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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디 워> 논란 2라운드

여름휴가를 갔다 와보니 난리가 났다. 1주일 자리를 비웠는데 사태를 파악하느라 그간 있었던 일들을 뒤쫓다보니 1년은 비운 느낌이 들었다. <디 워> 논란에 대해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은 편집장이 된 이래 처음 맛보는 흥분을 안겨줬다. 이렇게 많은 댓글은 경험해보지 못한 터라 나를 비판하는 글인데도 이런 관심 황송하다, 싶었다. 결정적으로 휴가 때문에 <100분 토론>을 놓쳤는데 인터넷에 오른 기사와 댓글을 살펴보니 <무릎팍도사>를 뛰어넘는 올해 최고의 토크쇼였던 모양이다. <디 워>가 그냥 한편의 영화가 아니라 사회현상이 되고 있다고 했던 예측이 들어맞은 셈이다. 물론 그간 <디 워> 논란만 화제가 된 건 아니었다. 남북이 정상회담을 한다는 놀라운 뉴스가 있었고 한국이 별안간 아열대기후로 둔갑했으며 학력 위조 사례가 연이어 적발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다이내믹 코리아’의 활기를 느끼면서 이것이야말로 내가 이 땅을 벗어났을 때 맛볼 수 없던 소똥 같은 고향의 향기임을 실감했다. 구리지만 반가운 그 냄새는 내 몸에 각인된 유전자가 무엇이냐에 따라 혐오스러울 수도 사랑스러울 수도 있다. 나로 말하면 싫기도 하지만 그걸 떠나면 너무 심심할 거란 생각이 든다. 인터넷을 뒤지며 화가 났다가 통쾌했다 발끝이 찌릿찌릿한 걸 보면 그렇다.

지난주 이 지면에서 이성욱 팀장은 내게 작금의 사태에 대한 무서운 말을 기대했지만 지금 와서 독한 말을 보탤 생각은 없다. <디 워> 논란에서 기본적인 대목은 이미 진중권씨가 충분히 했고, 진중권씨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한다. 실제로 <100분 토론> 이후 진중권을 비판하는 글이 수없이 나왔지만 제대로 논리를 갖춘 글을 발견하지 못했다. 스포일러를 했다고 시비를 걸거나 오만한 태도를 문제 삼거나 또는 진중권은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트집이나 투정이지 토론의 핵심은 아니다. 이번호 쟁점에서 썼듯 <디 워> 논란은 이제 다른 단계로 넘어갔다. 아니 다른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산업적으로 보면 미국 흥행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겠지만 비평적으로는 영화 안팎으로 좀더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호 ‘전영객잔’에서 허문영 평론가는 <디 워>의 에필로그가 불편한 이유를 설명한다. 이어지는 영화읽기에선 <디 워> 현상이 일어난 영화적 메커니즘에 대해 정한석 기자가 혜안이 돋보이는 분석을 했다. 김도훈 기자의 오픈칼럼과 달시 파켓의 외신기자클럽도 <디 워> 현상과 연관지어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이다. 특집기사로 2007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되짚어본 것도 <디 워>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이렇게 우리의 차림표를 제시하면 <씨네21>의 <디 워> 죽이기는 심하다, 라는 식으로 생각할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누군가가 <디 워>를 죽인다는 음모론에서 벗어났음 싶다. 정한석 기자의 글에서 지적하듯 그것은 영화가 만들어낸 적에 대한 환상일 가능성이 크다. <100분 토론> 덕에 예매율이 올라간 걸 봐서 알 수 있듯 설령 죽인다고 마음먹어도 죽는 이무기가 아니다. 이미 신드롬이 되어버린 <디 워>의 쟁점에 대해 우리는 앞으로도 차분히 정밀한 언어로 살펴볼 것이다.

P.S. ‘아름다운 영화인’ 캠페인으로 했던 만원릴레이가 이번주 100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참여해준 100분의 영화인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더불어 1기 독자편집위원회가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그동안 다양한 의견을 통해 더 나은 <씨네21>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 독자편집위원회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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