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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백윤식, 봉태규

참을 수 없는 두 남자의 하모니

<타짜>의 평경장과 <방과후 옥상>의 남궁달이 만났다. 그것도 부자지간이다. 주말 이른 아침, 공덕동의 뒷골목과 놀이터를 거니는 백윤식봉태규의 얼굴은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한 장면처럼 다정하다. 난간에 올라서는 사진기자에게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조심해”라는 백윤식의 걱정어린 음성도 평범한 아버지의 그것이다. 물론 영화에서 이혼녀 미미(이혜영)를 차지하기 위해 이종격투기로 대결하고, 이부자리에 서로를 묶고, 험담을 늘어놓는 불꽃 튀는 연적이기에 사진 촬영 중에도 묘한 긴장감이 언뜻언뜻 묻어나지만. 코미디언 밥 호프의 “웃음은 참을 수 없는 슬픔을 견딜 수 있도록 만들고, 급기야는 희망으로 돌려놓는다”는 말처럼 그들이 보여주는 악다구니와 충돌은 관객에게는 그저 유머로 여겨질 터. “임상수 감독, 독특한 코믹 연기, 흥행의 안전판”이라는 공통분모의 두 남자는 충무로에서 일명 ‘연기파’로 불린다. 그것은 그들의 유머가 ‘과잉’이 아닌 ‘전환’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표지 촬영에서도 가끔씩 선보인 비장하고 진지한 얼굴에서 툭 던져지는 농담, 느닷없이 터지는 기괴한 소리의 웃음은 두 배우의 능란한 표정 변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안색이 변할 때마다 감정도 카멜레온처럼 변한다. <애정결핍…>은 백윤식과 봉태규가 ‘가족’이라는 링 위에서 처음으로 벌이는 대결이자 하모니다.

캐릭터를 만드는 도사, 백윤식

굽이치는 웨이브 머리, 바닥까지 직선으로 떨어지는 바지 선, 너무 광이 나서 하얄 정도로 검은 구두는 무도회 스텝을 위한 것으로 보였다. 손녀뻘에게 둘러싸여 머리를 손질하는데 시녀들과 즐겁게 노는 왕자 같다. 왕은 언젠가 하야해야 하는 운명, 그러나 왕자는 그렇지 않다. 나이, 국적, 신분이 모두 불분명한 채로 세상을 거닐 수 있다. 한방병원도 백윤식의 나이를 40대 후반으로 판정했다. 외계인 왕자로 복귀한 <지구를 지켜라!> 이후의 행보는 누구나 알고 있다. 이후 그는 도사거나 커튼 뒤 고수였다. 언제 왕자의 연애 이야기가 시작될 것인지만 남아 있었다. 고등학생 아들이 연적이기는 하지만, 이 주제는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과 루이 말 감독의 <데미지>에서 봤던 게 아닌가.

그는 이번에 노래를 불러 여자 가슴에 불을 지르고 연적인 아들을 부대에 꽁꽁 묶는 비열함까지 불사한다. 캐릭터 창조에 관한 한 누구보다 지존으로 꼽히며 또 그렇기를 소망하는 왕자에게 망가졌다느니 하는 불경한 소리는 아니 될 터. “(사람들이 내가) 캐릭터에 자긍심이 대단하대. (뭐라고 하면) 난 난리나지. 책을 가까이 많이 한 작용으로 순전히 내가 캐릭터들을 창작했지. 준비된 사수들을 만난 것도 있고.” 이번엔 ‘생활과 밀접된 걸 풀어서 보여준’ 사례였다고. 요즘도 술집에서 새벽 첫차 다닐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중간중간 도망다니는 후배들을 잡아낸다. “너 가니, 자발적인 게 아니었니?” 잠만으로도 기력을 충전하는 활력 만점 왕자를 누가 당하랴.

비폭력, 무저항의 승부욕, 봉태규

채플린은 “인생은 클로즈업하면 비극이지만 롱숏으로 비추면 코미디”라고 했다. ‘웃고 있어도’ 자세히 보면 ‘눈물이 나는’ 봉태규가 그러하다. <가족의 탄생>은 봉태규가 가진 섬세한 감정에 기반한 정극 연기의 가능성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오죽하면 김태용 감독이 “비폭력, 무저항의 간지라고 해야 할까. 열정적으로 세상과 싸워나가기보다 폭력을 쓰지 않으면서 복종하지도 않는 얼굴”이라고 했을까. 봉태규는 “<가족의 탄생>에서 영화 색깔과 연기 톤을 조절하는 걸 고민했고, 개인적으로는 성공적이었다. 그래서 코미디가 강한 <애정결핍이…>도 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촬영 2회차까지 개떡같이 연기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봉태규는 “백 선생님에게 배우겠다는 생각으론 안 되고 부딪쳐서 불꽃이 나야 한다고 판단”한 뒤 그는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애정결핍이…>에서 봉태규가 연기하는 동동현 캐릭터는 전작에 비해 과장은 줄어들었고 유머는 여전하다. “만화의 액션장면처럼 엉뚱한 몸짓을 하면서도 발성은 낮게 가는” 방법이나 “고개를 젖히는 일반적이지 않은 리액션”도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가끔 오랜 여자친구와 <금발의 초원>을 보는 일상을 즐기지만 “그래도 보는 것보다는 하는 게 재밌다. 야구로 치면 내가 2할 8푼을 치는데 나랑 비슷한 애가 3할 치는 걸 TV로 보고 싶을까”라고 승부욕를 드러낸다. “누가 뭐라고 해도 끝까지 내가 알아서 해나갈 것”이라는 고집 센 6년차 배우 봉태규는 <이치 더 킬러>에서 “혀를 자르고도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잔혹한 유머를 선사한 아사노 다다노부의 지평”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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