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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땅의 세상 <검은 땅의소녀와>

이래도, 카지노가 폐광촌을 살릴 수 있다고?

전신 거울을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세상을 응시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소녀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온다. 아니 던져진다. 첫숏과 마지막 숏의 이러한 대조는 전수일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일종의 전환점과도 같은 <검은 땅의 소녀와>의 위상과 유사점이 있다. 전작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 동일한 강원도 탄광촌을 배경으로 기억의 편린들을 꿰맞추며 자신을 찾아가는 내면의 여정을 보여주었다면, <검은 땅의 소녀와>는 인물들이 하루하루 버텨가기에 급급한 검은 땅의 세상으로 그 시선을 옮긴다.

진폐증에 걸린 해곤(조영진)은 회사에서 쫓겨나고, 허름한 집 한채마저도 철거 대상인 형편이다. 광부들은 합병증으로 발전되지 않는 한 진폐증만으로는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 해곤은 철거 보조비로 보험조차 가입되지 않은 트럭 한대를 임대해 장사를 시작하지만, 정신 지체아 아들 동구(박현우)의 실수로 사고가 나면서 작은 희망마저도 빼앗긴다. 이제 해곤의 현실은 탄광의 갱도보다도 어둡다. <검은 땅의 소녀와>는 이러한 처참한 상황 앞에서 가족의 미래를 위한 선택을 해곤의 여덟살짜리 딸 영림(유연미)의 몫으로 넘긴다.

전수일 감독이 그렇다고 전작에서 추구했던 탐미적인 색깔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겨울철의 탄광촌, 검은 땅 위로 하얀 눈이 점박이처럼 박힌 풍경이나 폐광촌 사람들의 표정을 닮은 무채색의 풍경을 포착할 때, 전수일 감독은 탐미적 욕망과 리얼리즘적 욕망 그 어느 것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물론 누군가의 고통이 탐미적인 화면 속에 드러날 때, 이는 고통의 전시, 즉 타자의 고통을 ‘볼 만한 것’으로 탈색시킬 위험이 있다. <검은 땅의 소녀와>가 이러한 위험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위험에 빠지진 않은 것은 그러한 탐미적 장면이 인물의 현실적 상황을 묘사하는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검은 땅의 소녀와>에서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끔찍한 장면은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갱도에서 노동하는 광부들의 모습이다. 탄광의 갱도로 내려가고, 작업하고, 지상으로 귀환하는 일련의 과정을 특정한 기교없이 담아내는 이 장면에서, 노동하는 광부들의 몸짓과 표정은 온기를 잃은 그림자나 유령의 그것에 가깝다. 색과 빛을 잃은 무채색의 삶, 이는 <검은 땅의 소녀와>에 담겨 있는 강원도 탄광촌의 모든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갱도 밖의 세상은 또 다른 갱도일 뿐이다. 잠에서 깨어난 영림의 모습 위로 어디선가 앰뷸런스 소리가 들려오고, 화면이 전환하면 누군가가 응급차에 실려 가는 것을 보여준다.

전수일 감독은 폐광촌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한켠에서 조용히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으로 그 마음을 담으려 한다. 술집에 모인 광부들이 <아리랑>을 개사한 <광부 아리랑>(광부들 사이에서 실제로 불리는 노래라고 한다)을 걸쭉한 목소리로 불러젖힐 때, 술집 밖에는 이를 측은히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리는 광부가 등장한다. 또 동구의 특수학교 버스에 올라탄 한 여인(강수연)은 어린 남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낸다. 물론 영화는 그들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감이 다소 몽롱하게 묘사되는 것처럼, 이는 어디까지나 감독이 꿈꾸는 판타지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느 날 동구가 사라지고 영림과 해곤은 그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맨다. 그때 동구는 높이 솟은 종탑에 올라가 온 세상이 울리도록 종을 쳐댄다. 마치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하지만 가족 외에는 아무도 달려오지 않는다. 동구의 종소리는 실패한 외침이거나 호소일 뿐이다. 이후 영화는 영림의 ‘어떤’ 선택들을 따라가는데, 영림에게 선택이란 마치 강도를 만났을 때 죽을래, 돈줄래의 갈림길에서 돈을 내밀 수밖에 없는 ‘강요된 선택’에 가깝다. 길을 나선 영림은 버스 정류장 앞에 우두커니 서고, 영화는 그것을 롱숏으로 잡는다. 영림은 지금까지 한발 떨어져 자신들을 바라봤던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 시선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영림의 응시는, ‘검은 땅의 소녀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당신을 향한 윤리적 요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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