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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코드명 백윤식
김혜리 2006-10-27

<싸움의 기술>을 보고 혹시나 싶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며 심증을 굳혔고 <타짜>를 보고 나니 재론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한국영화에서 진정한 두사부일체는 백윤식이다(이하 백윤식은 영화 속 백윤식을 말한다). 그는 두목이자 스승이자 아버지다. 백윤식은 지옥 같은 학교가 나오는 <싸움의 기술>에서는 학교 밖의 교사고, 지옥 같은 가정이 있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는 집 밖의 아버지다. 졸렬한 생부들은 그를 질투한다. 백윤식 캐릭터는 남자주인공의 성장담인 이 영화들의 스토리와 장르, 주제가 교차하는 삼거리에 떡하니 버티고 앉아 있다. 비교함직한 대상으로는 <핑퐁> <워터 보이즈> <스윙걸즈>의 일본 배우 다케나카 나오토가 떠오른다. 조금 과장해 백윤식은 혈혈단신의 하위 장르다. 등장하는 것만으로 영화에 단박 특정한 패턴을 새기는 바람에 감독을 다소 약골로 보이게 만드는 부작용조차 있다. 백윤식은 꺼내들면 판이 싸해지는 고강한 패와 같다.

그럼 왕따 병태도, 천하장사 동구도, 타짜 고니도 너나없이 입양되고 싶어하는 남자 백윤식은 어떤 아버지인가? 일단 그는 도사다. 그런데 속물의 질서에서 등을 돌리고 영적 각성으로 인도하는 도사가 아니라 가장 야비한 멱살잡이에 통달한 도사다. 그리고 딱 그것만 남자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싸움을 가르쳐달라는 병태에게 판수는 “집에 돈 좀 있냐?”부터 묻는다. 그는 동구 아버지처럼 말만 많지 바깥세상에 나가면 무참한 남자와 다르다. 상대 인중에 동전을 꽂을 줄 알고 화투와 물아일체의 경지를 이룬다. 그는 똥이 무섭지도 않지만 더럽지도 않다. 백윤식은 가진 것이 많지 않아 아들을 짓누르지 않지만 마음만 먹으면 세상을 야코 죽일 수 있는 비수 하나를 품은 아버지다.

내 눈에 <파이란> <역도산> <주먹이 운다> <달콤한 인생> <남극일기> 등 많은 한국 영화 속 남자들은 가끔 자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은유적으로) 병을 깨서 육체와 정신에 박박 그으며 “이 피 좀 보라. 내가 나빴지만 이렇게 괴로우니까 나를 용서하라”고 여자와 아이들에게 시위하는 듯해서 보기 미안하고 힘들었다. 백윤식에게는 그런 징함에 질리고 민망했던 작가, 감독, 관객이 혹할 만한 어른 남자의 풍모가 있다. 백윤식의 두사부는 유유하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고 배 내미는 대신 나는 너를 책임져줄 수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반면 영화 속 생부들은 돈벌이하느라 인생의 진짜 중요한 일에 대해 아들에게 말하는 법을 모른다. 그나마 그 돈벌이의 경쟁력도 백윤식의 화투나 격투기술만큼 화려하지 않다. 바뀐 요람 판타지라는 것이 있다. 성장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 초라한 남녀는 실은 우리 부모가 아니다. 나는 훨씬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는데 신생아실에서 바뀌었다”고 진지하게 믿는 증상이다. 백윤식은 한국 남자들이 꿈꾸는 진짜 요람처럼 보인다.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백윤식은 씨름대회 결전의 날 아이들의 가슴팍을 쿡쿡 찌르며 들려준다. “니들 행복이 뭔지 알어? 지금처럼 심장이 쿵쾅 쿵쾅거리는 거. 그게 행복이야.” 한국의 아들들은 자존심을 지키는 기술을 전수해주면서 이처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한마디를 자연스럽게 날려주는 아버지를 갖고 싶은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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