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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봅시다] 부시와 맞짱 뜬 언니들
안현진(LA 통신원) 2007-10-04

<딕시칙스: 셧업 앤 싱>의 주인공 딕시 칙스

<딕시칙스: 셧업 앤 싱>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인 게 부끄럽네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이 한마디로, 여성 뮤지션 역사상 최고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던 딕시 칙스는,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 되어 편견과 혐오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발언은 치명적이었고 뒤따른 고난은 깊었다. 재기하기까지 3년, 그 뒤 매번 무대에 서면 지금이 절정일 것 같아서 눈물이 난다는 단단한 언니들의 인간극장이 시작된다.

1. 딕시 칙스, 넌 누구냐?

딕시 칙스는 보컬 나탈리 메인즈, 벤조의 에밀리 로빈슨, 피들을 연주하는 마티 맥과이어로 구성된 텍사스 출신 컨트리 밴드다. 1989년 당시 어윈이라는 성을 사용했던 마티와 에밀리 자매를 포함해 4명으로 시작한 밴드는 1995년 나탈리 메인즈가 참여하며 트리오로 재탄생했다. 1998년 첫 앨범 <와이드 오픈 스페이스>를 시작으로 총 4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으며, 현재까지 음반판매량은 3600만장에 이른다. 대표곡으로는 미드 템포의 <카우보이 테이크 미 어웨이>와 매 맞는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자유로워진다는 내용의 <굿바이 얼>, 베트남 참전 군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트레블린 솔저> 등이 있는데, 이라크전의 미군을 지지하지 않는 거냐는 항의까지 불러일으킨 반부시 발언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레블린 솔저>의 연주를 마친 직후에 한 말이다.

2. 이라크 공습과 부시 비판

운명은 한순간에 달라졌다.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공습을 열흘 앞둔 2003년 3월10일, 리드 보컬 나탈리 메인즈가 런던 무대에서 “재미있자고 한 농담”은 재앙으로 변했다. 9·11 테러 뒤 조성된 불안감으로 미국 내 부시의 지지율이 치솟던 때였다. 그런 때에 여성 가수가 외국에서 대통령을 비난하다니! 딕시 칙스의 사과에도 공화당과 보수적인 남부인들은 공개적인 비난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밴드의 음악을 틀지 않기로 한 컨트리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국은 딕시 칙스의 CD를 폐기하는 이벤트까지 마련했다. 슈퍼볼 경기장에서 국가를 부르던 그래미 위너는 그렇게 왕좌에서 끌려 내려졌다. 음반 판매량은 급감하고, 라디오는 방송을 거부했다. 스폰서는 관계를 종료하려 했으며,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를 명기한 협박장까지 도착했다. 생득권인 표현의 자유가 왜곡된 것을 시작으로, 주변인들에게까지 혐오가 전이되는 추한 상황에 직면한 딕시 칙스는 침묵을 제외한 모든 수단으로 정면승부를 시작했다.

3. 위기에 대처하는 언니들의 자세

표현은 무례했지만, 신념을 말한 것에는 후회가 없다는 언니들은 대담한 패를 꺼내든다. ‘배신자’(Traitor), ‘매춘부’(Sluts), ‘떠버리’(Big Mouth) 등 성난 대중에게서 얻은 비난과 욕설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에 낙인처럼 인쇄하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표지모델로 나선 것이다. 감탄고토의 라디오를 떠나 새 매체에 주력하고 “우리가 언제 바바라 월터스를 만날 수 있겠냐”며 위기를 기회로 재정비했다. 또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대로 제 목소리를 내는 싱어송라이터로 진일보한다. 결국 원한 적 없는 외로운 싸움에서 성장의 결실을 얻은 셈이다. 4년 만에 발표한 앨범 <테이킹 더 롱 웨이>로 그래미 5개 부문을 석권한 그들은 타이틀 <Not Ready To Make Nice>를 통해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6년, 3년 만에 돌아온 런던에서 나탈리 메인즈는 새로운, 그러나 이제는 변심하지 않을 팬들의 기대에 보답했다. “미국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이라서 정말 부끄러워요.”

4. <딕시칙스: 셧업 앤 싱>

<할란 컨트리, USA>(1977)와 <아메리칸 드림>(1991)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바라 코플과 공동연출자 세실리아 펙은 이 사건이 있기 전부터 딕시 칙스에 투어 다큐멘터리를 제의했지만 전속 촬영팀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발언 후 상황이 바뀌며 딕시 칙스가 바바라 코플을 찾아왔다. 인물보다는 사건으로 이야기하는 코플은, 뉴스 보도, 투어 공연, 관계자 인터뷰 등 22시간 분량을 촬영하고도 밋밋하단 생각이 들었고, 정치적인 논쟁 이전에 진정성을 불어넣기 위해 밴드의 일상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딕시칙스: 셧업 앤 싱>은 정치적 발언이 뮤지션으로서의 딕시 칙스와 미국 시민으로서의 그들에게 끼친 영향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동시에, 미국이 자랑하는 표현의 자유가 빛 좋은 개살구임을 폭로하는 영리한 리포트다. 하지만 언론의 터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으니, 예고편에 부시를 비난하는 장면이 삽입된 이유로 <CBS>를 제외한 공중파에서의 광고가 불가능하기도 했다.

5. 우정이 힘

사자머리에 풍성한 소매의 드레스를 입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딕시 칙스가 상상이 되는가? 딕시 칙스의 오늘을 있게 한 일등공신은 1994년부터 함께한 매니저 사이먼 렌쇼다. 렌쇼는 런던 공연 뒤 “내가 한 말이 아니”라며 당황스러워하는 두 멤버에게 “지금부터는 ‘우리’로 대응해야 한다”며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상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라디오 방송국의 보이콧이 정치적인 검열이었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끈끈한지 모른다. 우린 희로애락을 함께 겪었다”라는 에밀리 로빈슨의 말처럼 그들은 비 온 뒤 굳어진 땅 같다. “이 일이 내 인생에, 밴드 커리어에 일어난 일 중에 최고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마티 맥과이어는 “그래도, 나탈리가 부담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내일이라도 녹음도, 투어도 싫다고 하면 나는 그 애가 평화를 얻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밴드를 그만둘 준비가 돼있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당연하겠지만 그들에게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은 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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