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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복제시대’의 편집증의 시각적 단면, <프리즈 프레임>
김용언 2005-07-05

카메라를 든 사나이가 누명을 쓴다. 진실을 밝혀줄 수 있는 건 카메라뿐이다.

숀 베일(리 에반스)은 재스퍼 일가족을 몰살시킨 혐의로 법정에 섰으나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는 자신을 기소했던 에머릭 형사(숀 맥긴리)나 범죄심리학자 시거(이안 맥니스)가 언제라도 또 다른 죄목을 자기에게 뒤집어씌울 것에 대비하여 그뒤 10년 동안 매 순간 집에 설치된 90대의 카메라로 자신을 찍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들이닥친 에머릭 형사는 1998년 10월15일 저녁 무렵의 알리바이를 대라고 을러댄다. 그날 죽었다는 메리 쇼우의 살인범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그날 그 시간대의 테이프를 찾는 순간, 베일은 문제의 테이프가 온데간데없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21세기의 카프카가 지하생활자를 주인공으로 부조리한 스릴러를 쓴다면 이런 스토리가 나오지 않을까. 혹은 <메멘토>의 주인공이 <패닉 룸>의 그 패닉 룸에 들어간다면 이런 이야기로 바뀌지 않았을까. 존 심슨의 데뷔작 <프리즈 프레임>은 이 모든 익숙한 전제들을 극히 제한된 등장인물과 시공간으로 압축시켜 끌고 들어온다. 핵심은 오로지 카메라, 카메라에 찍힌 것, 카메라가 증거하는 것이다. 5년 전 어느 날 밤에 누구와 뭘 했냐는 다그침 앞에 시원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숀 베일에게 있어 그 기억은 카메라라는 기계 저장 매체 속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그는 외출할 때조차 스노리 캠(몸에 부착된 카메라로, 움직이는 주체인 인물은 고정된 이미지로 보이고 주변 배경은 마구 흔들리게 찍힌다)으로 스스로를 찍고 그것도 모자라면 파파라치, 방송국 카메라, 이메일 등의 수단을 총동원하여 스스로를 기록해나간다. 바야흐로 카메라는 카메라-눈, 카메라-만년필의 시대를 훌쩍 건너뛰어 카메라-기억의 단계로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것이다.

<프리즈 프레임>은 사실 스릴러로서는 그리 빼어나지 않다. 시거와 에머릭은 처음 등장하는 순간부터 악역의 클리셰를 답습하면서, 이를테면 관객으로 하여금 숀 베일이 정말 결백할까 아닐까라는 궁금증을 조금도 유발시키지 못한다. 관객은 그들의 험악한 모습과 언행을 보면서 자동적으로 숀 베일을 ‘착한’ 쪽으로 단정짓게 된다. 또한 미스터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기자 케이티 카터(레이첼 스털링)가 갑작스럽게 돌출되는 후반부에 이르러 극의 개연성이 무너지는 건 치명적인 단점이다. 스릴러의 규칙을 꿰고 있는 관객에게 <프리즈 프레임>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을 공산이 크고, 오히려 ‘기계복제시대’의 편집증의 시각적 단면을 보고 싶은 이에게는 음미할 만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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