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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극의 판타지 <내니 다이어리>
오정연 2007-10-03

흥미롭다. 사랑스럽다. 그러나 쿨하거나, 날카롭진 않다. 모든 교훈극이 그러하듯

월스트리트 마천루 안에서 양복차림은 모두 백인이고, 청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히스패닉이나 흑인이며, 그 사이를 질주하는 택시기사 열에 아홉은 인도며 러시아에서 넘어온 이민자다. 패션과 개성과 자유의 도시 뉴욕은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가장 도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뉴저지 출신 애니(스칼렛 요한슨)가 얼떨결에 뉴욕 상류층 ‘X 가족들’ 외아들의 유모로 ‘발탁’된 이후의 고군분투를 그린 <내니 다이어리>는 그런 뉴욕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바라본다. 영화의 오프닝은 뉴욕 자연사박물관. 아마존과 사모아 원주민의 양육행태를 보여주는 밀랍인형 옆으로 뉴요커가 전시돼 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인류학도를 꿈꾸는 애니에게 있어, 기를 쓰고 가정을 꾸린 뒤 온갖 명품으로 치장하고도 쇼핑에 피부관리, 자선사업 때문에 자신의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야 하는 X부인(로라 리니)과 불륜이 일상인 X씨(폴 지아매티)의 모습은 인류학적 고찰의 대상이란 뜻이다.

2002년 첫 출간 이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내니 다이어리>는 얼핏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류의 칙릿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촌스러운 시골뜨기 여성이 일과 사랑을 동시에 쟁취하며 진정한 자아찾기에 성공하는 줄거리를 제외하면 두 영화는 전혀 다른 길을 간다. <내니 다이어리>는 첨단 패션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전시하기보다는 유모를 주인공으로 하는 최고의 걸작 <메리 포핀스>의 현대판 버전을 만드는 데 더 큰 재미를 느끼는 듯하다(한국 자막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식으로 해석됐지만, 추억의 명대사 ‘수퍼칼리프레질리스틱엑스피알리도셔스’도 만날 수 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유모를 고용하고, ‘유모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하느라 또다시 바빠지는 별천지 같은 동네에 애니는 끝까지 적응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변화시킨다. 악마 같은 편집장이 악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마침내 이해하고 동화되는 <악마는…>의 앤디와는 다른 모습이다. 사회초년생의 불안함을 포착한 세심함은 제법 눈여겨볼 만하지만, 결국은 <내니 다이어리>는 칙릿의 쿨한 현실감과 결별하고 교훈극의 판타지를 택한 셈이다. 영화에는 뉴욕의 아이들을 키우는 숱한 유모들의 모습이 종종 묘사된다. 애니를 제외하면 모두가 유색인종이고 이민자이며 유모를 생업삼는 이들이다. (무)의식적으로 이들과 애니를 구분하는 영화의 시선이, 영화 속에 묘사된 뉴욕 상류층보다 낯설고 위험하게 느껴진다면 지나친 오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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