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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 합작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왕후심청>
김나형 2005-08-09

남북이 함께 만들었다는 것 외엔 별다를 것 없는 심청의 이야기.

이 땅에는 수많은 효녀·효자들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먹고 싶다”는 당신의 말 한마디면, 한국의 효자들은 한겨울에 딸기가 ‘있어선 안 된다’는 자연의 진리마저 아무 의심없이 뒤엎어버린다. 부모를 정성으로 대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부모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라도 일언반구하지 않고 따르는 그 모습들이 가끔은 무섭다.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그런 설화의 최고봉이다.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물불 가리지 않고 책임지지도 못할 약속을 하는 아버지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꽃다운 몸을 던지는 딸. 아무리 효도가 아름답다지만 아버지가 눈뜨는 것이 딸의 목숨보다 더 중하다는 논리는 폭력이다.

넬슨 신은 이 낡은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그런 지점에 약간의 각색을 가했다. 심청의 아버지 심학구는 조정의 강직한 충신으로 설정되었는데, 역적의 위해로 모든 것을 잃고 딸 청이만을 구해 은둔한다. 그 와중에 그는 눈이 멀었지만 늘 품위있고 다정하다. 딸에게 무조건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며, 그 돈으로 사랑하는 딸을 위해 ‘가게에서 제일 예쁜 꽃신’을 사는 부성애가 사실적이다. 한편 딸 청이는 쌀 300석을 모으려고 심학구 몰래 밤낮으로 삯일을 하면서도 밝고 발랄하다. 괴물의 재물이 되려 떠나는 순간에도, 청이는 승상댁 양녀로 가게 되었다고 아버지를 속인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해줄 곳에 양녀로 가겠다면 서러워도 웃으며 보내야겠다고 마음먹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버리고 양녀로 갈 리 없으면서도 거짓으로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딸의 마음이 감동적인 클라이맥스를 끌어낸다.

하지만 2005년에 조선의 설화를 구태여 끄집어낸 결과치곤 실망스럽다. 떠밀려 가든 스스로 가든, 딸이 죽을 것을 알면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인당수를 바다가 아닌 괴물로 설정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심청이 어렸을 때부터 무술에 능해 “내가 괴물을 처리할 테니 쌀 300석을 달라”고 요구하는 여장부로 만들 수는 없었을까.

물론 북한의 조선4·26아동영화촬영소(SEK)에 원화 제작 작업을 의뢰해 남북 합작으로 영화를 만드는 여건상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 정도의 각색으로도 처음에는 북한쪽에서 효녀 심청 이야기가 아니라며 영화 제작을 거부했다 하니까. 그러면 ‘남북이 합작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라는 큰 성과를 자랑하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왕후심청>은 지극히 평범한데, ‘일본 애니메이션 3번씩 보는 오기로 한국 애니메이션도…’ 하는 넬슨 신의 요구를 들으니, 부모를 위해서라면 뭐든 앞뒤 가리지 말고 하라는 식의 사고와 여러 가지로 유사해 찝찝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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