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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사람이 되돌아보는 인간의 일생, <타임 투 리브>

프랑수아 오종은 국내에 영화가 개봉되기도 전에 특별전을 통해 먼저 이름을 알렸다. 미지의 작가치고는 이례적으로 DVD 박스 세트도 출시되었다. 영화적 일면을 충분히 보여준 두편의 전작 <스위밍 풀>과 <8명의 여인들>도 개봉된 바 있다. 그런데 세 번째 개봉작 <타임 투 리브>는 극장에서 그의 영화를 본 관객에게는 다소 다른 느낌을 심어줄 만한 영화다. 익히 알려져 있는 ‘영화 악동 오종’이라는 편견으로 재단하기 힘든 영화다.

<타임 투 리브>는 오종의 영화 중에서도 ‘독소가 없는 영화’의 예외적 계보에 속한다. 오종은 영화광의 기질, 영화학교에서의 학습을 통해 능숙하고 지적인 기교파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형식적으로 그것은 블랙유머와 심리전, 장르의 횡단, 영화적 인용 등을 통해 발칙함의 자리를 고수한다. 그 단수가 소재나 기교 면에서 매우 높기 때문에 매력적인 독소를 뿜어낸다. 영화 악동이라는 별칭은 거기에서 유래했다. 그건 무척 자극적이어서 한편으론 영화광들의 눈에 들어 환호를 받기에 충분하고, 한편으론 재능을 소비하는 나쁜 버릇이라고 역공당하는 빌미를 주기도 한다.

<타임 투 리브>는 그러나 거의 표백의 영화다. 오종은 기교와 도발을 탈색시키고 단조로운 이야기와 스타일에 매진한다. 여기에 대해 스스로는 “<사랑의 추억>이라는 영화를 통해 타자를 상실하는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타임 투 리브>는 자기를 상실하는 내용의 영화다. 스스로에 대해 의문과 질문을 제기해보는 그런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자식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며 죽음에 대한 삼부작 중 두 번째임을 시사했다. <사랑의 추억>이 사랑하는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아내의 이야기라면, <타임 투 리브>는 사랑하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아의 이야기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부모의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젊은 패션 사진작가 로맹(멜빌 푸포)은 별안간 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는다. 그는 처음에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모든 것이 절망스러울 뿐이다. 가족과의 관계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불편한 관계로만 나아가고, 연인 샤샤에게는 일부러 거리를 두기 위해 상처를 준다. 촉망받는 사진작가이지만 이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는 방황하다 할머니(잔 모로)를 찾아간다. 비로소 로맹은 할머니를 만난 다음에야 죽음을 받아들일 자세가 된다. 할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그녀와 느끼는 죽음에 대한 공감이 그를 공포에서 자유롭게 만든다. 그 무렵 고속도로 간이식당을 운영하는 부부 중 아내가 그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는 이상한 제안을 한다. 불임으로 아이를 얻을 수 없는 그들에게 정자를 제공할 생각이 없느냐는 것이다. 로맹은 처음에 꺼리지만, 결국 부부에게 도움을 주기로 마음먹는다.

오종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주인공의 성 정체성이 <타임 투 리브>에서도 다시 한번 두드러진다. 로맹은 게이다. 오종은 자주 독일의 게이 영화감독 파스빈더에 대해 거론한다. 그리고 그의 영향 아래에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 <크리미널 러버>). 하지만 오종이 파스빈더를 경외하는 것은 파스빈더의 영화가 자기의 모델이 되기 때문이라기보다 개인적 성 정체성이 영화에 묻어나도록 하는 파스빈더의 기질에 더 끌리기 때문일 것이다. 비유하자면, 파스빈더가 절망적인 블루칼라의 게이 주인공 영화를 만들었다면, 오종은 희망을 품는 화이트칼라의 게이 주인공 영화를 만들고 있다. 정치적, 역사적 절망의 몸짓보다는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어떤 개별적 가능성으로 나아가고 싶어하는 것이 오종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래서 오종에게는 표백의 세계도 가능하다. 주인공은 꿈꿀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세상을 아름답고 깨끗한 마음으로 보고 싶은 의욕이 남아 있고, 또 그럴 만한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어떤 질문자는 오종에게 “주인공이 게이인데, 암 말기가 아니라 에이즈로 설정하는 것은 어떠했겠느냐”고 말하는데, 그건 주인공 로맹과 아이의 관계를 끊는 소리다. 영화 속에서 게이인 로맹은 불임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부부에게 정자를 ‘기부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야말로 로맹이 자신과 타인에게 남기는 마지막 선물이자 배려다.

주인공 로맹 역을 맡은 멜빌 푸포의 연기는 차분하다. 공포와 평안을 잘 분배한다. 그를 받쳐주는 배우는 프랑스영화의 대모 잔 모로다. 한때는 청춘의 꽃이었지만, 세월을 따라 백발이 성성해진 잔 모로, 그녀가 할머니로 나온다. 영화 속 장면 중 백미도 바로 로맹과 할머니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던 로맹은 할머니를 만나고 나서야 전환의 계기를 맞는다. 자기의 죽음을 고백하는 순간 그 기적이 일어난다. 로맹은 할머니에게 이제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 말을 들어주던 할머니는 손자에게 왜 다른 사람이 아닌 내게 그 말을 하냐고 조용히 묻는다. 그러자 손자가 대답한다. “할머니도 곧 죽을 거니까요.” 비정해도 그게 사실이다. 그 순간 로맹과 할머니, 그리고 백발의 노인이 된 할머니 역의 잔 모로가 겹친다. 이 장면은 주인공 로맹의 태도를 전환시키는 동기일 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태도도 드러낸다. <타임 투 리브>가 모두에게 도래할 미래를 먼저 받아들인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타임 투 리브>가 새로운 오종의 대표작이 될 것 같진 않다. 그러기에는 좀 평범하다. 그러나 영화는 형식적 자의식이 끼어들기라도 하면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이 더럽혀지기라도 할 것처럼 신중하게 모든 것을 절제한다. 나도 욕심을 버릴 테니 관객도 마음을 비우고 영화를 보라고 요구한다. 그게 표백의 매력이다. 막 태어난 ‘아기’, 로맹의 ‘유년’ 시절의 회상, 죽음 앞에 선 ‘청년’ 로맹, 그를 이해하는 ‘할머니’가 영화 속에는 나온다. 그러고 보면 <타임 투 리브>는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사람이 되돌아보는 인간의 일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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