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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종 희귀 차량 보유한 특수소품창고, 금호상사
글·사진 이영진 2006-11-23

캐스팅 0순위의 자동차 매니지먼트사

“영화 촬영하는 곳 말이죠?”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율성리.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한 중년 남자에게 금호상사의 덕소 차고지를 물었더니 자신있게 그곳을 안다면서, 종종 영화촬영도 하는 것 같다는 첩보도(?) 친절히 들려준다. 1937년산 엑스칼리버부터 1980년산 페라리까지, 1960년대 코로나부터 1990년대 슈퍼살롱까지, 200종 가까운 희귀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금호상사. 영화인들의 발걸음이 잦다보니 율성리 사람들은 이곳을 차고지가 아니라 촬영소라고 오해한다.

성인 남자 키의 2배는 너끈히 넘을 것 같은 높이의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경찰차를 비롯한 각종 트럭들이 경비원처럼 버티고 서 있다. 값비싼 희귀 차량은 일부러 안쪽에 배치한 건가. 도둑 걱정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차고 관리를 맡고 있는 백중기씨는 “대문은 안 잠가요. 워낙 특이한 차들이라서 잃어버려도 수배가 금방 되니까”라며 차량들을 한대씩 소개한다. 백중기, 백중길씨 등 3형제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 금호상사가 있기까지는 아버지 힘이 컸다. 북쪽에서 큰 제조업을 운영하던 백씨의 부친은 일제시대에 포드 디럭스 세단을 갖고 있을 정도였고, 1940년대에는 서울에서 영락택시라는 회사를 운영했다. 백중기씨는 “어릴 적 골목에서 뒹구는 때보다 자동차 아래서 노는 일이 더 많았다”면서 형제들이 자연스레 아버지 일을 도와 자동차 부속상, 정비 일 등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형제들이 한데 모여 자동차 사업을 벌였고, “언젠가 자동차 박물관을 하나 만들어보자”며 1960년대 후반부터 하나둘 들여오기 시작한 자동차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고. 백씨는 이 차들을 갖고서 어떻게 수입, 관리 비용을 벌충할 것인지 고민하다가 대여업을 시작했다면서 “원래는 막내까지 4형제가 같이 했었는데 교통사고로 세상을 먼저 떴어요. 지금도 같이 일하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1980년대에는 주로 드라마였죠.” 충무로와 연을 맺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인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장군의 아들>을 시작으로 <남부군> <투캅스>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 <하류인생> <태극기 휘날리며> <청연> <작은 연못> 등 웬만한 영화들에는 빠지지 않고 크레딧을 올렸다. “드라마에선 운전을 직접 하기도 했는데 영화는 아직 못했어요. 근데 자동차도 긴장하나봐요. 테스트 때는 멀쩡하다가 막상 슛 들어가면 시동이 안 걸리거나 꺼지는 거 보면….” 잠깐, 여기 차들이 전시용이 아닌 제 몫을 하긴 하는 걸까. “시동 걸면 가요. 최대 속도가 시속 40km밖에 안 되서 그렇지.” 부식으로 주저앉기 일보 직전의 차량을 들여와도 50년 가까이 기름밥 먹은 최고급 기술자가 있기 때문에 재활은 그닥 문제가 없다고. 참고로 금호상사는 1980년대 중반에 영화용 레커차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드라마 촬영용 차량들을 빌려서 찍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높아서 어색해 보여서요.”

백씨에게 자동차는 자식 같다. 물어뜯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딨을까. 비 오고 눈 오는 날에도 처마 한칸 차지하지 못하는 차들을 볼 때마다 백씨는 가슴이 쓰리다. “차도 운동이 필요해요. 워밍하고 운행하고 그래야 오래 굴러가거든요. 근데 운동 공간은 둘째치고 차고가 너무 좁아 상대적으로 중요한 차들만 차고 안에 넣어두죠.” 근처 금남리에도 대형 차고가 있으나 그 공간만으로 500여대의 차량을 다 관리하긴 어렵단다. 그래서 “1960년대에 나온 새나라 자동차를 일본에서 들여오고 싶어도” 아직은 꾹 참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