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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희망으로의 역전, <헐리우드 엔딩>

“난 매우 염세적인 인생관을 가졌어요. 우리가 함께 다니려면 당신이 알아두는 게 좋을 겁니다. 난 인생은 끔찍한 삶과 비참한 삶으로 나뉘어 있다고 느낍니다. 그 두 범주로 말입니다. 끔찍한 삶이란 말하자면, 모르겠어요, 막다른 지점에 도달한 경우랄까요…. 장님이거나 불구이거나….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견뎌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나에겐 놀라울 뿐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비참한 삶에 속합니다. 그게 전부죠.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당신이 비참한 쪽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당신이… 비참하다는 건 운이 좋다는 거거든요….” 우디 앨런이 몸의 우스꽝스러운 전시를 뒤로 하고 철학적 억견의 세계로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애니홀>(1977)이 있었다. 그 자신조차 전환점으로 기억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 그가 연기한 주인공 앨비는 이렇게 삶을 불운하거나 덜 불운한 양편으로 나누는 것 이외에는 몰랐다.

25년이 지난 뒤(<헐리우드 엔딩>은 2002년 제작된 영화다), <헐리우드 엔딩>의 주인공 발 왁스만(우디 앨런)은 오래전에 예고된 예제를 입증하듯 잠시 장님이 되어버렸다가 다시 시력을 되찾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헐리우드 엔딩>은 비참한 삶을 살던 어느 영화감독이 끔찍한 삶을 체험한 뒤 다시 비참한 삶으로 돌아오는 내용일까? 혹은 조금 덜 나쁜 비참함을 수긍하며 사는 것이 삶의 진짜 이면이라고 말하는 염세적인 영화일까? 우디 앨런은 초연하게 그 초조한 염세주의를 비껴간다. 인생의 그 막다른 길이라고 두려워했던 상황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을 만큼 이미 넉넉하게 늙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오히려 순진한 희망으로의 역전에 치중한다.

한물간 할리우드 영화감독 발 왁스만은 아카데미상을 두번이나 손에 쥐어보았다는 자랑스런 과거의 추억으로 현재를 살아갈 뿐이다. 골칫덩이이자 독불장군인 그에게 아무도 제작비를 대겠다는 사람이 없어 하찮은 광고나 찍으며 근근이 연명하는 것이 전부다. 그런 그에게 황금 같은 제안 하나가 들어온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전 부인 엘리(테아 레오니)를 낚아채고 이제 곧 결혼까지 하게 될 어느 제작자의 제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기를 꿈꾸던 발 왁스만에게 탄탄한 시나리오와 6천만달러라는 거액의 제작비는 다시 성공의 발판이 될 것만 같다. 결국 자존심을 굽히고 감독직을 수락한 발 왁스만.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촬영 직전 갑자기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 시력 장애를 일으킨 발 왁스만은 앞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그만두면 영영 재기의 기회는 없다. 그는 어떻게든 영화를 완성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에이전트와 중국인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안 보이는 눈으로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그의 전 부인 엘리도 그 사기극을 눈치채지만, 결국은 또 한명의 조력자가 되어간다.

<헐리우드 엔딩>은 사실상 싱거운 교훈극이다. 그러나 이 교훈극을 받치고 있는 흥미로운 영화적 요소를 꼽으라면 그건 바로 주변 인물들의 쓰임새다. 이를테면, 인물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혼선도 잦았던 예전의 관계와 달리 <헐리우드 엔딩>의 인물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발 왁스만의 조력자로서 최선을 다한다. 그의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분신’들의 모티브가 이번에는 조력자의 모습으로 있는 것이다. 가령 그 분신들은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처럼 스크린에서 튀어나와 영화와 영화 속 영화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중의 주체로 번지거나,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치치처럼 마피아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전업하며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서사 전체를 뒤트는 동기를 부여한다. 최근에 개봉한 <애니씽 엘스>처럼 충고자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미래의 주인공을 거꾸로 보여주기도 한다. <헐리우드 엔딩>에서 그 분신으로서의 인물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주인공의 눈이 되어 그가 영화를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장면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의사소통의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이 과장된 관계 설정의 아슬아슬한 과정에 <헐리우드 엔딩>의 웃음이 배치되어 있다.

주인공 발 왁스만과 조력자들이 다른 이들을 상대로 벌이는 사기극의 실체, 또는 <헐리우드 엔딩>이 우회하여 역설적으로 지적하는 할리우드에서 영화 만들기의 과정은 이 세상에 진짜는 무엇이고, 가짜는 또 무엇인가라는 우디 앨런의 오래된 질문의 연속이다. 흔히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영화 만들기의 과정이 등장할 경우, 또는 그 안의 액자식 영화가 등장할 경우 그것은 자기반영적인 블랙홀로 작용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철저히 그 영화 속 영화를 무시한다. 대신 장님이 만든 그 영화의 진위를 둘러싼 헤프닝과 해피엔딩이 영화의 결말이 되는 것이다. 개봉된 영화를 본 미국의 평론가들은 가차없는 비난을 쏟아내지만, 바다 건너 프랑스의 비평가들은 최고의 영화라고 칭송하게 되는 상황이 영화의 결말부에 벌어진다. 우디 앨런 영화의 주요한 양상 중 하나가 진위 판단의 모호함으로 가득 찬 모험이라는 점, 또는 그 진위의 뒤섞임에 관한 호기심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최근 개봉되었던 영화 <애니씽 엘스>에서 애인의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좇는 것만으로 영화 한편을 채운 것처럼, <헐리우드 엔딩>은 가상의 영화를 둘러싸고 진짜와 가짜가 서로를 취한다.

<헐리우드 엔딩>은 우디 앨런의 범용한 코미디 정도로 그친다. 그는 대개 영화의 정밀한 구조보다는 담화의 홍수를 통해 영화를 만드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다. 옳은 말이건, 그른 말이건 그 말들이 신경질적으로 서로 충돌하고 비껴갈 때 범용하지 않은 재기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이 그의 영화의 장점이다. 그런데 <헐리우드 엔딩>에는 그런 재기가 없다. 실종되어버린 과거의 나약하고 신경질적인 초조함이 이 영화에서는 유독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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