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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달인 마츠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김혜리 2007-04-11

‘불량 성녀’ 마츠코의 수난과 승천을 노래한 상상 초월 뮤지컬 멜로드라마.

집을 떠나 도쿄에서 2년째 자취 중인 청년 쇼(에이타)의 생활은 무기력하다. 이는 여자친구 아스카(시바사키 고우)도 확인하는 바다. “너랑 있으면 사는 게 재미없어. 아니 사는 게 싫어져.” 그러던 어느 날 쇼는 조그맣고 흰 상자를 든 아버지의 방문을 받는다. 상자 안에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고모 마츠코(나카타니 미키)의 유골이 들어 있다. 20대에 집을 나간 그녀는 53살에 이르러 아라카와 강변에서 맞아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아버지의 당부로 망자의 아파트를 정리하던 쇼는 고모의 유품과 지인들의 회고를 통해 명랑한 소녀가 ‘혐오스런 마츠코’라고 이웃에게 불리기까지 걸어온 가시밭길을 알게 된다.

성실한 고교 음악교사였던 20대의 마츠코. 그녀는 수학여행 도중 절도 사건이 일어나자 학생 류 요이치를 감싸려고 어리석은 판단을 내렸다가 누명을 쓴다. 비극의 주인공으로서 그녀가 가진 성격의 치명적 결함은 상대방을 일단 기쁘게 해주고 보자는 충동. 그리고 윽박지르면 마음에 없는 일을 해버리는 유약함이다. 마츠코의 불행은, 병약한 동생 쿠미(이치가와 미카코)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우울한 아버지(에모토 아키라)를 미소짓게 하느라 무리하게 애쓴 소녀 시절에 싹텄는지도 모른다. 실직하고 가출한 마츠코의 인생은 점입가경이다. 그녀의 남자 보는 눈은 사상 최악이다. 손찌검하던 작가 애인은 자살해버리고, 가족은 절연을 선언한다. 애인의 친구였던 유부남의 정부로 잠시 행복을 꿈꾸지만 찰나다. 증기탕에 취직해 한때 성공하는가 싶던 마츠코는 오일쇼크가 경제의 거품을 날려버리자 떠돌며 매춘을 하다 살인까지 범한다. 자살을 기도하다 난생처음 착실한 남자를 만났으나 체포 투옥된다. 형무소에서 미용 기술을 배운 마츠코는 갱생을 꿈꾸며 남자의 이발소를 찾아가지만 늦었다. 마침내 마츠코는 그동안 야쿠자가 된 옛 제자 류(이세야 유스케)와 재회해 모든 것을 건 사랑을 한다. 그러나 보답은 가혹하다.

마츠코에게 불행은 잊을 만하면 솟는 간헐천과 같다. “마츠코 앞에서 신세타령한다”는 속담이 생길 지경이다. “다녀왔습니다.” 매일 저녁 마츠코는 빈집에 돌아와 인사를 건넨다.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어서 와”라고 맞아주는 목소리뿐인 마츠코는 만나는 남자마다 자신의 긴 사연을 풀어놓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돌 그룹 히카루 겐지의 멤버마저 팬레터에 답장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고모의 인생을 추적하는 조카 쇼는 졸지에 ‘미스터리’가 되어버린 마츠코의 사연에 너무 늦게 답장을 쓰는 셈이다.

그런데 비극에 대처하는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의 자세는 롤리타 소녀와 폭주족 소녀의 우정을 그린 전작 <불량공주 모모코> 못지않게 ‘로코코적’이다. 흡사 컬럼비아트라이스타영화사의 리더필름을 연상시키는 하늘 바탕에 웅장한 서체의 제목으로 문을 연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은, 테크니컬러 시대 뮤지컬을 방불케 한다. 숨차게 쏟아지는 노래와 춤에다 CG와 애니메이션까지 듬뿍이다. 석양을 바라보는 마츠코의 뒷모습은 타라 농장의 스칼렛 오하라를 빼닮았고,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 작은 새들의 위로를 받는 그녀는 디즈니의 신데렐라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장르에 속한 영화 서너편을 너끈히 만들 만한 폭과 분량의 감정을, 한편의 영화에서 표현한 주연 나카타니 미키는 추가수당을 지급받아 마땅하다. 요컨대, 이야기는 나루세 미키오와 미조구치 겐지풍의 여인수난극이고 스타일은 <아멜리에>와 <시티즌 독>이다. 이 고난도 곡예를 번듯하게 성공시킨 감독의 재능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영화적 판타지는 이야기의 정조를 흩어놓기는커녕 마츠코의 곤궁한 영혼에 잠시 깃든 희망과 자기기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장미꽃은 땅바닥에 흩어지고 미소는 코피로 얼룩진다. 모든 환상은 이내 부서지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환상마저 그녀를 더이상 위로하지 못하고 위협하기 시작할 때 관객은 마츠코가 얼마나 탈진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방 안의 검정 쓰레기봉투들이 까마귀떼로 변해 날아오르는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압권이다. ‘방탕한 성녀’로 그려진 마츠코는 확실히 바람직한 여성 캐릭터는 못 된다. 집 나가 일탈한 여자의 예정된 비운에 대한 경고로 들릴 위험도 다분하다. 이를 의식한 듯 나카시마 데쓰야 감독은, 마츠코를 희생자로 그리기보다 살고 사랑하는 일에 놀라운 집중력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간으로 부각하려 한다. 감독은 자살하려는 남자를 벼랑 끝에서 여자가 설득하는 TV드라마 <서스펜스 극장>의 장면을 극중에서 여러 차례 보여준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테마는 결국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귀결된다.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사랑밖에 몰랐던 마츠코야말로 삶의 달인이라고, 이 영화는 길고 긴 후렴을 고이 바쳐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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