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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토크] <트랜스포머>는 새 오락거리를 만들려는 할리우드 노력의 총화 같아요

김혜리_"10대 남성 청춘물 + <맨 인 블랙> <고질라> <터미네이터> 시리즈…." vs 이동진_"재미와 ‘재미있는 것 같은 느낌(혹은 착각)’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싸이코팼수?님(김혜리 vermeer@cine21.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선의만으론님(이동진 lifeisntcool@naver.com)이 입장하셨습니다.

싸이코팼수?님의 말(이하 싸이코): 오셨수? 잠깐만요. 입을 손가락으로 트랜스폼하는 중.

선의만으론님의 말(이하 선의론): ^^; 늦어서 미안해요. 이거야 원. <트랜스포머>에 따르면 휴대폰이 로봇으로 바뀌는 세상인데, 장소가 바뀌었다고 메신저 접속도 못했으니…. -..-

싸이코: <트랜스포머> 언론시사는 아침 9시30분에 열렸잖아요? 아시아 지역 프레스 정킷을 겸한 탓도 있지만 예상만큼 아수라장은 아니어서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난 기자가 많아서일까?” 물었더니 동료 문석 기자가 “영화 산업 자체가 저녁형 산업 아니냐”는 명답을 주더군요.

선의론: 그 말이 정답이네요. 그런데 아침부터 <트랜스포머>를 보면, 누구나 하루가 좀 정신없긴 할 거예요. 같은 날 <뜨거운 녀석들>도 보셨다고 했죠? 그런 하루는 귀갓길에 총알택시 뒷좌석에서 일기를 써야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겁니다. +_+

싸이코: 그러고보니 <택시4>도 남아 있네요.<트랜스포머> 첫 장면의 “태초에 에너지 큐브가 있었다”는 CG가 잔뜩 들어간 프롤로그는 다른 영화 예고편인 줄 알았답니다. 좀 있다 일렬횡대 슬로 모션으로 출정하는 군인들- 마이클 베이의 ID숏- 이 나와서 맞구나 싶었지만. ^.~

선의론: 그 설명이 정확히 “태초에 큐브가 있었으니, 그 기원은 알 수가 없었으나…”였어요. 제가 필기머신이잖아요? ^^ 근데, 그렇게 말문을 여는 영화를 정색하고 스토리 분석한다는 게 좀 웃기는 일이란 생각은 들더군요.

싸이코: 일종의 경고네요. 번역하자면 “거기 너! 받아쓰지마!”라고나 할까. ^^;

선의론: 그래서 거기까지만 필기하고 안 했다는. 그걸 적고 있자니 스스로 무척 한심해지는 거 있죠? --; 무익한 노동을 막아주신 베이님께 감사.

싸이코: <트랜스포머>는 어떻게든 새로운 오락거리를 만들어보려는 할리우드 노력의 총화 같아요. 10대 남성 청춘물 더하기 <맨 인 블랙> <고질라> <터미네이터> 시리즈….

선의론: 레퍼런스가 거의 조각천을 기운 누더기 같죠. 잘 알려진 영화들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품이 거의 조립 블록 ‘레고’식이에요. 어떻게 붙여도 이야기는 된다니까요. --; 그런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작품은 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 같아요. 로봇과 소년의 교감이라는 그 작품의 모티브는 <트랜스포머>의 핵심이기도 해요.

싸이코: 브래드 버드의 <아이언 자이언트>! 울면서 봤어요. 사실 그 작품의 정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가까운 면이 있죠. 그런데 <트랜스포머>의 로봇은 인간의 피조물이 아니라 이족/외계인이잖아요. 샘이 거대로봇을 엄마가 보면 기절할까봐 걱정하는 예고편의 한 장면은 <E.T.> 같은 재미를 기대하게 만들었어요. 솔직히 덩치 큰 로봇들이 벽에 밀착해 몸을 숨기려고 애쓰는 광경이 뒷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선의론: 그 장면 재미있죠. <아메리칸 파이>나 <그렘린>에서 따온 듯한 장면과 캐릭터들도 있죠?

싸이코: 그렘린이요? 디셉티콘 진영의 해킹 로봇 프렌지 말씀이죠?

선의론: 네. 그리고 샘과 부모의 대화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그대로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죠. 샘 역의 배우 샤이어 라버프는 참 괜찮더군요. <디스터비아>에서도 좋은 연기를 보였다고 하고 <인디아나 존스4>에도 캐스팅됐다죠. ‘머리 좋은 제이슨 빅스’ 같기도 하고. ^^

싸이코: 영화의 전제를 듣고 예상한 재미는 두 가지였어요. 첫째 거대로봇을 실사영화 속에서 보는 신기함과 둘째, 변신 과정의 스펙터클. 그런데 의외로 변신으로 쾌감을 주는 장면이 적어서 살짝 실망했죠. 사실 선악 양쪽의 우두머리인 옵티머스 프라임과 메가트론, 그리고 샘의 짝인 범블비를 제외하면 로봇 캐릭터들의 개성이 명백히 인지되지 않아서, 차라리 로봇 수를 줄이고 변신의 아기자기함을 살렸으면 어떨까 싶었어요. 어쨌거나 제 베스트 캐릭터는 노란 중고차 속에 숨은 범블비와 소형 가전제품으로 변하는 프렌지랍니다.

선의론: 범블비는 정말 귀엽죠. 인간들 때문에 수난당하기도 하고….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영화를 보고나면 갖고 싶겠더라고요. 사실 남성 관객의 오랜 영화적 꿈 중 하나가 로봇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보고 싶어하는 거였죠. 예를 들어 <마징가Z>나 <로보트 태권V>가 실사영화로 나오면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해왔거든요.

싸이코: 여자인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특히 깡통로봇에 대한 기대가 커요.

선의론: 확실히 <트랜스포머>는 시청각적 자극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저는 극장에 사람이 많으면 제일 앞자리로 가서 발 뻗고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트랜스포머>는 워낙 현란할 듯하여 미리 포기했어요. 이 영화를 맨앞에서 보면 고문일 듯.

싸이코: 맨 앞줄 좌석만 남았다면 차라리 다음 회를 보라고 권하고 싶군요. 영화 도중 대충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니 5초 이상 지속되는 숏은 거의 없었어요. 시지각의 속도 자체가 달라진 걸까요? 이런 속도감이 몸에 맞는 관객이 태어난 것인지 저로선 알 도리가 없지만, 냅다 들이대는 베이 스타일의 영상이 이미지를 음미하는 참을성을 간접적으로 갉아먹는다는 점은 분명하죠.

선의론: ^^ 영상이 잔상에 남아서 뇌로 그 정보가 전달되는 데 보통 2초가량 소요된대요. 그런데 이 영화의 숏들은 워낙 짧고 스피디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미처 그 장면을 인지하기도 전에 다음 숏으로 넘어가니까 도대체 관객이 뭘 봤는지, 혹은 보고 있는지조차 몰라서 어리둥절해지는 경우가 많죠. 저는 특수효과의 부족한 측면을 초고속 숏 연결로 가리려고 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조차 갖고 있어요.

싸이코: 예컨대 <블랙 호크 다운>이나 <본 슈프리머시> 같은 영화는 마찬가지로 빠른 편집을 구사하지만 관객이 공간을 파악하고 인물의 동선을 그려볼 수 있죠. 그러나 마이클 베이 영화 편집은 방향감각을 교란하는 자극을 주는 게 주된 목표가 아닌가 싶어요. 공격당한 쪽의 시점 숏- 약간 떨어져 파괴의 전모를 드러내는 숏- 구경꾼의 경악 반응 숏이 빠르고 짧게 붙는 패턴이죠.

선의론: 재미와 ‘재미있는 것 같은 느낌(혹은 착각)’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영화가 주는 재미란 것의 상당 부분이 후자일 수도 있다는 거죠.

싸이코: 범블비가 더 카스의 노래 <드라이브>를 틀어 샘의 연애를 돕는 장면 좋아하셨죠? ^0^

선의론: 파악 다 끝나셨네요. ^^ 그 직후 마빈 게이의 <섹슈얼 힐링>이 나와서 당황하는 장면도 재미있었어요.^_^

싸이코: 그런데 샘의 여자친구 미카엘라 역의 메건 폭스는 매 순간 섹시한 표정을 잃지 않더군요! 감독마다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여성형이 있는 것 같지 않아요? 폭스는 <나쁜 녀석들> 당시 티아 레오니를 떠올리게 했어요.

선의론: 초기의 안젤리나 졸리를 보는 느낌이 좀 있더라고요.

싸이코: <트랜스포머>는 촬영 방법이 몹시 궁금한 영화예요. 크레인이 있을 법하지 않은 장면에서도 계속 카메라가 미끄러져요. 엔딩 크레딧에 테크노 크레인이라는 장비가 있던데 나중에 알아봐야겠어요.

선의론: 카메라가 트랜스포머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럴지도 몰라. -..-

싸이코: 마이클 베이 감독은 현장에서 심하게 몰아치고 으르렁거리는 연출자라고 들었는데요. 장면마다 감독의 고함이 들리는 듯했어요. 로봇들한테 “거기 메가트론 동작 빨리 못해! 너, 연기하지 말고 빠져서 트랙으로나 변신해!” 막 이러는 거죠. 그럼 로봇들이 “예예 감독님” 숨차게 복종하고. *.* 그런데 옵티머스 프라임이나 메가트론 같은 대장 로봇들의 연기는 이 영화가 어린 관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구나 하는 확신을 주던데요? 허리에 손 짚고 “온 우주에 이르노니…” 하는 식의 웅변이요. ㅋ ㅋ 이만큼 천연덕스러우니 컬트가 될 수도 있을 듯.

선의론: 그 목소리의 톤은 성인 관객에게 기대의 일정 부분을 포기하도록 만들죠. ^^ 시작과 끝이 너무 어린이영화스러워서 극장을 나서며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아요.

싸이코: 그렇다면 어린이 관객에겐 권하시겠어요?

선의론: 아뇨. 광발작 일으킬 것 같아요. -_- 그러나 어쨌든 제트기가 로봇으로 변해서 건물 옥상에 날렵하게 내려앉는 모습 같은 장면의 시각적 쾌감은 정말 대단하긴 하더라고요. 문제는 그런 쾌감이 너무 자주 반복되니까 시신경이 마비되다시피 한다는 거죠.

싸이코: 메가트론 말씀이군요. 원래 메가트론은 총이었는데 영화에서 제트기로 변했다죠.

선의론: 저는 메가트론, 하면 이상하게 아이스바가 생각난다는. -..-

싸이코: 제가 의아했던 부분은, “잘못하면 인간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잡혀간 범블비의 구조마저 포기한 옵티머스 프라임 대장님이, 인구밀도 매우 높은 도심에서 싸움을 벌여 엄청난 사상자를 (아마도) 내신 점이에요. 웬만하면 좀 한적한 데서 싸워주시지 않고. T-T

선의론: 도시 전체가 완전히 박살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이 다치는 장면은 거의 묘사되지 않더군요. 그런데 로봇들의 중량감은 대단했어요. 타격받아 쓰러질 때 실제로 거대하고 무거운 무엇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잖아요. 트랜스포머들의 동작이 어찌나 화려하고 난이도가 높던지 비보이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싸이코: 아무튼 영화 보기 전 예상과 달리 <트랜스포머>를 보고 나서 일상 속의 기계와 가전제품에 대해 특별히 다른 감정을 품게 되진 않네요. 그 점에서는 <토이 스토리>가 더 감명깊었죠. ^^

이동진_<검은집>의 기본적인 이야기는 흥미로웠어요. 하지만 사실적이고 세밀한 공포가 후반에 관습적인 공포로 이어지는데 그 순간을 유예했어도 영화가 훨씬 매력있지 않았을까요. 김혜리_사이코패스가 논리가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이유로, 범죄 수법과 현장에 대한 논리적 추론까지 외면하는 인상이에요. 물리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 행위도 일어나고요.

선의론: 그나저나 이번주 영화들은 ‘일상 속의 음모론’을 다루고 있군요. <검은집>은 우리 주변에 사이코패스들이 숨어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는 영화잖아요. -.-

싸이코: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전두엽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죠. 하긴 그러니까 외형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속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논리인가요.

선의론: 뭐 그런 거죠. 주변의 누구라도 외계인일 수 있고, 주변의 어느 것이라도 변신 로봇일 수 있으며, 지금 지나치는 누군가가 혹시 사이코패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니, 인생 피곤해지는 거죠.

싸이코: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은 앞의 둘과 달리 훨씬 위험하죠. 실제로 뇌의 기형이나 이상이 구제불능의 범죄자를 만드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여기서 우리가 논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있어요. 그러나 사이코패스라고 따로 분류할 인간이 존재하느냐 여부를 떠나, 인간사회를 움직이는 메커니즘이 기초한 사고는 인간성에 대한 신뢰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대전제니까요.

선의론: 그런 점에서 <검은집>이라는 영화가 ‘결과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위험하게 느껴져요. 인터뷰에서 이 영화에 참여한 분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검은집>의 결론은 명백히 “사이코패스는 격리해야 한다”는 데로 이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완전 타자’라고 못을 박으니까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이해가 불가능한 완전 타자로 만들어버리고 나면, 거기서부터 그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에 아주 폭력적인 해결책이 도출되는 데까진 그리 멀지 않은 거라고 봅니다. 사실 이 영화에는 중반까지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하죠. 보험사 직원 전준오(황정민)의 ‘그래도 모두가 인간’이라는 견해와 직장 상사, 혹은 형사의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는 견해죠. 그런데 그게 클라이맥스의 특정 묘사와 ‘사이코패스 일반’으로 확장하는 라스트신까지 보고 나면, 준오의 견해가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거라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잖아요.

싸이코: 원작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진짜 악몽의 시작은 지금부터일지 모른다”예요. 문제의 위험성은 원작에서 그대로 영화로 옮겨온 요소예요. 소설을 쓴 기시 유스케도 선천적 흉악범에 관한 ‘나쁜 피’ 이론에 대해 반박과 재반박을 오락가락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이거든요. “그들도 사람이다”해놓고 금방 “우리 사회는 언젠가 그들에게 잡아먹힐 것이다”라고 겁주는 이중성이 영화에서도 극복이 안 된 거죠.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준오는 외치지만 영화가 보여주고 관객의 마음에 새겨지는 바는 그 메시지와 상치되거든요.

선의론: “그들도 사람이다”라고 말해줘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런 말을 믿지 않는 영화죠.

싸이코: 사이코패스가 인간이 아닌 게 아니라 인간이란 그럴 수도 있는 존재라는 쪽이 맞지 않을까요.

선의론: 영화 속에서 준오의 여자친구(김서형)가 일련의 끔찍한 일을 겪고 준오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말하는데요. 그의 책임이라곤 불행한 타인을 도우려 한 것뿐이잖아요. 그러니 영화를 보고나면 남의 일에는 냉정히 지나치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나오죠. “진심도 아니면서 남을 들쑤시지 마세요”란 대사도 두번이나 나오고요.

싸이코: 참고로 원작의 여자친구는 기르는 고양이가 변을 당하고 나서도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견해를 견지하는 여자죠. 그러고보니 남의 일에 관여 말라는 취지의 대사로는 “먹고살겠다는데 왜 훼방이야?”도 있었네요.

선의론: 가슴을 치는 대사였죠. 눼. -.-

싸이코: 그렇지만 달리 먹고살 길을 찾으면 좋지 않을까요? 검은집을 연립주택으로 개조해 임대한다거나.

선의론: 지하실을 공포체험 테마파크로 만들어 관람객을 받는다거나, <4.4.4>처럼 부실한 지상 공간을 가진 공포영화에 빌려준다거나? ^^

싸이코: 호러로서는 어떻게 보셨어요?

선의론: 기본적인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롭다고 봤어요. 영화 중반까지 상황이 요사이 한국 호러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에 비해 상당히 현실적이라서일 겁니다. 공포영화라기보다 스릴러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싸이코: 보험의 세계란 가입부터 수혜까지 사실 드라마가 넘치죠. 보험사기 사례의 세부도 흥미롭고, 여러 가지로 과연 욕심날 만한 원작이었어요.

선의론: 하지만 스토리의 골격을 온전히 드러내는 순간이 너무 빨랐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적이고 세밀한 공포가 후반 들어서 관습적인 공포로 이어지는데 그 순간을 좀 유예했어도 훨씬 더 영화가 매력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있어요

싸이코: 안구를 공격하는 장면이 많더군요. 벽장 속에 숨어 위협받는 대목은 루키오 풀치의 좀비영화를 보는 것 같았죠.

선의론: 신체 중 공격받을 때 가장 끔찍하게 느껴지는 부분일 거예요. <디센트>도 그렇고 <4.4.4.>도 그렇고 올 초의 <>도 그렇고 안구를 너무도 집중적으로 공략해주신다는….T-T

싸이코: <검은집>은 사이코패스가 논리가 통하지 않는 존재라는 이유로, 범죄 수법과 현장에 대한 논리적 추론까지 외면하는 인상이에요. 물리적으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 행위도 일어나고요.

선의론: 이해가 필요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 공포영화가 관습적인 묘사를 하는 건 어느 정도 용납이 가능해요. 그러나 이 영화의 관습적 묘사는 좀 지나친 면이 있어요. 더구나 중반까지의 사실적인 톤에 비하면 장르적 관습이 재미를 돋우는 게 아니라 이 영화의 기본적인 재미를 저하하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거죠.

싸이코:호러에는 중량감 큰 스타가 자주 출연하지 않다보니, 캐스팅이 이 영화에 대한 관심 수준을 바꿔놓은 면이 있어요. 저는 일반 시사회에 참석했는데 “영화 왜 보고 싶냐?”는 질문에 관객이 이구동성으로 “황정민”을 외치더군요. 그리고 예정에 없던 황정민씨의 깜짝 무대인사가 있었죠.

선의론: 오, 훌륭한 이벤트! 그럴 땐 객석 한복판에서 의자를 뚫고 나와서 인사해야 할 듯. 유독 인연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황정민씨로서는 아마 이 작품이 정말 인연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우연히 서점에서 손에 넣었다가 하루 만에 다 본 소설이 시나리오로 자기 손에 전해진 순간, 얼마나 짜릿했겠어요.

싸이코: 그런데 저는 황정민씨가 <너는 내 운명>의 석중이나 <검은집>의 준우처럼 순박한 남자로 나오는 것보다 약간 모서리가 서 있고 느물거리는 남자일 때 훨씬 잘 설득돼요. ^^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대표적인 예였죠.

선의론: 저는 황정민씨 연기 중 <바람난 가족>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요. 황정민씨는 몰입의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에 연기 톤의 근본적인 느낌이 차이가 나는 배우인 것 같습니다. <검은집>은 사실 후자로 보이는 장면들이 꽤 있었죠.

(잠시 침묵)

선의론: 천사가 지나갔어요. ^^

싸이코: 검은 집 위로요? ^^

선의론: 지엽적이지만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부분들도 보여요. 준오가 의심가는 인물의 옛 담임선생님과 보험 권유한 동창을 만나는 장면에서 상대방이 처음 만나는 준오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한다든가. 사이코패스의 집에 한밤중에 무기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찾아간다거나.

싸이코: (자꾸 듣다보니 사이코에게 발부하는 패스처럼 들려요…)

선의론: 발부받으면 뺨에 늘 붙이고 다녀야 하는 초강력 스티커 패스? 헉, 이 무슨 <검은집>스런 아이디어더냐. 배우 이야기로 돌아가서 유선씨는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지적이고 차가운 얼굴이라는 점도 관계있는 것 같아요. 다른 장르에서도 자주 봤으면 좋겠어요.

이동진_ <준벅>은 캐릭터 사이의 균형 감각이 돋보였어요. 관계의 여백이랄까, 그런 것을 영화적으로 아주 뛰어나게 표현한다는 느낌이 있었죠. 김혜리_보통 영화가 묘사하는 사건은 생략하고, 뛰어넘는 시간은 표현했죠. 오직 영화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사소하고 미묘한 이야기를 해요. 말보다 말투가 중요한 영화라고나 할까.

싸이코: 목소리도 중요할 거예요.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검은집>에서 참 예쁘게 보였어요.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검은집>을 보고 비슷한 이야기에 관심있는 분들께 필립 커의 소설 <철학적 탐구>를 권해드립니다. 이상! 다음 영화 <준벅>은 첫눈에 반해 결혼한 남자의 가족을 방문한 여자를 따라가는 영화인데요. 예술영화 버전의, 아니 선댄스판 <미트 페어런츠>라고 부르면 될까요?

선의론: 그렇죠. 물구나무 선 <미트 페어런츠>라고 해야겠죠. ^^

싸이코: 영화 도입부의 “당신, 어디서 왔죠?”라는 여주인공 매들린의 대사가 뒤로 갈수록 의미심장하더군요. 처음엔 “어디 있다 이제야 나타났어요?”라는 뜻이었는데, 남편을 다시 발견하는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다른 의미가 보태졌어요.

선의론: “넌 대체 어느 혹성에서 왔냐”가 되는군요. ^^

싸이코: 매들린은 정말 상냥하고 건강한 인물로 보이더군요. 그래서 그녀가 낯선 환경에서도 그 장점을 갖고 관계에 성공하는 걸 내심 보고 싶었는데 결국 영화는 선의와 매너만으로는 풀 수 없는 상황이 있음을 확인시켜주더군요.

선의론: 문제는 그런 진심으로 상냥한 사람이 남들에게는 종종 오해된다는 거죠. 그러고보니 <검은 집>의 준오도 비슷한 경우였네요.

싸이코: 그런데 정말 데이트하는 동안 연인의 생김새, 습관을 고유한 무엇으로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쪽 가족을 만나면 그 외모나 행태가 유전과 집단적 속성으로 다시 보이며 치미는 생경한 기분이 있잖아요.

선의론: 그런 순간엔 낭만적인 감정이 대폭 사그라들지 않나요? 사랑이라는 것은 사실 상대의 고유성에 대한 판타지인데 그걸 잠식하는 증거를 발견하는 셈이니까요 특히 이 영화처럼, 그게 망나니 같은 시동생에게서 발견한 증거라면 진짜 확 깨버릴 겁니다. <준벅>은 이런 설정의 영화들이 흔히 따스함을 억지로라도 깔고 이야기를 맺는 것과 다른 선택을 해서 좋았어요. 딱 말할 수 있는 곳까지만, 아는 곳까지만 말하는 영화라는 느낌이었죠

싸이코: 며칠간의 방문으로 매듭지어지거나 변하는 건 없다는 현실 그대로죠. <준벅>의 구도는 외교관의 딸로 자란 세련된 코스모폴리탄 여성과, 편견과 전통 안에 살아온 시골 시집 식구의 대립인데, 필 모리슨 감독은 매들린을 자기도취적 도시 지식인으로 몰지도 않았고 조지의 부모 형제를 어리석고 촌스런 사람들로 일축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이 영화의 미학만큼은 확실히 매들린 부류 사람들의 취향이라고 봐야겠죠? ^^

선의론: 그게 감독이 알고 있는 세계일 테니, 정직한 거죠. <준벅>은 캐릭터 사이의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영화였어요. 관계의 여백이랄까, 그런 것을 영화적으로 아주 뛰어나게 표현한다는 느낌이 있었죠. 출산을 하기 위해 동서 애쉴리가 병원으로 떠날 때 집 앞에 혼자 남겨진 매들린이 이웃집 여자와 눈이 마주치는 모습을 롱숏으로 나눠 찍은 장면 있잖아요? 타인과의 일정한 거리감, 그러면서 동시에 그 타인과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짧은 소통을 할 수 있는 친밀감이 절묘하게 들어있어서 영화의 전체적 느낌을 함축하고 있었어요.

싸이코: 보통 영화가 묘사하는 사건은 생략하고, 뛰어넘는 시간은 표현했죠. <준벅>은 오직 영화이기 때문에 다룰 수 있는 사소하고 미묘한 이야기를 해요. 말보다 말투가 중요한 영화라고나 할까. 저는 이 영화에서 고교시절 남자친구와 결혼했지만 고독한 여인 애쉴리 역을 한 에이미 애덤스에게 놀랐어요. 사랑과 공감의 재능이 풍부한 여성이 오랫동안 타인과 교감하지 못했을 때 겪는 고통을 잘 표현했죠. 손길에 주린 강아지 같은 마음이 전해져요. 처음에는 그저 수다스러운 푼수처럼 보이지만 서서히 깊이가 드러나는 캐릭터입니다.

선의론: 영화 중반까진 매들린을 위주로 영화를 보게 되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애슐리가 도드라졌어요. 배우 몫도 컸겠죠.

싸이코: 그녀가 남편에게 “신은 당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만약 계속 이대로 놓아두신다면 사랑이 과하신 거야!”라고 일침을 놓던 장면 기억나세요? 그저 연약하고 의존적인 여자가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신이죠. 그런데 <준벅>은 중심인물이 모호해요. 이야기의 동력은 매들린, 내면이 가장 풍부하게 그려진 건 애쉴리, 인물 구도의 중심에 서 있는 건 조지인데요. 조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말도 없고 밖으로만 돌거든요.

선의론: 의도적인 부분이죠. 조지의 가족들은 조지의 과거이고 유전자이지만, 조지의 반댓말이니까요. 그런 사람들을 위주로 보여준다는 게 매들린 시점에서 보면 충분히 조지에 대한 사랑의 다른 부분을 자각하게 해주는 것일 테죠.

싸이코: 조지는 가족을 방문함으로써 그들과 분리될 수 없다는 걸 느끼지만, 역시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행복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해요. 그런 면이 이 영화의 예민함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자라면서 거의 평생토록 안간힘을 써서 성인답게 독립된 ‘나’를 만들어내잖아요. 그런데 명절이나 휴일에 가족에게 돌아가는 순간, 어렵사리 쌓아올린 ‘내’가 허물어진다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부모형제는 ‘진짜 나’를 알고 있다고 여기고, 나 자신도 역시 그런가 싶어 일시적으로 퇴행하기도 하고요. 그런 인생의 감정을 잘 집어낸 영화였어요.

선의론: 본질까지는 몰라도, 적어도 삶의 한 지점만큼은 영화적으로 확고히 집어낸, 깊은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의 후반부에서 인물들이 하나씩 돌아가면서 좌절의 순간을 겪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누군가 위로해주죠. 그런데 딱 한명의 눈물만큼은 위로받지 못해요. 그게 어머니의 눈물이거든요. 묘하다고 느꼈어요.

싸이코: 음 글쎄요. 조지의 가족은 가부장제가 아니라 가모장제에 가깝다는 점이 관련있을까요?

선의론: 아버지는 거의 유령 같은 존재죠. 화목하지 못한 가족의 경우 꼭 한명은 다른 가족들이 유령 보듯 아예 안 보이는 듯 행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집의 아버지가 딱 그래요. 거의 가구 같은 존재시죠.

싸이코: 오히려 가구는 조지 어머니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던데요. -_-

선의론: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아버집니다”, 뭐 이런 멘트도 가능. -.-

싸이코: 엥? “아버지는 가족이 아닙니다. 가구입니다” 아닌가요? 아니, “가구는 아버지가 아닙니다. 침대입니다”인가요? 어질어질~ *.*

선의론: 전자가 맞겠죠. 흑흑. 그냥 저 같은 사이코는 패시라고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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