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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톨루치의 몰락 [1]

정한석 기자,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을 비판하다

죽은 영화와 섹스하지 말라!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신작 <몽상가들>이 찾아왔다. 한국 관객과 만나기로는 <스틸링 뷰티> 이후 근 7년 만이다. 젊은 시네필 세명이 68혁명의 열기 속에서 영화애와 섹스로 몇주 밤낮을 보내는 이야기다. 격렬한 사상가이고, 열렬한 영화광이기도 한 베르톨루치가 젊은 시절에 스친 열망과 열정을 자성적으로 보듬는다는 것 자체가 <몽상가들>에 관한 무성한 소문을 낳았다. 그러나 영화는 소문만큼 풍성하지도, 명성만큼 훌륭하지도 않다. <몽상가들>은 과연 어떤 영화인가?

<마지막 황제>(1987) 이후 범작과 졸작으로 허장성세를 부리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1968년 혁명의 전조 가득 찬 파리로 영화의 시계를 돌린다는 것은, 게다가 영화사의 중요한 일화로 기록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설립자 앙리 랑글루아 해임 사건이 벌어진 2월에서 5월 혁명의 불길이 붙는 그 시기까지를 영화의 시간으로 다룬다는 것은 뭔가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처럼 들렸다.

아름답지만 기대 이하인 <몽상가들>

‘프랑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그리고 그해 1968년’은 베르톨루치 자신도 잊을 수 없는 공간이고 시간이다. 장편 데뷔작을 만들고 나서 가졌던 첫 번째 인터뷰에서 대답을 프랑스어로 하겠다고 우겨서 자국 기자를 화나게 했던 일화를 베르톨루치는 프랑스 사랑의 증거로 여기저기 자랑처럼 달고 다닌다. 유치하긴 하지만, “프랑스어야말로 영화의 언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때 이유였다. 한편, 두 번째 장편영화 <혁명 전야>는 프랑스 내 첫 상영을 랑글루아 해임 한달 전인 1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가질 수 있었다. 영화감독 지망생이던 그가 영화보기에 미쳐 살았던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그리고 1968년 5월, 혁명의 계절에 27살의 베르톨루치는 고다르에 대한 경외로 가득 찬 세 번째 장편영화 <파트너>를 로마에서 촬영하고 있었고, 영화의 주인공 역을 맡았던 배우 피에르 클레멘티는 주말마다 파리에 다녀와 그곳 혁명의 구호를 물어다주는 것이 또 하나의 역할이었다.

청년 베르톨루치가 맺어온 이런 경험들이 막연히 <몽상가들>을 울림 가득한 체득의 영화로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까 예상하게 했다. 오리엔탈리즘과 대작 증후군을 떨쳐내고 맞이하는 베르톨루치의 기사회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 기대는 실망스럽게도 빗나간다. 영화사의 아름다운 명장면들이 눈을 즐겁게 하고, 젊은 육체들이 격렬한 향연을 벌이고, 이상을 향한 시대가 창문 밖에 도사리고 있지만, 그뿐이다. 비켜서서 보면, 소모적인 방식으로 영화 사랑을 재촉하고, 무의미한 섹스 게임에 눈을 돌리게 하고, 혁명을 노스탤지어에 잠들게 한다. 더불어 영화가 선택한 역사적 정황의 가치와 그것을 영화적으로 풀어놓은 작품의 수준을 같은 것으로 여기도록 유도한다. 거창한 목록과 이름들을 잊지 않는 것이 예술적 구현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베르톨루치 스스로 그런 착란에 빠져 있다.

어느 남매와 한 남자의 삼각관계

<몽상가들>

길버트 아데어의 소설 <성스럽도록 순수한 그들>(The Holly Innocent)을 원작으로 한 <몽상가들>은 세명의 인물을 주축으로 한다.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는 미국인 매튜(마이클 피트), 일란성 쌍둥이 프랑스인 남매 테오(루이스 가렐)와 이자벨(에바 그린). 세명의 공통점은 미치도록 영화보기를 즐기는 시네마테크 출입자들이라는 점이다. 랑글루아 해임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던 날 매튜는 남매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매튜는 테오와 이자벨의 초대로 그들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러면서 그들이 한 침대에서 나체로 같이 자는 사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거리에서 혁명의 구호가 높아질 즈음 집안에 틀어박힌 그들 사이에는 문화에 대한 논쟁과 영화 제목 맞히기 게임이 열기를 띤다. 문제를 맞히지 못한 사람은 그 벌로 명령을 따라야 하고, 급기야 테오는 문제를 맞히지 못한 매튜에게 자신이 보는 앞에서 동생 이자벨과 섹스를 하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해서 테오와 이자벨은 정신적인 사랑을 하고, 매튜와 이자벨은 육체적인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이들은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혁명의 기운을 감지하고 거리로 뛰어나간다.

세 가지 화두: 시네마, 섹스, 정치

메이킹 필름 표제이기도 한, ‘시네마, 섹스, 정치’ 이 세 가지는 <몽상가들>의 화두다. 그 화두의 수순 그대로 영화는 전개되고 있다. 시네마를 계기로 인물들이 만나고, 섹스가 매개가 되어 본능적으로 소통하고, 그 소통 이후에야 정치 혁명의 거리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짜여져 있다. 그렇게 읽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그건 달콤한 해석의 독이다. 베르톨루치가 비판을 감수해야 할 지점이다.

첫 번째, 시네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 <무쉐뜨>까지 베르톨루치는 적지 않은 영화의 클립들을 가져다 곳곳에서 보여준다. 테오와 이자벨 남매는 장 피에르 멜빌의 <무서운 아이들>에 나오는 남매관계와 유사하게 설정되어 있고, 이자벨은 고다르의 <국외자들>에 출연한 안나 카리나를 흉내내고, 더러는 트뤼포의 <쥴 앤 짐>의 주인공들과 세 인물의 관계가 겹치기도 한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또 다른 감독 필립 가렐의 아들 루이스 가렐을 테오 역으로 발탁하고, 고다르의 <남성, 여성>으로 유명한 마를렌 주베르의 딸 에바 그린을 이자벨 역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예컨대 영화의 첫 장면에서 매튜가 시네마테크 안으로 들어설 때 보게 되는 두 사람은 누구인가? 왼편에서 장 피에르 칼폰이 선전물을 읽으며 호소하고 있다면, 오른편에는 장 피에르 레오(누벨바그의 신호탄이었던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에서 소년 역을 맡았던)가 열정적으로 연설하고 있다. 고다르의 <주말>에 함께 나왔고, 누벨바그 감독들과 황금기를 함께 누렸던 두 배우. 특히 68년에 랑글루아의 복직을 위해 목청 높여 호소문을 읽던 젊은 장 피에르 레오의 기록화면과 <몽상가들>에 출연한 나이 든 장 피에르 레오의 모습이 교차하는 실제로서의 과거와 허구로서의 현재는 흥분이다. 그러나 영화사에 대한 이러저러한 참조는 대부분 재미삼아 있는 것이다. 베르톨루치가 과시하는 애정어린 ‘영화 퀴즈’ 그 이상이 아니다. 그 점을 다듬었다면 문제도 덜 되고, 재미도 더했을 텐데, 종종 그것이 단순한 퀴즈가 아니라 무언가 심오한 알레고리인 척하면서 패착은 깊어진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두 번째, 섹스. 베르톨루치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몽상가들>의 섹스장면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에서 섹스가 자기파괴적인 주인공으로부터 발산되는 비극의 종류”였다면, “<몽상가들>에서의 섹스는 유쾌하다”는 것이 그의 답이다. 그가 말하는 유쾌함이란 젊은 육체들이 거칠 것 없이 경계를 넘을 때 발산되는 에너지가 마침내 혁명의 기운과 맞닿게 된다는 긍정적 표현일 것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강도를 앞세워 눈을 호도하여 과찬받았던 것과 다를 바 없이, <몽상가들>의 등급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란은 처음부터 베르톨루치 스스로 전략적으로 불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 <몽상가들>은 섹스장면이 정치적 배경과 연관이 있는 것인 양 가장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영화다. <몽상가들>에서의 섹스장면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처럼 ‘센세이셔널리즘을 위한 구애의 몸짓’에 불과하다.

세 번째, 정치. 베르톨루치는 이 영화를 만든 동기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1900>의 속편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1900>을 만든 건 1974년이었다. 그때 이탈리아는 마술 같은 시기였다. 새로운 뭔가에 대한 집단적 믿음이 강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오늘날 이탈리아는 정치적 피로상태다. 70년대와 달리 사람들은 어떤 특정한 이상에도 전념하지 않는다. 그들은 낙관주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만약 내가 <1900>의 속편을 만든다면 그건 거짓 날조의 종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1968년으로 시계를 돌렸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어떻게 사람들은 그들의 이상을 그렇게 빨리 잊을 수 있는 건지…”라고 중얼거린다.

그의 말대로라면, <몽상가들>은 잃어버린 이상을 찾기 위해 만든 영화다. 이 역시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 영화가 정치보다는 “친밀하고, 호기심 넘치는 인간관계”에 치중한 영화라고 이따금씩 제스처를 취하기도 한다. 정치영화이건 아니건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문제는 그 시대를 어떻게 쥐느냐다. 그 점에서, 베르톨루치는 첸카이거가 <패왕별희>에서 문화혁명을 그려낸 방식으로 <몽상가들>에서 68혁명을 다룬다. 여기에서 혁명의 역사는 대용으로 불려와 시체처럼 애용되고, 스펙터클의 가치로서 부풀려 사용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베르톨루치는 정말 거장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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