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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슨 웰스를 재발견하라
홍성남(평론가) 2007-05-16

5월18일부터 <시민 케인> <위대한 앰버슨가> 등 장편 12편과 단편 모음 상영

1985년 오슨 웰스가 타계했을 때 꽤 여러 부고 기사는 그를 두고 자신의 첫 번째 영화(<시민 케인>(1941))가 보여줬던 가능성에 결코 이르지 못한 인물이라고 썼다. 물론 웰스에 대한 이런 식의 평가는 그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유의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옳지 않다는 것은 <위대한 앰버슨가>(1942), <오델로>(1952), <악의 손길>(1958), <심야의 종소리>(1966), <거짓과 진실>(1974) 같은 작품들이 거둔 성취만 따져봐도 어렵지 않게 드러난다. 여기서 우리는 웰스가 오해받아왔고 지금도 그런 시네아스트임을 재차 확인하게 된다.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이 말했듯이 그는 지금도 발견할 것이 많은 영화감독이고 그런 과정을 통해 올바로 이해해야 할 인물이다. 우리에게 그 같은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는 자리가 ‘오슨 웰스의 재발견’이란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5월18일부터 31일까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마련된다.

오슨 웰스

웰스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의 기념비적인 데뷔작 <시민 케인>을 경유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스물여섯의 아주 젊은 나이에 웰스가 만들어낸 이 영화는 우선 영화 테크닉의 백과사전적 활용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기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이 영화에서 웰스가 그저 다양한 테크닉들을 늘어놓았다는 식의 오해를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건 그릇된 인식일 뿐이다. <시민 케인>이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인 것은 딥 포커스, 복잡한 미장센, 천장을 보여주는 앙각, 롱테이크, 유동적인 카메라 움직임, 사운드의 창의적인 사용 등이 최대한의 효과를 가지고서 영화 자체와 유기적인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이처럼 창의적인 영화에 대해 영화평론가 데이비드 톰슨은 “한번 이상 볼 필요가 있는 영화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썼다. 그가 덧붙이길 “그래서 <시민 케인>은 미국적 토양과 어울리지 않았다.” <시민 케인>에서 우리는 웰스의 ‘혁신가’적인 면모를 보게 되는데 바로 그런 면 때문에 마음껏 창조의 자유를 누린 그 작품 이후로 그는 할리우드로부터 용인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가는 표현의 수단을 탐구해야 한다고 믿는” 이 사람의 창의적 담대함이 누그러지진 않았다. 단지 예전과 달리 그리 좋지 않은 작업 환경 아래에서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쪽으로 혁신가의 면모가 발휘될 통로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것의 가장 좋은 예가 되는 영화는 <오델로>가 될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웰스는 여러 지역에서 4년이나 되는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그렇게 해서 생겨난 시공간적인 ‘공백’을 그는 마법과도 같은 편집 방식으로 훌륭히 메워냈다. 따라서, 로젠봄이 적절히 지적한 것처럼, <오델로>는 할리우드와 영화 만들기 자체의 제도적 관행에 도전한 용감한 영화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웰스는 연극과 라디오를 거쳐서 영화계로 발을 들여놓은 사람이었지만 일단 이곳에 정착한 이후로는 그 누구보다도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가능성에 집착했고 또 그 가능성을 스크린 위에 빼어나게 실현해내는 데 성공한 영화감독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영화의 이 출중한 형식주의자가 자신의 재능을 과시하면서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낭비할 정도까지 이르면서 스크린에 축조해놓은 것은 종종 ‘미로’라고 표현할 만한 것이다. 그는 스타일을 통해, 그리고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시민 케인> <오델로> <악의 손길> 등과 같은 미로의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웰스 스스로 “미로란 탐색의 주제를 담는 데 가장 적절한 장소”라고 말한 바 있듯이 그 미로 안에는 탐색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 같은 탐색의 대상 혹은 주체는 대개가 그 능력에 있어서 ‘장대한’이란 형용사가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흔히 이야기하듯이 웰스적 세계는 소인(小人)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다. <시민 케인>의 케인, <악의 손길>의 퀸란, <심야의 종소리>의 폴스타프처럼 특출한 능력을 과시하는 인물들이야말로 웰스적 주인공이란 명칭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그들은 결함이 없는 존재도 아니고 시대와 운명과 화해하기만 하는 존재도 아니어서 결국에 그들의 장대함은 환상으로 드러난다. 이들의 몰락을 연민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웰스의 영화는 어쩌면 안타깝게도 그 자신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웰스의 열렬한 추종자 가운데 하나인 피터 보그다노비치는 웰스에 대한 글의 서문에 오스카 와일드가 쓴 문장을 인용했다. “공중은 대단한 관용을 가진 이들이다. 그들은 천재만 빼고는 모든 것을 용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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