이란 환호가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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