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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공중파 TV에서 <괴물> 보기 힘들다
강병진 2007-02-15

매체 환경 변화 따라 시청자 외면, 판권가격 상승으로 볼만한 영화 없어

<주몽>과 <괴물>이 TV에서 맞붙는다면 누가 이길까? 무려 시청률 50%대의 드라마와 13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대결이다. 아쉽게도 이번 설에는 이런 대결이 열리지 않을 전망이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힌트들은 이미 나온 상태다. 어떤 대결이든 홈그라운드의 이점은 있게 마련인 법. 현재 지상파TV의 영화프로그램들이 드라마뿐만 아니라 각종 오락프로그램에 밀려 프라임 시간대에서 자취를 감춘 사실을 생각해볼 때 결과는 자명해 보인다. “올 설 기간에는 타사 영화들이 <주몽>과의 경쟁을 피하고 있다. 방송사 모두 정말 특별한 초인기작이 아닌 이상 웬만해서는 드라마와 맞붙으려 하지 않는다”는 MBC 영화부 유건욱 PD의 말 또한 명확한 힌트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물론 아직도 명절 시즌은 그나마 방송 3사의 영화관계자들에게 TV영화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1년에 두번씩 찾아오는 명절 외에 정규프로그램으로 편성되는 영화들의 경쟁력은 지난 5년 동안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다. 시청률 조사기관인 AGB닐슨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연평균 13.8% 안팎의 시청률을 유지하던 KBS <토요명화>와 MBC <주말의 명화>는 2006년 12월 현재, 3%대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다. KBS <명화극장>이나 SBS <영화특급> 또한 낙차의 폭이 적을 뿐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5년 전만 해도 연평균 6.2%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명화극장>은 2006년 한해 동안 3%를 넘지 못했으며, 9%대를 유지하던 <영화특급>은 현재 평균 3.6%의 시청률를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시청률의 하락은 광고량의 감소로 이어진다. 유건욱 PD는 “예전에는 TV로 영화를 한편 보려면 광고가 너무 길어서 짜증이 났지만, 요즘에는 거의 바로 시작하고 있다”며 시청률 하락의 영향을 단적으로 설명했다. 시청률 하락은 방송 편성표의 위치에서도 추락을 야기했다. 현재 방영되고 있는 영화프로그램들은 편성표의 맨 끝자락에서 간신히 그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 접촉 경로 다양화, 판권가격 대폭 상승이 원인

이러한 TV영화프로그램의 위기는 더이상 TV를 통해 영화를 볼 필요가 없는 현실에 기인한다. 방송 3사의 영화담당자들 또한 매체환경의 다양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KBS 영화·만화팀 이관형 PD는 “옛날에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극장, 비디오, TV뿐이었지만 요즘에는 케이블이 들어서고 매체가 디지털화하면서 창구가 다양해진 변화가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멀티플렉스가 확대되면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이벤트가 아닌 일상이 되었고 극장에서 놓친 영화는 비디오와 DVD를 통해 볼 수 있으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캐치온 같은 유료채널이나 Pay-per-view 채널이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물론 DVD가 출시되자마자 어둠의 세계를 떠도는 AVI파일들 역시 더이상 TV에서 영화를 볼 필요가 없는 이유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TV에는 영화만큼 재밌는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현재 드라마 <햐안거탑>이 방영되는 시간대가 한때 <주말의 명화>가 방영되던 시간이었다는 사실은 “지난 몇년간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의 완성도가 높아짐과 동시에 시청률이 높아지면서 영화프로그램이 방영되던 시간대까지 차지했다”(SBS 영화팀 김박차장)는 말을 뒷받침한다. 앞서 말한 대로 드라마의 입김은 방송 3사의 영화팀이 공력을 퍼붓는 명절 시즌에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심지어 극장에서 대박을 친 영화들까지 TV드라마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추세. 실제로 지난 2006년 추석연휴 기간에 방영된 SBS 드라마 <사랑과 야망>은 전국 시청률 21.4%를 기록하여 동시간대 방영된 MBC의 <웰컴 투 동막골>이 기록한 14.7%의 시청률을 크게 따돌려 편성전략 변화의 필요성을 각인시켰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TV에서 더이상 볼 만한 영화를 방영하지 않는 점이 영화프로그램의 경쟁력을 악화시킨 이유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방송관계자들은 한국영화 시장의 성장으로 인해 판권가격이 대폭 상승된 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외화도 올랐지만, 한국영화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한국영화의 판권가격이 크게 올랐다. 재방과 삼방까지 해서 광고를 붙여야 간신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 상황이다.”(이관형 PD) 아무리 대작영화라고 할지라도 시청률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인 탓에 높은 가격의 영화들은 더더욱 공격적인 구매가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에 대해 영화배급 관계자들은 오히려 채널들간의 구매경쟁이 판권가격을 상승시켰다고 이야기한다. 쇼박스 김태성 부장은 “예전에는 관행적으로 2년이란 홀드백 기간(극장 상영 뒤 2차 판권부터 4차 판권까지 넘어가는 데 걸리는 기간)이 있어서 구매경쟁이 없었다. 하지만 케이블TV가 홀드백을 앞당기기 시작했고, 여기에 지상파가 홀드백 경쟁에 가세하면서 판권가격이 상승했다”고 말했다. “방송사쪽에서도 영화프로그램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영화를 구입하는 입장일 것이다. 하지만 부가판권 시장이 전체 수입원 가운데 15%밖에 안 되는 국내 영화시장에서 판권가격의 상승은 배급사나 제작사엔 환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송사간의 구매경쟁마저도 현재는 주춤거리는 분위기다. CJ엔터테인먼트 이상무 부장은 “지난해 SBS가 <왕의 남자>를 높은 가격으로 구입했지만, 기대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방송 3사가 모두 당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과 몇편의 영화를 묶은 이른바 괴물 패키지는 현재 방송 3사가 모두 구입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SBS 영화팀의 김박차장은 “워낙 높은 가격 때문에 재방, 삼방의 광고수익과 채널이미지를 높이는 부분까지 고려해도 수익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말했으며, MBC 유건욱 PD는 “그 돈이면 오히려 미니시리즈를 제작하거나, 직접 영화를 제작하는 방식을 고려해보는 게 나을 것”이라고 괴물 패키지를 둘러싼 방송사들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영화 제작, 투자 개입 등에도 TV영화 경쟁력 악화

이러한 진퇴양난의 갈림길에서 현재 지상파 3사는 각각 또 다른 돌파구를 강구 중이다. MBC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회사인 MBC 프로덕션을 통해 자체적으로 영화를 제작하고 있으며 KBS는 지난 2005년부터 TV·극장 동시개봉 프로젝트인 ‘KBS 프리미어’를 개최해 비할리우드영화를 안방에 소개하는 한편, 영화진흥위원회와 저예산 HDTV영화 제작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등의 특성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CJ엔터테인먼트와 함께 HD영화 <어느 날 갑자기-4주간의 공포>를 공동제작한 SBS 또한 <미녀는 괴로워> <허브> 등의 영화에 투자하면서 우선구입 권한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주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을 진행하면서도 방송관계자들은 지상파 영화프로그램의 앞날을 더욱 암울한 쪽으로 예상하고 있다. TV영화의 경쟁력 약화를 빚어낸 원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그치지 않고 서로 얽혀가며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에 시간대를 내주면서 경쟁력은 더욱 악화되고, 그로 인해 공격적인 투자가 어려워지면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TV에서 볼 만한 영화 찾기가 더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관형 PD는 “HDTV가 2, 3년 안에 70% 이상 보급되어 지상파TV에서도 고급 화질과 음향으로 영화를 방영한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도 있다”고 하면서도 “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의 장점 또한 강화되면서 여전히 영화프로그램의 입지를 좁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보다 외화시리즈에 주력할 것 같다”는 유건욱 PD의 말에서도 TV영화의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외화시리즈가 단가도 저렴한데다 광고주들의 선호도도 높다. 아마도 지상파의 영화프로그램은 외화시리즈 다음 시간대로 또 한번 밀려날지 모를 우려가 있다.” 이제는 방송편성표에서도 더이상 추락할 여백이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상파 영화프로그램이 얽혀들어간 악순환의 실타래는 더욱 풀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KBS 영화·만화팀 이관형 PD 인터뷰

“원본에 대한 높은 선호도, 방송 심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지상파영화 프로그램의 경쟁력이 많이 약화됐지만, 명절은 좀 나은 상황이지 않을까. =2000년에 KBS에서 <쉬리>를 첫 방영했을 당시 시청률이 약 36%가 나왔다. <쉬리>는 전국 관객 600만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타 방송사가 방영한 <웰컴 투 동막골>과 <왕의 남자>는 각각 800만명, 1천만명을 동원했음에도 시청률은 14% 정도 나왔다. 1천만명이 넘은 영화라도 TV에 방영될 때는 케이블TV, DVD, P2P를 거친 뒤라서 이미 볼 사람은 다 봤기 때문인 것 같다.

-매체환경이 다양해진 것 외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원인이 있다면. =현재 적극적으로 영화를 찾아보는 20대 전후 세대는 원본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본인들이 이미 배우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공중파에서 더빙을 입히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심하다. 예전에는 TV가 주된 정보매체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드라마 <X파일>의 멀더 목소리는 모두 성우 이규화씨의 목소리로 어필되던 시기였다.

-극장에서 대박난 영화라고 해도 TV에서는 이름값을 못하는 경우가 늘어가는 추세다. =극장 스코어와 TV시청률의 상관관계가 정비례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흥행에서는 주춤한 영화라도 TV에서 보여주면 의외로 선전하는 경우가 있다. 주로 코미디나 코믹액션영화들이 그렇다. 영화의 완성도나 흥행성보다 얼마나 알려졌냐에 따라 기대 이상의 시청률이 나오기도 한다.

-TV에서 볼 만한 영화를 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많은데. =1년에 100편 이상의 영화들이 개봉해도 그중에 방송에 내보낼 만한 영화는 20편이 채 안 된다. 방송이 불가능한 소재를 다루거나 심의상 문제가 되는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판권가격이 높아진 탓에 예전만큼 공격적인 구매를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