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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 액션 장르의 걸작 <본 얼티메이텀>

첩보 액션 장르의 새로운 이정표

이 정도면 첩보 액션 장르의 걸작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의 뒤를 잇는 시리즈 완결편 <본 얼티메이텀>은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에 박력 넘치는 액션이 시종 꼬리를 무는 탁월한 오락영화다.

대도시의 차가운 거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 시리즈는 냉전이 끝난 뒤 맞서 싸워야 할 적을 정체성과 함께 잃고 무덤으로 걸음을 옮기던 첩보영화가 회생할 수 있는 길 하나를 명확히 제시했다. 컴퓨터그래픽의 발달로 극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상황에서도 스타일상으로는 촬영과 편집 그리고 연기처럼 원론적으로 영화적인 요소들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소련처럼 외부에 존재하는 ‘악의 제국’을 상정하지 않고 시선을 내부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CIA 최고의 암살요원이었던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사고로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비밀 조직 블랙 브라이어의 존재를 알게 된다. 치부를 들키지 않기 위해 조직은 제이슨 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제거하려 한다. 그러나 본은 CIA 내부의 파멜라(조안 앨런)와 니키(줄리아 스타일스)의 도움을 받아 점차 치부의 핵심에 접근해간다.

<본 얼티메이텀>은 건조하면서도 우아하고, 스피디하면서도 냉정하다. 오락영화로서 이 작품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첩보 액션 장르의 발전기와도 같은 추적 시퀀스에서다. 모스크바에서 시작해 종횡무진 각국을 누비다가 뉴욕에서 끝나는 이 영화는 시종 쫓고 쫓기는 자의 긴장을 격렬한 박동으로 삼는다. 모로코 탕헤르에선 좁은 골목길을 누비며 수평으로 쫓고 쫓기고, 미국 뉴욕에선 고층 건물을 오르내리며 수직으로 쫓고 쫓긴다.

게다가 폴 그린그래스는 수많은 인물이나 차량으로 북적거리는 좁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서스펜스 제조에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시위대와 진압군으로 붐비는 북아일랜드 데리시(市)의 거리(<블러디 선데이>), 테러범과 승객이 대치하는 기내(<플라이트 93>), 전차와 자동차 그리고 행인으로 북적대는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본 슈프리머시>)을 무대로 뛰어난 인물 동선 처리와 사건 스케치 능력을 보여줬던 그는 이제 하루 40만명의 이용객들로 붐비는 런던의 워털루역에서 다시금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그리고 서로 다른 네 인물의 움직임과 충돌을, 카메라가 인간의 심장을 달고 있는 듯한 촬영과 수많은 숏을 정교하게 이어붙이는 편집, 리듬을 최적으로 살린 음악과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 에디팅으로 멋지게 표현한 탕헤르의 액션 시퀀스는 가히 신기에 가깝다.

탁월한 기술적 숙련도와 빼어난 오락영화적 재미를 탑재한 제이슨 본 시리즈에 화룡점정하는 것은 첩보물의 근거 자체를 되짚어보는 시각이다. 서부극 장르에서 <하이 눈>이나 <수색자> 혹은 <용서받지 못한 자>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 영화들이 수행한 일을 제이슨 본 시리즈는 첩보영화 장르에서 해낸다. <본 슈프리머시>에서 자신이 암살한 러시아 정치인의 딸을 찾아가 사죄했던 제이슨 본은, <본 얼티메이텀>에서 이전에 그가 대결 끝에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았던 또 다른 비밀요원과 재차 마주친다. 제이슨은 상대가 총을 겨눠오며 그때 왜 죽이지 않았는지를 캐묻자 두 문장의 짧은 답변으로 정곡을 찌른다. “너는 나를 죽여야 할 이유를 아니? 저들이 만든 우리의 모습을 봐.”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제이슨 본이 찾아가는 곳은 블랙 브라이어 본부가 있는 뉴욕 맨해튼의 심장부. 부패한 몸을 지키기 위해 건강한 수족을 잘라내려는 정보기관의 생리를 비판하고 지난 수십년간 미국이 자유와 정의의 이름으로 자행했던 무리한 대외정책을 반성하는 <본 얼티메이텀>은, 처음 잘못되었던 지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결자해지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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