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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an 대담2 - 무협영화의 신, 호금전의 ‘빅팬’ 피터 리스트 vs 스티븐 테어
2001-07-27

“그는 내게 영화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그리고 그 사랑은 어떻게 오래 지속되는가. 이는 영화에 있어서도 무수한 대답이 가능한 질문일 것이다. 올해 부천영화제가 성사시킨 숙원사업 ‘호금전 회고전’에 초대된 캐나다 콩코디아대 영화과 피터 리스트 교수와 <홍콩 영화: 또다른 차원>(Hong Kong Cinema: The Extra Dimensions)의 저자 스티븐 테오에게 그 사랑의 방식은 탐구와 전파. 80년대부터 홍콩영화제 일을 하며 호금전을 직접 인터뷰하는 기회를 가졌던 스티븐 테오는 1997년 홍콩영화제가 마련한 호금전 회고전의 자료집을 집필했다. 호금전에게 받은 친필 편지 복사본- 원본은 그의 연구실 은제 액자에 들어 있다- 을 기자에게 보여주며 “그를 학교로 초청했으나 퍼스트클래스 항공표를 구하기엔 예산이 부족해 좌절됐다”며 묵은 아쉬움을 들추는 피터 리스트 교수는, 1979년 호금전 영화에 처음 반한 이후 전세계를 뒤져 구한 호금전 영화의 비디오를 수업 교재로 틀면서 ‘간과된 영화사의 보물’을 가르쳐왔다. 공동의 열정을 지닌 두 사람은 물론 구면. ‘중국영화 다이제스트’라는 이름의 이메일 대화 그룹 멤버로 서로의 글부터 접했다는 두 사람은 2년 전 홍콩에서 만난 이후 부천에서 처음 재회했다. 호금전과 그들의 첫 근접 조우에 관한 기억부터 <와호장룡>이 불러일으킨 호금전 재조명 바람을 바라보는 기쁨과 우려에 이르기까지, ‘호금전 팬클럽’의 두 왕고참이 풀어놓은 길고도 짧은 이야기.

호금전, “와우!”

스티븐 테오(이하 테오) 나는 영화를 보며 10대를 보냈다. 처음 본 호금전 영화는 <대취협>(한국개봉 제목은 <방랑의 결투>)이었는데, 보통의 무협영화와 어딘가 달랐다. 어렸던 나는 그 특별함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호금전’이라는 이름은 나의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그 다음 본 작품은 당대의 박스오피스 히트작이던 <용문객잔>이었다. “와우!”라고 나는 속으로 외쳤고 호금전의 비범함에 대한 최초의 견해를 굳혔다. 당시 무술영화의 테마는 대개 스승이나 연인, 아버지가 살해당한 주인공의 복수, 두 당파가 주고받는 복수였다. 하지만 호금전은 달랐다. 비록 ‘정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어딘가 정치적인 정서를 취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호금전 영화의 또다른 특징은 매우 리얼리스틱한 액션영화였다는 사실이다. 그맘때 광둥어 영화의 액션은 완전한 판타지였다. 손으로 그린 애니메이션으로 눈에서 나오는 광선을 표현한다든가 인공성이 아주 강했다.

피터 리스트(이하 리스트) 음, 호금전 영화에도 그런 표현법이 없지 않아 있다.

테오 하지만 영화 전반을 볼 때 호금전의 액션 스타일은 좀더 사실적이었다. 그것은 현실의 인간이 검을 부딪치며 벌이는 싸움이었고 관객은 검투의 스타일과 뿜어지는 피를 볼 수 있었다. 또한 어딘지 모르게 보이는 표면 뒤에 뭔가 있다는 느낌을 심어주었다.

리스트 나는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할리우드영화와 영국영화만 편식했을 뿐, 중국어 영화라고는 하나도 본 게 없었다. 내가 처음 중국어 영화를 본 것은 서인도 제도에서였다. 본래 엔지니어였던 나는 자동차회사를 거쳐 항공우주산업에 종사하다가 “이러다간 군사 프로젝트에 끼어들고 말겠다”는 회의가 들어 직장을 그만두고 서인도 제도로 이주해 수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거기서 인생을 바꾼 멋진 경험을 했다. 서인도에서 처음 본 홍콩영화는 재미가 없었다.

내 흥미를 끈 건 관객들의 관람태도였다. 극장 앞줄에는 ‘구덩이’라고 불리는 싸구려 좌석이 있었는데- 양가집 규수는 절대 거기 앉지 않았다- 그 자리의 남자들은 영화가 시작되면 스크린 속 격투를 그대로 흉내냈고 관객은 모두 일어서서 영화와 객석의 액션을 한꺼번에 구경했다. 기막힌 노릇이었다! 조용히 하고 영화 좀 보자고 주의를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차피 관객은 영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그저 액션만 감상했다. 서인도의 인상깊은 체험 이후 나는 정식으로 캐나다에서 영화 공부를 시작했고 1979년 몬트리올영화제에서 한국 로케 촬영한 <공산영우>를 통해 호금전 영화를 처음 보았다. 호금전의 작품은 멋진 액션과 진정한 예술성, 정신성, 정치성 등 영화에 있어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요소를 결합하고 있었다. 그의 영화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공산영우>나 <산중전기>를 일컬어 사람들은 호금전의 태작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작품들을 통해 호금전을 처음 알았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그 영화들에 애착할 것이다. 한편 그 영화들은 한국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이미지였다. 실제 와서 보니 비슷하냐고? 스티븐이 리얼리즘을 말하긴 했지만, 영화 속 한국도 일종의 ‘판타지’였으니 똑같진 않다. (웃음)

영화사상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창안하다

테오 (다소 정색하며) 아, 내가 아까 언급한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시 설명하고 싶다. 분명 장르로서 무협영화는 리얼리스틱하지 않다. 내가 말하는 것은 액션이다. 호금전뿐 아니라 장철도 그렇지만, 일본 사무라이영화의 좀더 사실적인 결투묘사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본다. 아까 말했듯 당시 광둥어 액션영화는 진짜로 사람이 찔려 죽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 칼이 들어오면 등 뒤로 빠져나온 칼날을 보여주는 정도로 보여줄 뿐, 상징적인 동작들로 이루어진 액션이 주조였다.

리스트 그의 영화가 상대적으로 사실적이라는 점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 점은 호금전이 실제 자연을 영화 속에 끌어들인 방식과도 일맥상통한다. 문화혁명 이후 서구에서 볼 수 있는 중국어 영화는 매우 상업적인 홍콩영화뿐이었다. 그러므로 호금전 영화는 내게 중국문화의 풍성한 풍미를 처음 맛보게 해준 중국어 영화였다. 이후 연구를 하면서 호금전 이전 세대 감독 중에는 산수화 전통의 영향을 받은 감독은 있어도 호금전처럼 풍경을 중심적으로 이용한 예는 없음을 발견했다. 호금전 이전의 중요한 감독은 많았지만, 30년대 몇몇 영화를 제외하면 풍경의 도입은 그들 영화의 우수한 퀄리티 중 하나가 아니었다. 물론 그 이후에는 첸카이거나 장이모, 티엔주앙주앙 같은 제5세대 감독들이 자연을 의도적으로 이용했지만. 내가 신상옥 감독 영화와 호금전 영화 사이의 연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자연경관을 포착하는 방식 때문이다. 실은 신상옥 감독이 부천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있어서 나도 스티븐도 질문할 생각에 기대가 컸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

테오 경극에서 유래한 액션의 안무, 연기 스타일이 호금전 영화에 녹아든 중국 전통문화라는 점도 누차 지적돼 왔다.

리스트 호금전 영화의 의상과 아트 디렉션은 모두 정확한 고증에 기초했다. 리얼리즘의 견지에서도 높이 평가된 부분이다. 영화 연구자로서 나의 최대 관심은 스타일에 있다. 나는 호금전을 영화사상 완전히 독창적인 스타일을 수립한 인물로 본다. 캐릭터의 움직임과 카메라 움직임 사이의 관계, 어떻게 보면 에이젠슈테인적 전통에 서 있는 듯한 편집의 용례 등 그가 영화의 동세를 컨트롤하고 영화와 액션을 결합하는 방식은 탁월하다. 어떤 액션이나 전투가 아닌 단 하나의 숏만 봐도 인물이 서 있는 포즈와 시선만으로도 호금전의 영화임을 알 수 있다. 호금전 자신이 격투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경극과 태극권을 전혀 모르는 관객에게도 <협녀>의 숲 속 장면은 여전히 숨막히게 아름답다. 홍콩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로사와 아키라를 호금전보다 높이 평가하고 있었지만, 나는 오리지널리티라는 측면에서는 호금전이 더 우수한 감독이라고 믿는다. 물론 논쟁의 여지는 있겠지만 말이다.

테오 또 한 가지 짚고 싶은 것은 호금전의 스토리텔링과 중국문학 사이의 관계다. 중국문학에는 마치 음악의 간주처럼 장과 장 사이에 작가가 내러티브 흐름에 개입해 들어와 “만약 더 알고 싶으면 다음 장을 읽으시오” 식의 말을 하는 ‘링크 챕터’(章回)라는 것이 있다. 그렇게 나오는 다음장은 앞장과 직접적 관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호금전은 특히 그의 무협영화에서 ‘링크 챕터’ 전통을 수용했다. <충렬도>가 대표적인 예이며 <용문객잔>도 에피소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여기서 잠시 두 사람은 호금전 영화에서는 액션 자체가 독립적인 내러티브라며, 대사 한마디 없이 시선과 움직임만으로 관객의 주의를 휘어잡는 <충렬도>의 해적 습격장면을 놓고 한바탕 뜨거운 감탄을 나눴다.)

리스트 좀 다르긴 하지만 에피소드 구성을 취한 유럽과 미국의 영화들에 대한 연구가 있다. <돈 키호테>에 연원하는 이같은 피카레스크 구성은 2차대전 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에서 유행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은 스토리가 고르거나 긴밀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공산영우> <산중전기>는 호금전 영화 중에서도 그런 식의 지적을 많이 받는 경우다. 엊그제 부천에서 <산중전기>의 205분판을 처음 봤는데, 솔직히 좀 당황했다. 지금까지 내가 ‘판타스틱 영화로서의 <산중전기>’에 대해 논했던 관점이 잘 들어맞지 않아서였다. 비평에 있어서 ‘판타지’의 개념은 심리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으로 나뉜다. 내가 봤던 <산중전기>의 짧은 편집판에서는 축약과 생략이 자아내는 심리적 모호함과 뉘앙스가 컸는데, 긴 버전에서는 귀신의 묘사 등 초현실의 판타지가 훨씬 강한 반면 은근한 심리적 함의는 훨씬 줄어들어 있었다.

테오 <산중전기>는 호금전 영화 중에서도 이같은 초자연적 요소가 두드러진 작품이며 이 영화에 나타난 중국 판타스틱 영화의 전통은 리안, 서극의 작품으로도 이어졌다. 상하이가 중국영화의 중심이던 무성영화 시대에 대단한 인기를 구가하던 무협 장르는 1931년 이후 금지됐고 이후 홍콩으로 근거를 옮겼다. 초자연적 내용이 젊은이들의 정신을 해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실제로 당시 청년들은 너무 깊이 무협장르에 감동한 나머지 영생을 사는 불멸의 사부를 찾아 산으로 떠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웃음) 무협영화의 ‘신령스러움’은 당시 관객이 위패 같은 성스런 물건 앞에서 기도를 올리고 갔다는 기록에서도 알 수 있는데, 정부뿐 아니라 30년대 지식인들도 미신을 북돋운다는 죄명으로 무협영화를 멸시했다. 옳고 그름의 경계를 넘나드는 무협 장르는 그들에게 위험한 것이었다. 호금전은 이처럼 천대받던 장르에 품격을 불어넣고 지식인들이 수용할 만한 무엇으로 격상시켰다.

리안, 호금전에게서 한수 배우다

테오 호금전의 인물들은 양식화된 코드대로 대화하거나 행동하는 대신 진짜 중국인의 말투와 유머, 세속적인 행태를 보여주며 그것은 호금전 영화를 독창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점은 문제이기도 한다. 중국문화권 밖에서 살아온 관객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호금전이 소홀히 평가된 이유를 ‘크로스오버’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반면 <와호장룡>은 완벽한 크로스오버다. 리안은 중국인의 특수성을 전세계 누구나 소화할 수 있도록 ‘훌륭히’ 중화시켰다.

리스트 재미나게도, 리안은 호금전 영화를 보면서 비로소 중국문화와 그 아름다움을 배웠다고 했다. 영국인인 내게도 리안의 영화는 아주 미국적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세계 관객에게 이제 리안은 중국문화의 대표가 됐다.

테오 반면 중국적 요소가 생짜로 살아 있는 호금전에 대해서는 약간의 ‘저항’이 있다.

리스트 호금전의 내러티브나 캐릭터는 할리우드의 캐릭터나 스토리처럼 완전히 계발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안은 오랜 시간을 공들여 각 인물의 심리와 인물들 사이의 관계를 다듬어냈다. 영화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호금전은 그런 식의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호금전에게 캐릭터와 스토리는 덜 중요하거나 혹은 이질적 방식으로 전개돼 있다. 그러므로 할리우드영화의 잣대로 호금전을 평가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테오 리안-제임스 샤무스팀이 곧 <와호장룡>의 프리퀄을 만든다니 지켜볼 일이다.

리스트 그런데… 그 팀이 아마 <두 얼굴의 사나이>부터 만들 거라고 들은 것 같다.

(두 사람의 얼굴에 잠시 진지한 근심이 어린다.)

글 김혜리 기자 vermeer@hani.co.kr·사진 오계옥 기자 kla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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