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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퀴어월드로 오세요, 퀴어문화축제 영화제
정재혁 2006-06-05

6월6일부터 퀴어문화축제 영화제, ‘위풍당당 퀴어행복’을 테마로 한 10편의 장편 선보여

‘퀴어들의 해피타임’, 제7회 퀴어문화축제가 5월30일부터 6월11일까지 서울 곳곳에서 펼쳐진다. 서로의 고민과 비밀을 털어놓는 수다회를 시작으로, HIV 감염인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알아보는 콘돔카페, 서울 거리 한복판을 아름답게 수놓을 퍼레이드까지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퀴어영화들을 모아 상영하는 영화제도 마련되어 있다. 6월6일부터 11일까지 6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될 이번 영화제는 새롭고 풍성하다. 총 10편의 장편 중 7편이 2005년 작품이고, <브로크백 마운틴>과 <아름다운 복서>를 제외한 8편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다. 특히 지난해 캐나다 퀴어영화제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조셉 로벳 감독의 <70년대 게이 섹스 문화>도 상영작 리스트에 올라 있다.

‘위풍당당, 퀴어행복.’ 올해 퀴어영화제는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처럼 주로 활기찬 영화들로 채워져 있다. 80년대 클럽의 유쾌한 만남으로 영화의 문을 여는 <아담과 스티브>부터 제목부터 발랄한 <졸라 다르다구>까지 영화들은 주로 희망과 용기를 얘기한다. 박기호 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가장 공을 들였던 부분은 한국의 퀴어들이 영화를 본 뒤 즐거운 마음을 안고 상영작 밖을 나갈 수 있느냐였다. 특히 지난해 상영작들은 소수자들의 어려운, 힘든 모습들만 보여줬다. 이번에는 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에 맞게 행복에 방점을 찍고 영화를 골랐다”고 말했다. 레즈비언 버디무디라 할 수 있는 <로빈후드>, ‘내가 생각하는 게이와 레즈비언’이란 조건하에 15명의 퀴어 감독들이 연출한 옴니버스영화 <졸라 다르다구>, 킥복싱을 하다 성전환 수술을 하고 영화배우로 데뷔한 농툼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아름다운 복서> 등이 그러하다. 다소 심각한 작품도 있다. 짐 드 세브 감독이 연출한 <결혼합시다>는 이성애 중심의 결혼제도가 동성 커플을 얼마나 어려운 상황으로 몰고 가는지를 담담하게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동성 배우자가 사망한 뒤 발생하는 연금이나 유산 관련 문제는 ‘퀴어 후진국’ 한국의 입장에서는 다소 생경하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상영작 중 한국영화가 단 한편도 없다는 사실은 유감스럽다. “퀴어영화는 대부분 독립영화나 학생영화에서 나온다. 섣불리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퀴어영화들의 제작편수가 줄었다. 이번 영화제 프로그래밍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영화들을 찾아 수소문했지만, 단 한편도 못 건졌다. 보통 1년에 장·단편 합쳐서 6, 7편 정도가 만들어졌는데, 올해는 한편도 없었던 것 같다. 물론 김경묵 감독의 <얼굴없는 것들>이 있었지만 이는 ‘행복’이라는 영화제 컨셉과 맞지 않아서 배제했다. 다음 영화제에선 고려할 예정이다.” 박기호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최근 이송희일 감독도 “더이상 퀴어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확실히 퀴어영화쪽이 힘들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화제는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좀더 많은 퀴어영화를 상영하는 일은 좀더 많은 퀴어영화를 제작하는 것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6일간 상영될 작품 중 5편을 꼽아 소개했다. 입장료는 5천원이지만 ‘행복회원’에 가입하면 단 2만원에 상영작 전편을 볼 수 있다.

프로그래머 추천작

<70년대 게이섹스문화> Gay Sex in the 70’s 조셉 로벳/ 미국/ 2005년/ 72분

동성애 인권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스톤월 항쟁(1967) 이후 뉴욕은 게이들의 파라다이스였다. 게이바와 클럽은 물론 선착장이나 트럭, 후미진 골목까지 크루징(서로 마음에 맞는 상대를 찾기 위해 길 거리 등을 배회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라면 그들에게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지난해 캐나다 퀴어영화제, 트라이베카영화제 등에서 상영돼 화제를 모은 조셉 로벳 감독의 <70년대 게이섹스문화>는 7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게이들의 ‘풍요로운 흔적’들을 하나둘 짚어나간다. 자료화면과 사진, 5명의 인터뷰로 제시되는 당시의 모습은 매우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조셉 로벳 감독의 말에 의하면 이 시기의 뉴욕은 “로마제국 이후 지금까지 성적으로 가장 자유로웠던 공간”이라고. 박기호 프로그래머는 이 작품을 소개하면서 “사실 겁도 났던 작품이다. 당시 모습을 너무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혹시 관객에게 이상한 편견을 주지 않을까 우려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바로 같은 이유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그동안 게이들이 지나온 날들을 바로 볼 기회는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80년대부터 돌기 시작한 에이즈의 초기 증상이 암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영화에서 제시되는 대부분의 내용들이 비교적 얇은 텍스트(5인의 인터뷰이)에 의존하고 있다는 약점도 있지만, <70년대 게이섹스문화>는 게이들의 ‘역사 바로보기’라는 측면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졸라 다르다구!> Fucking Different! 크리스천 피터슨/ 미국/ 2004년/ 81분

게이들이 레즈비언영화를, 레즈비언들이 게이영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졸라 다르다구!>는 이와 같은 설정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베를린의 15명 퀴어 감독들은 서로 다른 ‘성적 지향점’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각자가 가지고 있던 게이에 대한, 레즈비언에 대한 편견들을 솔직히 드러냈다. “게이와 레즈비언 사이의 문화적 소통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는 박기호 프로그래머의 말처럼 게이와 레즈비언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그것처럼 잘 좁혀지지 않는다. 영화 속 게이들은 레즈비언의 섹스를 “뭔가 빠진 지루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레즈비언들은 클럽에서 크루징하는 게이들의 만남을 진부한 틀 속에서 사고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자신들의 편견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방식은 매우 유쾌하게 다가온다. 특히 테니스를 하며 오르가슴을 느끼거나, 지하철에서 마주친 남자와 야외에서 섹스하는 상상을 하는 에피소드는 미소를 머금게 한다. 실험적인 요소들도 눈에 띈다. <멜랑콜리 로드>의 경우, 블랙 스크린 위에 한 남자의 연애담이 내레이션으로만 흐르고, <모토사이클 인 러브>의 경우 야채로 장식된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게이와 레즈비언의 오묘한 동거라는 제작방식만으로도 눈이 가는 작품이다.

<그녀의 여행> The Journey 리지 J. 풀라팰리/ 미국/ 2005년/ 107분

영화 <그녀의 여행>은 리지 풀라팰리 감독이 받은 이메일에서 시작됐다. 이메일의 내용은 사랑에 빠진 두 소녀가 학교에서 내쫓기듯 도망쳐 자살을 한 사건. 이 사건을 기초로 만들어진 <그녀의 여행>은 인도에서 한 여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부모가 점지워준 사람과 결혼하느냐,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선택하느냐. 실제로 이 영화가 상영됐던 인도에서는 상영 도중 몇 차례의 항의 소동이 발생했다고 한다.

<모리츠> Moritz 슈테판 하우프트/ 스위스/ 2003년/ 87분

모리츠의 엄마 안젤라는 항상 두통에 시달린다. 머리를 찬물에 담그거나, 진통제를 먹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다. 하루는 엄마가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고, 모리츠는 이웃집 게이 커플에게 맡겨진다. 모리츠는 게이 커플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주위의 이웃에겐 이들의 조합이 못마땅하다. 동성 커플에 대한 편견부터 가족에 대한 신선한 사고까지 한편의 아름다운 드라마로 담아내는 <모리츠>는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영화다.

<왕복 여행> Round Trip 샤하르 로젠/ 이스라엘/ 2005년/ 95분

전남편과 사별한 버스운전사 누리트는 두 아이와 함께 텔아비브로 이사온다. 그동안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던 그녀는 나이제리안 무시디를 하녀로 고용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한 여성이 자아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 영화는 이스라엘의 미녀 배우 아나트 왁스만의 출연으로도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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