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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치게 착하고, 지나치게 예쁜 멜로 영화, <개와 고양이>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사랑을 택했던 소녀, 그녀가 사랑에 실패하고 이미 어색해져버린 우정으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사랑과 우정을 두고 지지부진하게 갈등하다 끝나는 멜로영화들에 비해 이 영화의 시작은 우선, 신선하다. 엄연히 성인인 20대 여성을 소녀라 부르는 것이 못내 어색하지만, 영화 속 그녀들은 아무리 보아도 소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그녀들의 어색한 만남이 아니라 그녀들이 여전히 ‘소녀’라는 데 있다. 연령으로는 분명 성인이나 아직도 부서질 듯한 감수성 속에서 파릇파릇 자라는 두 인물. 사랑을 끝낸 그녀들이 다시 만나는 순간도, 나이와 상관없이 여전히 요정 같은 그녀들도 싱그러운 건 분명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것이 이 영화의 전부이다.

사실, 영화 속 두 여성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개와 산책하는 아르바이트 등의 잡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친구 집에 얹혀사는 신세이다. 그녀들에게는 뚜렷한 꿈도 없어 보이고 삶은 아무런 굴곡없이 무미건조해 보인다. 그녀들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사랑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게서는 청춘의 우울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왜일까. 그건 이 영화가 지나치게 착하고 지나치게 예쁘기 때문이다. 텅 빈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도, 허무한 기차소리도, 외로운 골목길도, 고독한 고양이의 눈동자도 아프지가 않다. 청춘의 슬픔이 팬시상품처럼 예쁜 풍경과 인물들의 소곤거리는 말투 속에서 묻혀지고 잊혀진다. 사랑이 떠난 20대의 허기짐과 그 결핍을 채워줄 두 여자의 소녀 같은 우정 역시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예쁨을 의식하며 마음껏 아파하지조차 못하는 그녀들의 상처는 고통이 되기에는 다만 반짝이는 순간의 슬픔 같다.

가난의 흔적과 쓰레기와 욕설과 극단의 감정들이 부재한 이 아름다운 마을, 예쁜 청춘들의 한 시절은 따스한 햇살을 내비치나, 소통의 긴밀함이 없으므로 그만큼 심심하고 그만큼 생동감을 잃은 소품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엔딩 크레딧 옆에서 귀엽게 움직이는 고양이와 개의 스케치, 그 위를 흐르는 청명하고 청순한 소녀의 음색은 이 영화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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