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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이 순지의 비극을 잉태한 아름다움, <이와이 순지 컬렉션>
ibuti 2005-09-30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8번 A단조 K.310>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아침마다 알프레드 브렌델의 연주를 들으며 ‘이 얼마나 영롱하고 상쾌한 음악인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지극한 슬픔이 배어나오는 음악이었으니, 모차르트는 애상으로부터 투명한 아름다움을 뽑아낸 대가다. 이와이 순지 영화의 첫 기억은 예쁜 장식으로 가득한 것이다. 그런 그의 영화에서 아득함을 느낀 건 외국의 조그만 상영관에서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혼자 보았을 때다. 그리고 다시 본 <언두> <피크닉>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에는 하나같이 슬픈 얼굴이 박혀 있다. 그러니 이와이의 영화에서 모차르트를 떠올린 건 당연한 일이다. 비극을 잉태한 아름다움, 이와이의 어떤 세계는 그런 곳이다. 이와이 순지의 열풍이 불어닥친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올해, 한국에서 위의 네 작품이 개봉됐고 이어 DVD로 출시됐다. 두편의 소품과 두편의 거작으로 구성된 컬렉션은 일부러 이렇게 모아놓은 건가 싶게 참 어울리는 조합을 보여준다.

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산다. 사랑하지만 하나가 되지 못해 구속하고 구속받으려 하는가 하면(<언두>), 사회에서 쫓겨난 세 사람은 세상의 멸망을 목격하고자 길을 나선다(<피크닉>). 옌타운이란 공간에 모여든 이방인들의 몸부림(<스왈로우테일…>)이나 잿빛 가득한 10대의 시기를 통과하는 아이들의 절규(<릴리 슈슈의…>)는 또 어떤가. 그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자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거나 혹은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남은 자는 그들의 슬픔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거기엔 우중충함과 화사함이 공존한다. 우울한 정신병원의 담벼락에서 살짝 점프하자 초록 담쟁이와 파란 하늘과 기다란 길이 나타나는 <피크닉>의 한 장면을 잊을 수 있을까. 그리고 바로 그 사이에서 상처 입은 주인공을 껴안는 감독의 진심어린 마음이 숨을 쉰다. 한때의 패션처럼 보였던 이와이의 영화가 여전히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특히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 십대의 추락과 죽음을 그린 <릴리 슈슈의…>는 숨이 턱 막히는 걸작인데, ‘일본영화의 새로운 시작’이란 발표 당시의 평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언두> <피크닉> <스왈로우테일…>의 DVD는 화질이 좋지 못하고 별다른 부록도 없다. 반면 <릴리 슈슈의…> DVD는 뛰어난 화질과 음질 외에 풍부한 부록이 좋다. 90분에 이르는 메이킹필름 ‘공명’과 3편의 뮤직비디오, 그림일기 형식으로 만든 촬영일지(사진), 촬영장소 탐방 등이 별도의 디스크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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