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옛 영화들에 대한 러브레터 <애프터 미드나잇>
박혜명 2007-08-22

요즘 젊은이들의 삼각관계 러브스토리를 빙자한, 옛 영화들에 대한 사적인 러브레터.

영화박물관에서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는 마르티노(조르지오 파소티)는 가족이나 친구 없이 오로지 영화를 벗삼아 혼자 지내는 남자다. 업무시간이 되면 그는 박물관을 닫고 자기가 좋아하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틀어놓은 채 밤을 지샌다. 마르티노가 일하는 박물관 근처에는 햄버거 가게가 있고, 여기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만다(프란체스카 이나우디)는 상습 차량절도범인 엔젤(파비오 트로이아노)과 사귄다. 무성의한 남자친구에게 늘 서운한 마음이던 아만다는 우연한 계기에 마르티노와 인연이 닿게 된다. 엔젤과 달리 어리숙하지만 다정한 마르티노에게 아만다는 호감을 느끼고, 애인의 변심을 눈치챈 엔젤은 그때부터 여자친구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애쓴다. 선택의 문제가 엮인 골치 아픈 삼각관계를 테마로 삼은 <애프터 미드나잇>은 극중 스토리와 전혀 무관한 제3자의 내레이션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이를 통해 상황의 심각성보다는 예측 불가능한 크고 작은 요소들이 어떻게 인생의 한 단락을 바꿀 수 있는지를 유쾌하게 보여준다. <애프터 미드나잇>은 굳이 장르를 구분하자면 로맨틱코미디에 가깝지만 전형적인 미국식 장르는 아니기 때문에 익숙한 전개방식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 있다.

<애프터 미드나잇>은 할리우드와 유럽의 고전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 따뜻하게 어필할 수 있는 영화쪽에 더 가깝다. 이 영화의 연출·각본을 담당한 다비데 페라리오는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에 대한 책을 쓴 평론가이기도 하고 안제이 바이다, 빔 벤더스의 영화들을 이탈리아에 소개한 배급사 대표이기도 하다. 감독은 주인공 마르티노의 손길을 통해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 <쥴 앤 짐> 등 오래된 영화의 클립들을 이 영화의 화면 위로 올려놓는다. 여자의 환심을 사려다 엉뚱한 사고를 벌이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 속 모습들은 아만다를 향한 마르티노의 심정과 상황을 대변하는 도구가 된다. 영화는 멀어져가는 연인의 뒷모습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며 무성영화처럼 끝을 맺은 뒤 짧은 구절을 띄운다. “마리아 프롤로(이탈리아 영화박물관 창립자)와 버스터 키튼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감독이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 말은, “영화는 끝나지만 시네마는 영원하다”라는 영화 속 내레이션과도 공명한다. <시네마 천국> 정도의 감동을 자아내지는 않지만 여름밤, 영화광들의 노스탤지어를 간지럽히기에는 나쁘지 않은 영화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