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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노래하는 건반 <포미니츠>
김혜리 2007-10-24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노래하는 건반

<피아니스트>의 이자벨 위페르처럼 <포미니츠>에서 피아노를 치는 두 주인공은 얼음장 아래 정념의 덩어리를 숨기고 있는 여인들이다. 여든살의 독신녀 트라우데 크뤼거(모니카 블라이브트로이)는 여죄수 교도소에서 30년째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다. 대가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의 유망한 제자였던 그녀는 2차대전 중 사랑하는 여인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이후, 감정을 깊은 곳에 묻고 건조하게 살아왔다. 트라우데의 가라앉은 내면을 흔드는 것은 자학적 발작을 일삼는 거친 죄수 제니(한나 헤르츠슈프룽)의 폭풍 같은 연주다. 재능있는 딸을 모차르트로 만들기 위해 몰아붙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집을 뛰쳐나왔던 제니는 무책임한 남자친구와 연루된 살인사건으로 수감됐다.

연인의 못다 핀 재능이 전쟁 속에 스러져버린 비극을 목격한 트라우데는 제니를 콩쿠르에 내보내 그녀의 천재성을 살려내고자 한다. 하지만 불신에 찬 젊은 피아니스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 여자는 서로를 바라보며 콧방귀를 뀐다. “네가 인생을 알아?” 고집스러운 트라우데와 난폭한 제니는 쉽게 관객의 호감을 사는 인물이 아니다. 아니, 관객은 둘째치고 두 사람도 좀처럼 서로 친해지지 않는다. 그저 모종의 무뚝뚝한 이해가 나날의 단조로운 연습 사이에 형성될 뿐이다.

<포미니츠>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예술가’라는 19세기 이래의 낭만주의적 개념을 따른다. 따라서 주안점은 단계적 수련 과정보다 감옥이 상징하는 적대적 환경을 예술이 어떻게 뛰어넘는가에 있다. 교도소가 배경인 만큼 <포미니츠>의 음악적 레퍼토리는 클라이맥스를 제외하면 모차르트와 베토벤 소나타 위주의 담담한 독주곡으로 구성됐는데 장식도 갈채도 없이, 오직 눅눅한 감옥의 공기와 건반, 그리고 생채기투성이 손가락이 충돌해내는 음향은 어느 콘서트홀 못지않은 효과를 낸다. <포미니츠>는 식었다 끓어오르기를 반복하지만, 매혹적인 쪽은 차가운 대목이다. 트라우데가 제니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느낀 것은 명백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래서 “손을 다치지 말라”는 트라우데의 교사다운 다짐에는 깊은 뉘앙스가 실린다.

“난 네가 더 나은 피아노 주자가 되도록 도울 순 있지만 더 나은 인간이 되게 해줄 순 없다”는 트라우데의 대사는 전쟁의 지옥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의 “나는 인간에 대해 발언권이 없다”는 고백처럼 들린다. <포미니츠>의 두 주인공은 모두 지나간 기억을 봉인하거나 외면하느라 고통받아온 사람들이다. 그것이 여의치 않아졌을 때 트라우데와 제니는 과거의 악업에서 벗어나 다른 생으로 진입할 희망을 예술을 통해 구한다. 그것은 곧 전후 독일 예술에 잠재된 보편적 갈망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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