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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적인 어색함을 간직한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김혜리 2006-01-24

단편소설 작가, 퍼포먼스 아티스트 등으로 활동해온 미란다 줄라이 감독은 그녀가 쓰고 연출한 첫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서 주인공 크리스틴을 직접 연기한다. 노인을 위한 택시 ‘엘더 캡’을 운전하는 크리스틴은 아마추어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비디오, 사진, 음악을 혼합해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크리스틴의 예술. 영화의 첫 장면에서 크리스틴은 혼자 음색을 바꿔가며 사랑하는 두 남녀의 서약을 녹음한다. “나는 자유로워질 거야. 나는 용감해질 거야. 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인 양 살겠어.” 감독이 이렇게 선포한 주제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여러 인물을 통해 거듭 메아리치고, 부연된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화법은 일종의 복화술이다. 크리스틴의 동네 이웃인 등장인물들은 모두 삶이 그저 ‘살다’의 명사형이 아니라 예술품처럼 특별한 무엇이기를 은밀히 열망한다. 그중에는 “마냥 사는 건 싫어. 나는 마술적인 일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어”라고 호언하는 구둣가게 점원 리처드(존 호크스)가 있다. 리처드는 신발에 복사뼈가 쓸린 크리스틴에게 새 구두를 권하며 “당신은 스스로 고통을 겪어 마땅하다고 여기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크리스틴은 그만, 사랑에 빠진다.

리처드는 한때 열애한 아내와 막 헤어진 처지. 부모의 별거를 제법 덤덤히 수용하는 14살 피터(마일스 톰슨)와 7살 로비(브랜든 래트클리프)는 컴퓨터에 빠져 자판의 문장부호로 모니터에 그림을 그리고 음담패설 오가는 채팅 룸에서 소일한다. 까다로운 감식안으로 일찌감치 혼수를 준비하는 데 몰두하는 옆집 소녀 실비(칼리 웨스터만)는, 피터가 은밀한 꿈을 엿보는 것을 허락한다. 피터를 놀려먹는 동급생 헤더(나타샤 슬레이톤)와 레베카(나자라 타운센드)는 성적인 호기심으로 터질 듯한 사춘기 소녀들. 리처드의 동료 앤드루(브래드 헨케)는 그녀들의 도발에 음란한 낙서로 대꾸한다. 그러나 앤드루가 정작 원하는 것은 섹스가 아니라 함께 곤히 잠들 수 있는 상대다. 크리스틴의 고객이자 친구인 노인 마이클(헥터 엘리아스)는 너무 늦게 만난 평생의 사랑을 안타까워하고, 닳아빠진 표정으로 크리스틴의 작품을 심사하는 큐레이터는 익명의 공간에서 살아 있음을 느끼려 한다. 미란다 줄라이의 작은 마을에서 아이들은 어서 자라 세계의 비밀을 알고 싶어하고, 어른들은 과오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기를 꿈꾼다. 그 발돋움과 허우적거림은 이렇다 한 지점에 닿지 못하지만, 한발 떨어져보면 군무로 보인다. 당신은 지금쯤 로버트 앨트먼의 <숏 컷>이나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식 분자구조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것이다.

미란다 줄라이 감독은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 구태여 진주를 구하지 않는다. 누가 봐도 달콤한 장면 대신 썰렁한 농담, 면박당한 구애, 미성년자가 연루된 실없는 음담패설, 예술계의 스노비즘을 일화로 취한다. 사방으로 엮인 인물들의 관계도 좀처럼 만개하는 법이 없다. 외설스런 메시지를 보내던 남자는 정작 소녀들이 문을 두드리자 숨어버린다. 귀중한 혼수 상자를 피터에게 보여줬던 실비는 다른 사람 앞에서 소년이 친근감을 보이자 모른 체한다. 수많은 멈칫거림 속에서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그리는 것은 고독한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는 순간이며, 제각각 우주를 운행하는 별의 궤도가 어쩌다 교차하는 찰나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이다. 도로를 주행하던 크리스틴과 마이클은 실수로 금붕어가 든 봉지를 지붕 위에 올려놓은 채 출발한 차를 발견한다. 차가 정지하거나 속도를 바꾸면 바로 절명할 금붕어를 위해 그들은 달리는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가련한 금붕어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몇초간 길 위의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때때로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인물들은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속 인물들이 그랬듯, 가장 사소하고 내밀한 몽상을 내보이며 소통을 확인하기도 한다. 리처드와 나란히 걷게 된 크리스틴은 한 블록의 거리를 두 사람이 함께하는 평생에 비유하며 마음을 전하고 리처드도 짧은 유희에 가담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체감은 거미줄로 짠 옷감 같아서 쉽게 찢기게 마련이다(리처드는 산책이 끝난 뒤에도 크리스틴이 놀이를 연장하려 들자 “규칙 위반”이라며 매정하게 밀어낸다). 그래서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종종 시적인 단막극의 연쇄처럼 느껴진다. ‘막간’의 틈새를 메우는 기능은 전자 건반음악이 이끄는 몽환적 사운드트랙의 몫이다.

거꾸로 말해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아는 모든 이들’의 교감은 결코 지속되지 않으며, 사랑이란 수확이 불가능한 열매라는 체념과 두려움이 배어 있다. 그러나 미란다 줄라이 감독의 결론은 “그러나, 이것으로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밤 마지못해 산책길에 나선 리처드 부자는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 않는다. 아들은 뜬금없이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고, 아버지는 노래를 들으며 걷는다. 그걸로 충분하다. 여인은 환상의 섹스를 그리며 채팅 상대와 약속한 장소에 나오지만 기다리는 것은 일곱살짜리 꼬마다. 소년은 실망한 여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준다. 동상이몽이었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흔히 이 영화를 “디지털 시대의 소통을 향한 몸부림”이라는 문구로 소개한다. 그러나 감독의 의도는 시대를 향한 불평이 아니다. 소년 피터는 컴퓨터 자판의 문장부호만으로 하늘에서 본 인간 군상을 아름답게 그려내고, 그의 어린 동생 로비는 ‘오려두기’와 ‘붙이기’만으로 대화에 성공한다. 미란다 줄라이는 우리의 도구가 보잘것없으나 그것으로도 충분히 사랑과 예술을 만들 수 있다고 소박하게 말한다.

‘독창적인 비전’을 평가받아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고 칸 황금카메라상을 안은 이 영화가 불편하다면 인위성 때문일 것이다. 줄라이는 크리스틴을 연기하면서도 연출자의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전체의 주제에 집착하는 대사는 때때로 아포리즘처럼 들린다. 일화들 역시 특정인의 취향으로 선별된 블로그 포스트를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사춘기적인 어색함을 간직한 영화다. 그러나 바로 그 약점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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