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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시타 노부히로]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끌린다.”
정재혁 사진 오계옥 2008-03-18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 인터뷰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각본을 10번 이상 고쳐쓴 뒤 시대를 90년대 초로 바꿨다고 들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90년대 초라는 시대가 연출하기에 편리했던 것 같다. 휴대폰도 없고, 아직은 뭔가 부자유한 느낌이 남아 있는 시절. 그냥 이야기를 풀기에도 재밌지 않을까 싶었다. 당시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무너졌던 때라고 하는데 나는 학생이라 별로 실감을 못했고, 그냥 텔레비전에서 불경기가 될 거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일상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대체 세상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했다.

-멧돼지 전설의 고장 마츠가네란 마을이 인상적이다. 어디에나 눈이 있는데 거기서 기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로케이션 헌팅 때부터 눈만 있는 마을은 너무 그림 같을 거라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눈이 남아 있긴 하지만 설국의 이미지는 아닌 그런 곳을 원했다. 겨울의 나른한 느낌이 좋았고, 추운 곳을 그냥 걷는 것만으로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란성 쌍둥이로 등장하는 형제 히카리와 코타로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했나. =주인공 설정이 힘들었다. 처음엔 일란성 쌍둥이로 정했다가 나중에 이란성 쌍둥이로 바꿨다. 같은 학년이고, 항상 같은 걸 보고 자랐는데 한명은 경찰이고 다른 한명은 양계장에서 일하는 말썽쟁이다. 참 그로테스크한 관계구나 싶더라. 게다가 아직도 함께 살고 있고. 그런 불편함을 그리고 싶었다.

-전작인 <린다 린다 린다>가 당신 작품 중에선 처음으로 흥행에 성공한 영화다. 이 사실이 이번 영화에 영향을 끼쳤나. =일단 <린다 린다 린다>가 관객에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다시 나만의 정도(正道)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마츠가네 난사사건>은 나의 20대를 마치는 느낌이 큰 영화다. 이전까지 나는 청춘영화만 찍어왔고, 그 안에서 폭을 넓히지 못했다는 느낌도 있었다. 30대에는 좀더 시야를 넓혀서 해보자는 결심을 한 거고.

-당신에겐 청춘이 어떤 의미인가. =가진 건 없으면서 자신만 있는 거. 내가 만들었던 영화들을 보면 다 그런 놈들만 나온다. <린다 린다 린다>도 겉보기엔 산뜻하지만 결국 비슷한 캐릭터들의 영화다. 그 무렵엔 나도 그렇게 자신감만 넘쳤다. 요즘엔 그때처럼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다시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은 소녀만화를 원작으로 했다. 무척 의외로 느꼈다. =일단 소녀만화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생소했고, 첫 경험이었다. 처음엔 진도를 나가지 못해서 몇번이나 좌절했다. 하지만 소녀만화 방식에 익숙해지니까 빠져들게 되더라.

-각본을 <메종 드 히미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와타나베 아야가 썼다. 그녀와의 작업은 어땠나. =아야와 함께 일을 한다는 건 내가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프로젝트를 맡은 여러 이유 중 하나다. 계속 팬이었으니까. 무카이(고스케)의 각본은 매우 친절하지만 아야의 각본은 읽기엔 재밌어도 촬영해보면 상당히 힘들다는 걸 알 수 있다. 손이 많이 간달까.

-<크림레몬>을 시작으로 <린다 린다 린다>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등은 영화사에서 제안받은 프로젝트다.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과 차이가 많이 있나. =<크림레몬>이나 <린다 린다 린다>를 할 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별로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면 해도 좋지 않겠어?’ 뭐 이런 느낌이랄까. 제안받은 프로젝트라고 해도 <크림레몬>도 나랑 예전부터 같이 하던 촬영감독이었고, 각본도 무카이가 써서 별 다른 점은 못 느꼈다.

-당신 영화에는 대화와 대화 사이의 정적이 길고 롱테이크도 많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나는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끌리는 연출자다. 한 장면이 이어지다 질리지 않을 순간을 찾아 끊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린다 린다 린다>의 라이브 장면도 4명의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마지막 라이브 장면은 실제로 찍은 컷을 다 쓴 거다. 필요한 최저한의 컷만 간다. 그게 롱테이크든 짧게 끊어서 가든 중요하진 않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길게 가게 되는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라면 특수한 기술이나 재주는 부리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

-<린다 린다 린다>를 비롯해서 대부분 청춘의 주인공들은 해피엔딩이라 하기엔 심심한 결말을 맞는다. =그대로 끝나버리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내 영화에 성장은 없다. 앞으로 나아가긴 하지만 성장하진 않는다. <린다 린다 린다>에서도 네 여학생은 모두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을 거다. 이건 비관적인 게 아니다. 서로 변해간다는 건 좋은 거니까.

-<린다 린다 린다>를 합숙하면서 찍었다고 들었다. 촬영 분위기가 좋았겠다. =내가 시골에서 영화를 찍는 건 사실 합숙하며 촬영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찍으면 배우, 스탭들과 같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바보의 하코선>을 할 때도 전원 합숙하면서 찍었다. 지금 생각하면 매우 실례지만 여자배우, 남자배우가 한방에서 같이 자기도 했다. 남자, 여자 따로 나누지 않고 그냥 배우는 이 방! 이런 식으로.

-일본의 짐 자무시, 아키 카우리스마키란 수식을 듣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그 말을 처음 들었던 게 <우울한 생활>을 찍었을 때다. 카우리스마키의 <레닌그라운드 카우보이>랑 느낌이 비슷하다고. 짐 자무시 이야기는 <바보의 하코선> 때 나왔다. 한 <버라이어티> 기자가 젊은 짐 자무시가 찍었을 법한 영화라고 그랬었나. 그래서 그 다음엔 무카이랑 <리얼리즘 숙소>를 <천국보다 낯선>처럼 찍어보자고 했다. 대놓고 따라해보자고. (웃음) 그랬는데 그때는 또 아무 말이 없더라. 들킬 줄 알았는데 안심이었다.

-당신의 영화를 보면 다운타운(일본의 유명 개그 콤비)의 마쓰모토 히토시(2007년 <대일본인>으로 영화 데뷔했다)가 하는 개그의 영향도 보인다. 폭소가 아닌 미지근한 웃음이 그렇달까. =아마 영향을 받았을 거다. 나의 소스라고 하면 TV가 꽤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또 내가 오사카예능대학을 나왔지 않나(마쓰모토 히토시가 오사카 출신이다). (웃음) 기타노 다케시의 영향도 받았을 거고.

-영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바가 있나. =<린다 린다 린다>를 본 사람이 있다면 <우울한 생활>을 찾아서 다시 봐줬으면 좋겠다. 기타노 감독에겐 매우 실례의 말이지만 내가 기타노 영화를 보면서 ‘에, 저 정도면 나도 찍을 수 있겠군’이라고 했던 것처럼, 내 영화를 보면서 똑같은 결심을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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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린다 린다 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이 일본에서 각각 개봉했을 당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이 <키네마준보> <에이가닷컴> <도쿄 소스> 등과 가진 인터뷰를 발췌,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