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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의상감독들] <배트맨> 슈트부터 <화양연화> 치파오까지
김현정 2007-04-05

가브리엘라 페스쿠치

화사한 채색, 레이스와 러플을 자연스럽게

<그림 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

가브리엘라 페스쿠치는 영화보다 의상디자인을 먼저 시작했다. 이탈리아 태생인 페스쿠치는 파리와 밀라노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다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던 디자이너 움베르토 티렐리와 함께 일했다. 그녀는 1960년대부터 영화를 시작했고, 프란체스코 로지와 페데리코 펠리니 등과 작업했으며,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도 참여했다. 숱한 경력 중에서도 눈에 띄는 그녀의 의상은 화사하게 채색된 듯한 느낌의 것들이다. 마이클 호프먼의 <한여름밤의 꿈>이 그 예로, 페스쿠치는 장식이 많고 화려하고 자연물을 적절하게 사용한 의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테리 길리엄과의 공동작업도 돋보인다. 제작 도중 무산된 <돈키호테를 죽인 남자>를 비롯해 <바론의 대모험> <그림형제: 마르바덴 숲의 전설>이 그들의 공동작업. <순수의 시대>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페스쿠치는 2006년 그녀답지 않게 귀여운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다시 한번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레이스와 러플을 조금도 거북하지 않게 사용하는 의상감독이다.

장숙평

영화 속에 스며드는, 영화만이 떠오르는

<화양연화>

장숙평은 “내가 만드는 의상에는 나만의 특징이 없다. 만일 누군가가 내 의상을 알아본다면 나는 일을 그만둘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왕가위와 오랫동안 작업해온 그는 자기 고집을 세우기보다 영화에 섞여드는 인물이다. 1960년대 한 여인의 단아한 육체를 구속했던 <화양연화>의 치파오와 사막의 모래를 직물로 엮어놓은 듯한 <동사서독>의 옷자락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 다만 그 옷을 보면 그 영화가 떠오를 뿐이다. 장숙평은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왕가위의 필름조각을 이어붙이는 편집기사이기도 한데, “느낌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모든 작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왕가위처럼 상하이 출신인 장숙평은 영화감독을 꿈꾸다가 프로덕션 겸 의상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패션에 관한 그의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나는 패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덧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킷과 바지 몇벌, 운동화, 영화제를 위한 구두만을 옷장에 넣어두고 사는 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앤 로스

캐릭터를 위한 의상, 평범함이라는 모험

<리플리>

1931년에 태어난 앤 로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션이 밀려올 무렵 젊은 시절을 보냈다. “전후(戰後)에는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나타났고 세계가 풍요로워졌고 사람들은 밤새 춤을 추었다. 나는 바로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로스는 자신이 사랑했던 그 시절 옷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압도하기보다 조용하게 캐릭터를 돕는 의상을 만들어 신뢰를 얻은 로스는 방대한 빈티지 컬렉션을 가지고 있고, 남모르는 빈티지 수집 네트워크도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고 헌옷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녀가 <리플리>의 주드 로와 기네스 팰트로를 위해 디자인한, 느슨한 타이와 날렵하게 재단된 슈트와 해변의 바람을 맞아 팔락이는 원피스는, 진짜 옷을 참고하여 모두 일일이 새로 지은 것들이었다. <클로저>의 마이크 니콜스는 평범하기에 오히려 모험을 한다고 평가받는 로스에게 이런 찬사를 보냈다. “그녀는 흉내내지 않고 가짜를 만들지도 않는다. 그녀의 의상은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의도하지 않는다.”

밥 링우드

SF에 힘을 싣는 분주한 탐색가

<엑스칼리버>

어느 인터뷰에서 “빨리 걷고 빨리 말하는 사람”이라고 묘사된 밥 링우드는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때까지 탐색을 거듭하는 디자이너다. 그는 배트맨을 디자인하기 위해 고대 로마와 동양의 가면을 뒤졌고 가면극 노에 이러르서야 분주한 발길을 멈추었다. “우리는 웃기게 보이는 가면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노의 가면을 발견했는데, 매우 파워풀했다.” SF영화를 주로 작업해온 링우드는 그처럼 남성적인 힘이 느껴지는 의상을 만들었다. 여성이 주인공인 <에이리언> 시리즈조차 남루한 듯한 의상에서 힘이 뿜어져 나온다. 그러나 링우드는 여인들을 위해선 연약하고 관능적인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코믹북이나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꺼내온 듯한 <배트맨>의 킴 베이싱어가 그렇다. 만일 <엑스칼리버>를 보며 연극무대를 떠올렸다면 그것은 맞는 느낌일 것이다. 링우드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비롯해 수많은 오페라와 연극 의상을 디자인한 무대의상 디자이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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