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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영화의 신, 불멸의 지문
2001-08-24

영화사 강의

제1장 히치콕, 영국시대를 마감하다 <숙녀

사라지다>

The Lady Vanishes 1938년, 흑백, 97분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출연 마거릿 록우드,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국 시절을 마감하는 영화는 실제로는 <자메이카인>(1938)이었지만 그전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이미 그는 할리우드의 손길을 받아들이리라 내심 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시절을 화려하게 마감하는 요약본과도 같은 영화를 만들어보고자 했는데 그렇게 나온 영화가 바로 <숙녀 사라지다>이다. 실제로도 이 영화는 영국에서 제작된 히치콕의 영화들 가운데 당당히 최고작 대접을 받고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는, 미스터리 스릴러의 고전적 상황에서 출발한다. 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영국인 여성 아이리스는 같은 기차를 탄 노부인 미스 프로이와 알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미스 프로이가 사라지는 일이 벌어진다. 그녀를 찾으려 수소문하는 아이리스. 그러나 아이리스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런 사람은 있지도 않았다는 말만 듣게 된다.

<숙녀 사라지다>가 얼마나 탄탄한 구성을 갖고 있는 영화인지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언급이 아주 적절한 예를 제공해준다. 어떤 때는 1주일에 두 번씩이나 이 영화를 봐서 거의 외우다시피 한다는 그는 이 영화를 볼 때마다 화면의 세세한 부분을 보려고 마음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캐릭터들과 스토리에 빠져들게 되어서 그런 생각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강렬한 위협감과 더불어 코믹한 터치가 더해져 흥미가 배가된다. 더 파고들어가보면 인간과 세상에 대한 히치콕의 다소 냉소적인 시각도 엿볼 수 있다. 확실히 <숙녀 사라지다>는 히치콕의 영국 시절을 제대로 요약하는 그런 영화다.

제2장 오슨 웰즈, 미국영화사에 모더니즘을 도입하다

<시민 케인>

Citizen Kane 1941년, 흑백, 119분 감독 오슨 웰스 출연 오슨 웰스, 조셉 코튼

첫 영화를 만들겠다는 계약을 맺으면서 RKO 스튜디오를 처음 둘러본 오슨 웰스는 이것을 보고 “어떤 아이가 가졌던 것보다도 더 큰 장난감 기차 세트”라고 말했다. 마치 아이가 신기한 표정으로 장난감 다루듯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를 요모조모 뜯어보는 호기심 섞인 태도. <시민 케인>을 만들 때 웰스가 가졌던 태도는 기본적으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혁신가’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었기에 웰스는 영화사상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이 죽기 전에 남긴 ‘로즈버드’라는 말의 의미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영화 <시민 케인>은 딥 포커스, 복잡한 미장센, 과감히 천장을 보여주는 앙각의 앵글, 유동적인 카메라 움직임, 사운드의 창의적인 이용 등 그야말로 영화적 실험들로 가득한 영화다. 그럼으로써 웰스는 할리우드에서는 거의 최초로 스타일 그 자체로 주목을 끄는 형식의 ‘자의식’을 보여주었다. <시민 케인>과 함께 때 이르게 미국영화사에 모더니즘이 도입된 것이다.

너무 과도한 성취는 때론 그 당사자에게 부담스런 낙인을 찍기도 했다. 웰스가 자신에 대해 들었던 가장 빈번한 질문은 “<시민 케인> 이후로 그는 도대체 뭘 했지?”라는 ‘오해’가 다분한 것이었다. ‘<시민 케인> 신드롬’은 웰스뿐 아니라 다른 많은 영화감독 지망생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웰스를 따라서 그들은 너도나도 20대에 걸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이다. 그러면서 <시민 케인>이 그들 영화감독 지망생들로 하여금 그들이 원하는 수준을 크게 향상시켜준 것도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3장 누벨바그의 모든 것, 고다르의 모든 것 <미치광이

피에로>

Pierro le fou 1965년, 컬러, 110분 감독 장 뤽 고다르 출연 장 폴 벨몽도, 안나 카리나

<미치광이 피에로>의 파티장면에서 우리는 미국 B급영화의 거장 새뮤얼 풀러의 모습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다. 장 폴 벨몽도가 연기하는 주인공 페르디낭이 영화가 무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영화란 전쟁터와 같아요. 사랑, 증오, 액션, 폭력, 죽음…. 한마디로 말하면 감정(emotion)이죠.” 이후로 영화는 그 말을 따라간다. <미치광이 피에로>는 우선 페르디낭과 (안나 카리나가 연기하는) 마리안이 경험하는 전쟁터, 마리안과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하는 페르디낭의 감정적 시도로 구축된 영화인 것이다.

부르주아 속물 근성이 몸에 밴 아내가 지겨워진 페르디낭은 옛 애인이었던 마리안과 함께 리비에라 해안가로 도피한다. 그렇게 해서 두 남녀는 평온을 찾은 것일까? 여자는 도회지에 나가 춤을 추고 싶어하지만 남자는 해안가에서 글을 쓰고 싶어한다. 마리안의 능동성과 활동적인 삶, 그리고 페르디낭의 수동성과 정관(靜觀)적인 삶 사이의 긴장으로부터 영화는 추동력을 얻는다.

<미치광이 피에로>는 고다르의 표현대로 “최후의 로맨틱한 커플”(le dernier couple romantique)을 다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고다르가 쓴 에세이이기도 하다. 미리 정해진 시나리오도 없이 “완전히 자발적으로” 적은 에세이. 페르디낭을 통해 고다르는 실존적인 비애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고 광고와 정치적 폭력 등에 대한 통찰력 빛나는 코멘트를 던지기도 한다. 고다르의 다른 영화들처럼 <미치광이 피에로>도 고다르가 인용하는 여러 가지 문화적 레퍼런스들을 세심하게 살펴볼 때 더 잘 보이는 영화다. 특히 벨라스케스에 대한 구절과 페르디낭의 숙명, 르누아르와 잃어버린 시간의 탐색 같은 관계들을 고려해보면 영화에 더 풍요롭게 다가갈 수 있다.

제4장 브레송, 영화로 구원을 성찰하다 <무셰트>

Mouchette 1967년, 흑백, 85분 감독 로베르 브레송 출연 나딘 노르티에, 장 클로드 질베르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성냥공장 소녀>에 나온 아리에게 연민을 느꼈던 이라면 무셰트에게도 똑같이 그럴 것이다. 크레디트 시퀀스가 지나가고 나면 영화는 꼼짝없이 올가미에 걸린 새를 보여준다. 도망치려고 안간힘을 쓰며 홰를 치다가 결국에는 날갯짓을 포기하는 새, 그건 곧 주인공 무셰트의 처지에 대한 은유임이 밝혀진다. 가난한 가정에 살고 있는 열네살 소녀 무셰트에게 삶이란 온통 그녀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들로만 이뤄져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중환을 앓고 있고, 아버지는 걸핏하면 그녀를 학대하는 알코올 중독자이다. 학교에서도 그녀는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학교가 파한 뒤, 숲 속을 헤매던 무셰트는 어두운 밤 그만 비를 만나게 된다. 이 난처한 상황 속에서 나타난 밀렵꾼 아르젠느는 무셰트에게 도움을 주지만 그녀의 처녀성도 앗아가버린다. 다음날 아침 그녀의 어머니는 숨을 거두고 무셰트 역시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브레송 감독은 어떤 해명도 해주지 않고 무셰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까지의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수난기’처럼 보여준다. 그러면서 무셰트의 자결을 그녀에게 가해진 잔인함을 전도된 해방으로 바꾸는, 절망적인 자기 표현의 수단이라고만 넌지시 알려준다. 드레스로 몸을 칭칭 감고 언덕에서 구르는 세번의 자살 시도 끝에, 무셰트는 연못 위에 번지는 물결과 텀벙 소리만 남기고 세상과 작별한다. 브레송은 그 위에 천상의 소리처럼 들리는 음악을 들려주면서 무셰트가 육체를 버린 대신 영적인 자유를 얻었다는 암시를 남겨놓는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불가해하게 가혹하고 절망적으로 숭고한 한편의 영화를 봤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될 것이다.

제5장 미조구치, 롱테이크의 미학을 창안하다 <오하루의

일생>

西鶴一代女 1952년, 흑백, 137분 감독 미조구치 겐지 출연 다나카 기누요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가 <라쇼몽>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을 때 미조구치 겐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예술가의 위대한 성취란 50살 이전에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그에게 구로사와처럼 젊고 경험도 일천한 감독이 자기보다 먼저 그렇게 큰 상을 탔다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당시 쉰을 갓 넘었던 미조구치는 자기도 빨리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초조한 마음으로 즐기던 말술도 줄이고 전쟁 전부터 점찍어둔 사이카쿠의 17세기 고전을 스크린에 옮기기 시작했다. <오하루의 일생>은 미조구치의 미학적 야심과 명예욕에 4600만엔이라는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놓은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이다. 결국 미조구치는 소원을 이뤘다. 베니스에선 국제비평가상에 그쳤지만, 프랑수아 트뤼포를 비롯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젊은 비평가들은 구로사와를 밀쳐내고 미조구치를 숭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유장한 카메라워크와 형언키 힘든 비장미에 감동받았다. 미조구치 특유의 롱테이크가 빚어내는 신비한 리듬은 영화사의 새로운 경지로 비쳐졌다. <오하루의 일생>은 한 궁녀가 거리의 창녀로 전락하는 과정을 명료한 인과관계를 생략하고 시적 리듬으로 그려낸다. 비평가들은 꽤 오랫동안 그녀의 궤적을 종교적 수난기로 잃고 폐허가 된 세상을 떠도는 그녀의 모습에 초월자의 지위를 부여해왔다. 이와 함께 오하루는 <오게츠>의 아내와 함께 미조구치가 정립한 위대한 여성 캐릭터의 정점으로 받아들여졌다. 미조구치의 태도가 모호하며 심지어 오하루를 멸시하는 듯한 시선이 담겨 있음이 지적된 건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모호함과 내적 균열은 오히려 <오하루의 일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 걸작의 힘이다.

제6장 구로사와, 감동의 걸작 현대극을 만들다 <이키루>

1952년, 흑백, 142분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 출연 시무라 다카시

<라쇼몽>으로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뒤늦게 전달받으며 구로사와 아키라는 이렇게 수상소감을 말했다. “<자전거도둑>처럼 동시대 일본을 그린 일본영화가 상을 받았다면 이 상이 더욱 영광스러웠을 것이고 나는 그만큼 더 기뻤을 것이다.” 구로사와는 확실히 영화의 동시대적 책무를 깊이 의식하고 있었다. 국제적 명성과 미학적 성취를 주로 <라쇼몽>과 <거미집의 성> 같은 시대극으로 얻었다 해도, 구로사와는 미학적 야심을 앞세우지 않고 사회비평으로서의 현대극도 꾸준히 만들었다. <이키루>는 구로사와의 사회파적 지향성이 수일한 형식과 조우한 현대극이며, 그의 대표작으로 올려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평생 시청 공무원으로 살아온 모범적 소시민이다. 어느날 자시느이 암을 발견하고 번민하다 뜻있는 일을 찾아나선다는 게 첫 번째 파트다. 두 번째 파트는 와타나베의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 나날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회상하는 장면들로 구성된다. 무엇보다 <이키루>는 대단히 감동적이며 교훈적이다. 다소 계몽적이라는 점이 일부 비평가들에겐 오히려 폄하의 근거가 됐지만, 죽어가는 한 인간의 비애와 실존적 각성이 주는 정서적 고양의 힘은 무시하기 힘들다.

<이키루>는 형식미에서도 탁월하다. 저명한 영화학자 노엘 뷔르시는 이 영화를 “균형과 불균형이 결합된 정교하고도 엄격한 체계라는 구로사와의 미학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평했다. 전체 길이의 2/3를 차지하는 전반부는 정서적이고 동적이며 비교적 긴 시간과 여러 공간을 담는 반면, 두 번재 파트는 이성적이고 정적이며 하룻밤의 한 공간만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도 회상장면들은 계속 첫 번째 파트를 연상케 하고 반성케 한다. 이를 통해 몰입과 거리두기의 끝없는 긴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 `영화사 강의` 영화제

▶ 제1부 장르와 작가의 조우

▶ 제2부 영화의 신, 불멸의 지문

▶ 제3부 아주 특별한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