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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여행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나의 집, 나의 역사는 어디인가. 대지의 기억을 찾아 떠나는 쓸쓸한 여행

“개인지 늑대인지 구별하기 힘든 어둠 직전의 시간을 프랑스 사람들은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건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투명하게 인식하는 짧은 시간이다”라고 감독 전수일은 밝힌 적이 있다. 프랑스인의 존재와 인식에 대한 격언이 한국으로 넘어와, 그것도 유년 시절 자신의 집을 찾아 종일 마을을 헤맨 뒤 결국 허탕을 치는 한 실향민 2세의 이야기로 넘어와 역사의 시간을 기억하는 애달픔이 되고야 만다. 술에 취한 주인공 남자는 술집 주인을 붙들고 엉뚱하게 묻는다. “아주머니, 제가 어디 살았는지 아세요?”

부산의 영화감독 상규(안길강)는 고향 속초에 사는 숙모가 6·25 때 헤어진 숙부를 찾으러 중국 옌지에 가는 데 동행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여행길 고속버스 안에서 상규는 우연히 눈에 들어온 여자 영화(김선재)에게 관심이 쏠린다. 속초 민박집에서 영화를 다시 만난 상규는 잃어버린 동생을 찾으러 태백에 가는 중이라는 그녀의 여행을 따라 나선다. 거기서 그들을 맞이하는 것은 폐광과 폐촌으로 추락해버린 버려진 땅들이다. 하룻밤을 같이 지낸 뒤 두 사람은 곧 헤어진다. 숙모가 사기에 걸려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상규는 부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전수일은 이 영화를 두고 “전작 <내 안에 우는 바람>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와 함께 기억과 시간의 3부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은 관념론적 이미지의 힘이 더 셌던 전작들에서 한발 물러나 현실이지만 이미 초현실적 느낌으로 변모해버린 공간 탐색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억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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