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광기어린 사랑의 테마, <퍼펙트 스트레인저>
박혜명 2006-05-02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다양하다. 네덜란드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멜라니(레이첼 블레이크)는 그저 그런 데이트와 따분한 식당일로 일상을 반복하며 사는 중년 여성이다. 그녀는 여느 날 밤처럼 친구들과 바에 놀러갔다가 알 수 없는 눈빛을 지닌 매력적인 남자(샘 닐)와 조우한다. 멜라니는 남자의 손에 이끌려 그가 사는 외딴섬까지 간다. 고립된 곳에서 남자는 멜라니에게 대번에 사랑한다고 말한다. 결혼하고 싶다고 한다. 멜라니가 웃자, 남자는 내 말이 우습냐며 그녀를 거세게 잡아 때려눕힌다. 샘 닐이 연기한 ‘남자’는 극중에서 끝끝내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 ‘완전한 이방인’이다. 나를 몰래 관찰하며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키워온 무서운 이방인과 순진한 여자. 감금자와 탈출자의 구도.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초반부는 쉽게 <미저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정작 광기를 보여주는 인물은 멜라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역전된 뒤 멜라니는 남자에게 집착한다. 그녀의 사랑은 비현실적이며 비정상적이다. 멜라니는 자신의 환상 안에서 남자를 새롭게 만들어내고 그와 대화하며 그와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네덜란드의 여성감독 게일린 프레스턴은 이렇게 연출의도를 밝혔다. “죄없는 피해자가 사실은 그렇게 결백하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사냥감과 사냥꾼이 뒤바뀐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의도는 말 그대로 <미저리>의 무시무시한 가해자 애니가 사실은 순수한 애정을 품은 사람이며, 감금된 작가 폴 셸던이 광기를 숨겨온 인물이었음을 드러내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전부이자 끝이다. 멜라니는 마지막까지 남자에 대한 비정상적인 사랑을 멈추지 않고, 남자는 멜라니의 환상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는다. 감금자와 피감금자의 구도는 달라지지 않고, 광기어린 사랑의 테마도 신선하게 변주된 곳이 없다. ‘알고 보니’라는 트릭만 뺀다면 <퍼펙트 스트레인저>는 <미저리>와 다를 것이 없다. 감금자-피감금자의 구도 역전이 역전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면 영화의 전반부는 훨씬 덜 억지스러웠을 것이고, 과한 사랑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첨가되었다면 후반부는 그리 낡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게일린 프레스턴 감독은 너무 싱거운 의도만 갖고 과욕을 부렸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