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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팝음악에 대한 재현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강병진 2007-02-28

휴 그랜트와 드루 배리모어의 노래 만들기. 로맨틱하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한 만남.

80년대 최고의 인기듀오인 ‘팝’의 멤버였던 알렉스(휴 그랜트)는 21세기인 지금 젊은 오빠로서의 칭송만을 간직한 기억 속의 가수다. 아줌마가 된 팬들의 환호는 여전하고 달라붙는 가죽바지도 아직은 쓸 만한 뒤태를 선사하지만, 골반의 힘은 예전만큼 리드미컬하지 않다. 놀이공원이나 동창회 등의 행사가수로 불려다니던 그에게 어느 날, 인기 댄스가수인 코라 콜만이 듀엣을 제의해온다. 단, 알렉스가 직접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 작곡은 손뗀 지 오래고, 작사라곤 해본 적 없는 그에겐 기회이자 위기다. 작사에 골머리를 앓던 알렉스는 어느 날 화초에 물을 주러 오던 수다쟁이 아가씨 소피(드루 배리모어)에게 작사가로서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말 그대로 “입만 열면 옥구슬”. 한때 작가지망생이었던 소피는 알렉스의 동업 제안에 머뭇거리지만, 이내 곧 두 사람은 각각 피아노와 노트를 손에 쥐고 한곡의 노래를 완성시킨다.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설정은 단순명쾌하다. 두 남녀가 한자리에 놓인 이상 그들 사이에 애정이 싹트는 것은 혼성듀엣에게 열애설을 의심하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알렉스와 소피를 각각 피아노와 소파에 앉혀놓은 뒤부터 영화는 그들이 사랑하게 되는 과정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일을 하다가 잠시 산책을 하고, 속이야기를 털어놓고, 그러면서 알게 된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수순을 밟아갈 뿐이다. 익숙함을 친근한 매력으로 돌려놓는 것은 휴 그랜트와 드루 배리모어가 지금껏 가꿔온 로맨틱코미디 배우로서의 이미지다. 휴 그랜트는 여전히 소심하고 어눌한 말투 속에서도 세련된 유머를 선사하고, 드루 배리모어는 토끼눈을 뜨고 앙증맞게 웃는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섞어놓은 코라 콜만 같은 캐릭터나 추억의 스타들을 데리고 복싱경기를 시키려는 프로그램 등을 통해 쇼 비즈니스 세계의 얄팍함을 건드리긴 하지만, 눈길이 가는 관심사는 아니다. 영화가 전하는 뜻밖의 즐거움은 80년대 팝음악에 대한 재현의 힘에 있다. 특히 오프닝에 등장하는 극중 팝의 뮤직비디오는 웸과 듀란듀란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완벽한 패러디다. 립싱크로 대사를 대신하고 각자의 연기에 몰입하던 주변 인물들이 갑자기 춤을 추는 등의 디테일들을 살려냈다. 귀에 익숙한 화음과 신시사이저의 효과음들도 과거에 보물처럼 아끼던 브로마이드와 테이프들의 행방을 궁금케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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