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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고 폭력적인 모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오정연 2008-02-20

도망자와 추격자와 보호자 혹은 나쁜 놈과 좋은 놈과 덤덤한 놈이 관여한, 돈가방을 둘러싼 기이하고 폭력적인 모험

태초에 돈가방과 시체가 있었다. 아마도 잘못된 마약거래의 결과물인 듯한 현장을 지나가던 사냥꾼 모스(조시 브롤린)가 돈가방만 챙겨 건조하고 치밀한 도망을 계획하자,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산소통을 들고 다니는 살인마 쉬거(하비에르 바르뎀)는 무표정한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는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25살부터 보안관이었고 은퇴를 앞둔 벨(토미 리 존스)은 쉬거보다 앞서 모스를 만나 그를 구하려들지만, 점점 나빠지는 세상이 점점 피로해지는 그의 통제를 벗어난 지 이미 오래다. <파고>의 하얀 눈밭을 떠올리게 하는 텍사스의 황량함을 배경으로, 익히 본 적이 없는 유머를 무표정하게 구사하는 인물들이 뚜벅뚜벅 폭력과 공포의 심장으로 향하는 영화의 곳곳에는 코언 형제의 인장이 선연하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영화는 형제 최초의, 그것도 아주 성실한 각색작이다. 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을 향한 항해>의 한 구절을 제목 삼은, 노년의 보안관의 내레이션이 불쑥불쑥 등장하는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한결같이 동정없는 세상을 고향 삼는 주요 인물은 물론이고 늘 미간을 찌푸린 채 불안해하는 모스의 창백한 아내조차 단 한번도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바 없고, 근면 성실하게 도망과 추적에 열중하던 이들은 격한 시선 한번 교환하는 일이 없으며, 별다른 비명도 없이 무대에서 퇴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외도 과장도 변명도 없는 직설법이 수사로서의 미니멀리즘을 넘어 성실한 관찰과 철학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현명하고 진보적인, 묵직하고 재기발랄한 장르 변형은 원작과 감독 각각의 연륜과 둘의 조화 모두에 힘입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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