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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토크] 충무로 트렌드는 ‘막판 뒤집기’?

이동진 “반전 없는 <날아라 허동구>가 신선해 보여요” vs 김혜리 “일종의 퍼포먼스 장치일 수도 있다고 봐요”

거미녀: 그럼 여름 시즌의 테이프를 이렇게 자르며, 다음 이야기로 갈까요? 이번주 개봉작들의 트렌드가 있다면 ‘막판 뒤집기’입니다.

동화남: 비단 이번주만이 아니고 <눈부신 날에>부터 몇주 됐어요. 확실히 반전이 요즘 충무로 영화의 클리셰인 것 같아요.

거미녀: 이주 개봉작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반전을 볼 때 전 두 가지를 짚어봅니다. 첫째, 그 반전을 위해 영화 전체가 어떤 희생을 하는가. 반전이 등장하기까지 영화적인 재미가 몽땅 유예된다면 그것은 재고해야겠죠. 둘째, 그 반전이 영화에 어떤 것을 보태고 무엇을 바꿔놓는가? 관객에게 현상의 이면을 보게 해주거나 이야기에 새로운 면을 더하는가? 영화의 트릭이 이상의 두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지, 둘 중 하나만 채워주는지, 둘 다 못하는지에 따라 반전의 급수가 나뉜다고 생각해요.

동화남: 요즘 충무로 영화들은 왜 반전인가에 대해서 답하지 못하고 어떤 반전인가에만 기술적으로 골몰한다는 거죠. 반전을 아예 디폴트 값으로 넣어놓고 어떤 식으로 놀라게 할 것인지에 몰두해요. 예를 들면 스릴러라고 꼭 반전이 필요한가, 드라마라면 더더욱, 왜 내가 반전을 넣으려고 하는가, 그런 것에 대해서 스스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거죠.

거미녀: 물론 반전이 잘 쓰일 경우 굉장한 쾌감과 각성을 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반전을 날린 뒤에도 영화가 어디서 끝내면 좋을까 망설이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여기서 끝낼까? 아니야, 내겐 이런 생각도 있는데 여기서 끝내면 내 일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근심이 비쳐나요.

동화남: 반전이라는 것은 이야기의 극약 처방인데, 극약이 필요한 영화가 그렇게 많다고 보지 않거든요. 모두들 반전을 영화 속에 관성처럼 집어넣으니, 오히려 반전이 없는 <날아라 허동구> 같은 영화가 너무나 신선해 보이는 역설이 생기는 거죠.

거미녀: 이번주 영화의 반전들은 인물이 어떤 문제에 진짜 부딪쳐 해결하지 않아도 좋도록 만들어주는 일종의 퍼포먼스 장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동화남: 영화에 반전이 나오면 요즘은 관객도 그 반전이 말이 되나 안 되나에 집중하는데, 말이 되면 뭐하겠어요? 그 반전이 영화 전체의 자장을 휘게 만들고 불필요한 인위적 극성을 영화에 부여한다면요.

거미녀: 그러고보니 영화 속에 내레이션이 많다는 것도 이번주의 징후네요. <보그> 사진가 출신 숀 엘리스 감독의 <캐쉬백>과 심광진 감독의 <이대근, 이댁은>, 장진 감독의 <아들>에서 내레이션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요한 엔진으로 쓰였거든요. 숀 엘리스 감독은 사진가 출신 신인감독이니 내레이션이 숏을 붙여가기 수월한 방식이기도 하겠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내레이션 주도형 영화들을 여러 편 몰아보고 나니, 이미 보고 있는 걸 말로 다시 듣거나 들려준 것을 다시 보여주는 기법이라는 새삼스런 생각을 피할 수 없었어요. <아들>은 내가 어떻게 느낄지를 지시받고 있다는 생각도 슬그머니 들었고요.

동화남: <아들>의 잘못된 두 착안점은 반전과 내레이션인데 그중 내레이션이 더 잘못된 쪽이에요. 내레이션을 영화의 동력으로 탑재하는 순간, 영화 자체가 정말 이상한 모습으로 뒤틀어지고 말았어요. 기본적으로 영화가 대사로 말을 건넬 수도 있고, 장면 묘사로도 전달할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아들>은 아예 심리를 ‘현장중계’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형식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봐요.

거미녀: 거기 약간의 속임수가 있지요? 내레이션은 보통 진실이나 진심으로 받아들여지는데….

동화남: 그런 반칙은 영화의 반전과 관련있는데 사실 <아들>의 반전은 복기했을 때 잘 이해되지 않는 면이 있죠.

거미녀: 장진 감독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성향이 있지 않나요? 그래서 내레이션을 자주 쓰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동화남: 사실 장진 감독은 내레이션을 종종 효율적인 표현수단으로 쓰기도 했지요. 보여지는 것과 들려지는 것을 살짝 어긋나게 함으로써 유머의 신선한 제조방식으로 활용하기도 했고요.

거미녀: 상황을 해설하면서 발생하는 거리에서 웃음이 나오죠. <아들>에서 인물이 소통하는 방식은 상당히 특이해 아빠와 아들이 직접 대화하기보다 관객에게 속엣말을 하고 나머지 두 인물인 어머니와 교도관은 치매이거나 설정상 적극 개입이 차단된 상황이죠. 동석해 있지만 일종의 유령이랄까. 또 감정적으로 센 상황이 인물이 보지 않을 때 발생해요. 플래시백이라든가, 어머니가 뒤늦게 눈물짓는다거나. 어쩌면 슬픔이나 절망은 장진 감독에게 익숙하지 않은 정서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제가 실존하기보다 문제가 있다는 가정하에 인물이 취하는 행태, 상황, 조크가 더 중요해 보이거든요. 아들과 아빠의 냉전이 해빙되는 계기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처리되잖아요?

동화남: 밤에 느닷없이 함께 달려나가면서 감정이 풀리는데 정말 풀린다기보다 시나리오상 그런 단계이기 때문이라는 느낌까지 드는 것이죠. “아버지는 살인자인데, 아들은 살인미소라니, 이것도 부전자전인가요”처럼 불필요한 재담도 이 영화에 종종 있어요.

거미녀: 예. 그건 에러였어요. 그런 대사는 두 사람의 문제가 허구라는 의심을 품게 만들죠. 그런데 저는 <아들>이 약간 반갑기도 했던 것이 두 작품 건너 전작인 <아는 여자>까지 전개됐던 장진 감독 스타일이 되살아난 영화로 보였거든요. 장진 감독은 자기만의 유머를 창조할 수 있는 드문 작가이고 김지운 감독과 달리 그 길을 일관되게 일궈온 편인데. “연극적”이라는 비판 때문에 그 재능을 살리지 않는다면 큰 손실이라고 생각해요.

동화남: 저는 <아는 여자>를 무척 좋아합니다. 핸드헬드 촬영했다는 점을 제외한 모든 면이 좋아요. <아들>은 이전 스타일로 복귀한 작품으로 보기보다 탐색하는 시기라고 봐요. 그런데 <거룩한 계보>와 <아들>은 아쉬운 점이 더 많았습니다. 탐색기를 성실히 거쳐서 정말 좋은 작품들을 내놓으셨으면 좋겠어요.

거미녀: <아들>에는 차승원 얼굴의 느낌을 굉장히 잘 포착한 숏이 여럿 있었고요. 류덕환은 <아들>을 보고나니 <천하장사 마돈나>에 한해 여성적인 연기를 했다기보다 원래 그런 면을 품고 있어서 캐스팅된 것이 맞는 순서가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동화남: 류덕환씨는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거예요.

거미녀: 그런데 선배, 저는 <아들>을 호러 버전으로도 비틀어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귓속말)

동화남: 오늘, 혜리씨 맞긴 한가요? 어째 평소와 좀 다른 듯. 갑자기 목덜미가+_+ 당신, 편집장이지!

거미녀: 가족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대근, 이댁은>도 그렇지만 <마이 베스트 프렌드>도 아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어려운 시대라고 말하는 영화예요. 친구나 가족처럼 노력 안 해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대상을 얻는 ‘기술’에 관한 ‘How-To’ 영화.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캐스트 어웨이>와 내용은 같은데 단지 주인공이 자신이 ‘무인도’에 사는 줄 몰랐던 남자인 셈이죠?

동화남: 재미있는 해석이네요. 프랑수아(다니엘 오테유)에게는 심지어 배구공 윌슨도 없었죠. 저는 이 영화가 정말 동화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찰스 디킨스가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슬쩍 곁눈질하면서 쓴 것 같은 어른을 위한 동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이야기인데 그것을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처럼 내기 모티브를 넣어서 살짝 비튼 이야기라고 본 거죠. 보면서 뻔하기도 편하기도 했어요.

거미녀: 엉뚱한 이야기를 하자면, 저한테는 정말 따로 배우지 않아도 다들 터득하는 일을 “넌 그거 어디서 배웠어?” 하고 신기해하는 친구가 있어요. “청계천이 종로랑 을지로 사이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어?”라든가 “광어랑 우럭을 어떻게 구분하게 됐어?”라든가. 도다리도 아니고!

동화남: 헉, 그 친구 멀리하삼.

거미녀: 프랑스영화는 중년 도시인들에게 디저트용 와인처럼 위로를 주는 영화를 꾸준히 내놓는 것 같아요. 확실히 예리함의 정도는 달라도 <타인의 취향>을 즐긴 관객이라면 <마이 베스트 프렌드>의 타깃에 포함될 수 있겠죠.

동화남: 사실 중·고등학생 때, 한참 센티멘털할 시절에 “넌 진정한 친구 1명이 있니?”라고 목소리 깔고 촛불 켜고 서로 물어보곤 하잖아요.

거미녀: *.* 앗, 남자들도 그래요?

동화남: 그거 생각만 해도 닭살인데 그걸 진짜 영화로 만들다니 놀랍긴 했어요. (남자도 그래요.) 저는 다니엘 오테유가 프랑스의 마이클 더글러스 같아요. 두 배우 이미지가 너무 많이 겹치지 않나요? 차갑고 지적이고 상류층처럼 보이고 인간에 관심없고 바람둥이일 것 같고.

거미녀: 그러고보니 눈과 입매도 닮았네요. 한데 영화 속에서 오테유는 구제받는데 더글러스는 패가망신하는 예가 많지 않은가요? -..-

동화남: <마이 베스트 프렌드>는 마이클 더글러스의 <더 게임>에 그대로 겹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 다니엘 오테유는 <제8요일>과 <히든>에서도 유사한 캐릭터를 연기했죠. 전부 피도 눈물도 없었던 사내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변하게 되는 이야기들이죠.

거미녀: <쉬즈 더 맨>은 못 보셨지요? 셰익스피어 <십이야>의 번안인데요. 남장 여학생의 축구부 진출 및 진정한 남친 찾기 활극입니다. ^_^

동화남: 워낙 재미있는 모티브죠. 두 가지 다 성공하나요?

거미녀: 그럼요. 심지어 축구부 주장을 남친 삼습니다.

동화남: 기왕이면 군대에 들어가서 축구를 하다가 진정한 남친을 찾는 이야기가 어땠을지…. ^.~

거미녀: ^0^ <쉬즈 더 맨>을 보고나니 제인 오스틴, 셰익스피어, 안데르센 같은 작가들은 ‘스테인리스 원작자’인 것 같아요. 웬만한 손에 떨어져도 기본 재미는 있는 영화가 나오니까요. 동화남: 그냥 줄여서 ‘스댕작가’로? ^_^

거미녀: 그런데 축구를 미식축구처럼 찍어서 공을 찰 때마다 알리가 샌드백 가격하는 엄청난 음향이 납니다. 고교축구가 원래 그런지 몰라도 전반에 퇴장한 선수가 후반에 또 나오기도 하고. -_-

동화남: <애니 기븐 선데이>처럼 찍었군요.

거미녀: 물론 <애니 기븐 선데이>가 훨씬 시끄러워요. 그쪽 코치는 알 파치노잖아요? 그리고 <쉬즈 더 원>은 ‘온 스타일 무비’라는 이름으로 메가박스가 출범시키는 ‘브랜드’의 첫 영화라고 합니다. ‘젊은 여성을 위한 세련되고 로맨틱한 오락영화’- 미국으로 치면 chick flick?- 정도의 컨셉으로 기개봉작과 신작을 섞어서 프로그램을 짰어요. 지난 영화로는 <오만과 편견> <웨딩 크래셔> <사랑해, 파리> 등이 포함됐던데, 영화를 무슨 패션 브랜드 론칭하듯 접근하는 걸 보면 문화가 변하긴 했어요. 마케팅 중심의 서브 장르라고 해야 하는지.

동화남: 영화도 유통이 호령하는 시대가 되는 건가요?

거미녀: 그리고 보태자면 <캐쉬백>도 즐길 만한 영화입니다. 아카데미상 단편부문 후보에 올랐던 작품에 살을 붙인 장편인데 화가 지망생이 주인공이고 감독의 자전적 독백이 끌어가지만 쉴새없이 웃음도 터집니다. 주연배우는 <해리 포터> 팬들은 기억하실 텐데 호그와트 그리핀도르 기숙사 퀴디치팀의 주장 올리버 우드로 분했던 잘생긴 배우랍니다. 세계를 정지시키고 그 아름다움을 잡아 벽에 거는 예술가의 시선을 보여주죠. 특히 여체의 아름다움이 테마인데 <보그> 지면에서 빠져나온 듯한 (셀룰라이트가 단 1그램도 없어 보이는) 여성들의 전면 누드가 어떤 영화 못지않게 많이 등장하더군요.

동화남: 저런, 이 영화 이야기부터 하지 그러셨어요? ^_^ 에고, 허리야. 저는 이 대화를 마치고 또 리뷰를 두편 써야 잠들 수 있답니다. -_-

거미녀: 저도요. T-T

동화남: 정말,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으려고 애쓴다. -..-

거미녀: 그 말씀, 마무리 멘트로 할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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