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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와 한 여성의 절박한 삼각관계, <파라다이스>
문석 2006-11-07

파괴적인 두 남자와 모성을 가진 한 여성의 절박한 삼각관계.

브라질영화를 세계 대중의 뇌리 속에 뿌리박게 한 것은 글라우버 로샤를 위시한 시네마 노보 계열의 영화나 세계 영화제의 명사 월터 살레스 감독의 작품이 아니다. ‘브라질영화’라는 최신의 브랜드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은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시티 오브 갓>(2003)이다. 브라질의 어두운 뒷골목을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숨막히게 빠른 속도로 묘사하는 이 영화의 성공요인은 브라질의 사회 현실을 사실적으로 폭로하기보다 이국적인 취향의 무언가로 포장했다는 점이다. <시티 오브 갓>은 폭력으로 흥건한 브라질의 ‘비열한 거리’도 색다른 영상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새로운 감독들의 등장,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등으로 바야흐로 꽃이 피어오르고 있는 브라질 영화계에서 전세계적으로 3천만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한 이 영화의 영향이 적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신예 세르히오 마카도 감독의 장편 데뷔작 <파라다이스> 또한 <시티 오브 갓>의 영향권 안에 있는 작품이다. <시티 오브 갓>의 이그재큐티브 프로듀서였던 월터 살레스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다(마카도 감독은 살레스의 조감독이었고, <태양의 저편>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이 영화는 브라질의 어두운 그림자를 낭만적으로 포장해낸다는 점에서 최근 브라질영화의 흐름을 반영한다.

브라질 북부 지방의 항구 살바도르를 배경으로 하는 <파라다이스>는 살바도르로 가려고 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 카리나(알리스 브라가)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자동차를 놓친 카리나는 우연히 만난 두 청년 데코(라자로 라무스)와 날디뇨(와그너 모라)의 배를 타기로 하고 뱃삯을 자신의 몸으로 지불한다. 어차피 몸뚱이 하나로 삶을 꾸려가는 카리나에게 감정없는 섹스란 그리 복잡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고, 두 청년에게도 잠시 동안의 쾌락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투계판에서 벌어진 시비로 날디뇨가 칼을 맞으면서 세 사람은 얽혀들기 시작한다. 카리나는 데코와 함께 다친 날디뇨를 부축하게 되고, 숙소에서 데코와 격렬한 정사를 나누게 된다. 카리나가 인근의 나이트클럽에서 댄서이자 매춘부로 일하게 되면서 세 사람의 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꼬인다. 병상에서 일어난 날디뇨도 카리나를 간절히 사랑하게 된 것이다. 카리나가 두 남자를 구별없이 품안에 받아들이는 데 비해 카리나를 독점하고자 하는 데코와 날디뇨 사이에는 긴장이 싹튼다.

“너에 대한 우정은 여자 하나와는 비교도 안 돼.” 날디뇨의 말에 데코가 대답한다. “너에 대한 우정은 세상의 어떤 여자와의 관계보다도 깊은 거야.” 데코와 날디뇨는 상대방의 카리나에 대한 정열이 자신의 그것 못지않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태연하게 우정이 사랑보다 진하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뒷골목을 전전하면서 산전수전을 함께 겪어왔던 두 사람이었기에 한 여자의 출현으로 그들 사이의 우정이 상처입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지 모른다. 사실, 나이트클럽에서 카리나를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유혹적인 춤을 출 때까지만 해도 세 사람의 동거는 가능한 듯 보였다. 하지만 카리나를 갈망하는 두 사람의 뜨거운 가슴은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그들을 이끈다. 데코가 한때 몸담았던 검은 세계로 돌아가는 대신 권투도장에 다니는 반면, 날디뇨는 별 죄책감없이 범죄의 유혹을 따르게 된다. 물론 그것은 카리나를 행복하게 해줄 돈을 벌기 위해서다.

액면만 놓고 보면 흔하디 흔한 삼각관계의 이야기지만 <파라다이스>는 그 세 사람의 주변에 온갖 ‘브라질스러운’ 장치를 깔아놓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한다. 카리나, 데코, 날디뇨의 주변에는 범죄와 폭력의 그림자가 지뢰밭처럼 곳곳에 깃들어 있고, 삼바의 밤처럼 충동적인 섹스의 덫이 즐비하며, 야만과 문명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욕망의 수렁이 존재한다. 백인인 날디뇨와 흑인인 데코를 절친한 친구로 설정한 것은 브라질의 가장 큰 사회문제 중 하나인 흑백 갈등을 은유하려는 의도 같기도 하다. 삼각관계를 다루는 드라마에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두 남성간의 묘한 성적 긴장 또한 특이하다. 살바도르로 향하는 배 안에서 날디뇨는 카리나와 섹스를 하기 위해 옷을 벗는 데코의 모습을 구멍으로 엿보기도 하고, 카리나를 당기고 밀치며 춤추는 장면에서 데코와 날디뇨는 상대방에게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카리나를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파라다이스>에서 이러한 장치들은 삼각관계라는 이야기와 겉돌고 만다. 두터운 색감과 강한 콘트라스트의, 그리고 역동적인 영상에 담겨진 브라질 살바도르의 풍경은 이국적 향취를 돋울지언정, 그들의 삶의 고통과 질곡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물론 이 같은 ‘전시성’에 대한 지적이 삼각관계의 팽팽한 긴장감을 담아낸 탄탄한 드라마 구성력이나 훌륭한 기술적 완성도까지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수캐들의 싸움처럼 데코와 날디뇨가 한판을 벌인 뒤 카리나가 이들을 감싸안는 마지막 장면은 가슴 서늘하고 달콤 씁쓸한 감동을 전한다. <파라다이스>는 당장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세계 영화사에 한 챕터를 확보할 브라질영화의 미래를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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