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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객잔] 우리는 지구 위에 살고 있다 (1)

허우샤오시엔의 <빨간풍선>, 홍상수의 <밤과 낮> 그리고 왕가위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빨간 풍선>

(네 번째 유격훈련) 두명의 중국인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지구 반대편으로 갔다. 한명은 허우샤오시엔이고, 다른 한명은 왕가위이다. 한편은 <빨간풍선>이고, 다른 한편은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다. 허우샤오시엔은 파리로 갔고, 왕가위는 뉴욕으로 갔다. 두 사람 모두 자기가 자란 곳을 떠나서 만든 두 번째 영화이다. 허우샤오시엔은 도쿄에서 <카페 뤼미에르>를 만들었고, 왕가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해피 투게더>를 찍었다. 허우샤오시엔은 불어를 할 줄 모르고, 왕가위는 영화제에서 영어로 인터뷰를 한다. <빨간풍선>은 불어로 진행되고,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영어로 진행된다. <빨간풍선>에는 베이징에서 온 중국인 유학생 송(宋)이 등장하지만 그녀가 중국인 인형사를 통역할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중국어로 말하지 않는다.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는 단 한명의 중국인도 나오지 않는다. 두편 모두 원작을 갖고 있다. 허우샤오시엔은 파리에 온 미국인 기자 애덤 고프닉의 <파리에서 달까지>를 읽고 난 다음 알베르 라모리스의 중편 <빨간풍선>을 끌어들여 재구성하였다. 왕가위는 래리 블록의 단편소설을 읽고 난 다음 그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로 하였다. 다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밤만 되면 엘리자베스가 일하는 바에 술을 마시러 오는 경찰관 어니와 그의 옛 아내 수린의 에피소드는 래리 블록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이건 <중경삼림>의 테네시주의 멤피스 버전이 아니다(수린이라는 이름도 원작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아비정전>에서 장만옥이 연기한 수리첸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왕가위의 말이다). 그런 다음 왕가위는 노라 존스와 캣 파워, 오티스 레딩의 노래 가사에 맞는 줄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두편의 영화는 외국의 도시에 갔지만 두명 모두 도시의 풍경에 거의 관심이 없다. 두 영화는 시종일관 실내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대부분 마지못해 문 바깥으로 나가긴 하지만 곧 실내로 다시 돌아온 다음 그 안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첫 번째 여행, 파리에 간 허우사오시엔의 <빨간풍선>

내가 먼저 따라간 여행. 허우샤오시엔은 파리에 가서 <빨간풍선>을 찍지만 사실 이 영화는 방법론적으로 <비정성시>의 정확한 반복이다(그리고 그 사이에 <해상화>가 있다). 두 영화 모두 계속해서 마치 영겁회귀처럼 밥상 앞으로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거의 밥상을 빠져나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진행된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비정성시>에서 밥상은 가족이 모여 앉는 유일한 장소이다. 그러나 자꾸만 가족 중의 누군가가 사라지고, 떠나가고, 그런 다음 새로운 가족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시간이 지나가고, 역사가 흐르면서, 밥상은 그 자체로 기억의 유산이라고 부를 만한 자리가 된다. 밥상 앞에 모든 등장인물이 온전하게 함께 모여 앉은 장면은 단 한숏도 없다. 떠나가고, 돌아오고, 채우고, 비우고. 밥상은 그때 시간들 사이에서 서로 한데 묶이지 않는 것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서로 상이한 것들 사이의 공존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대만이라는 국가의 역사이다. 그 작은 밥상에는 부정되고, 종종 폭력적으로 파괴되고, 그 속에서 미쳐버리거나, 혹은 칼에 찔려 죽었거나 또는 산속에서 토벌군들에 의해 빨갱이 사냥을 당한 다음에 더이상 한자리를 할 수 없는 유령의 빈자리들이 여전히 그 의자를 지키면서 그 시대에 대해서 증언한다. 산 사람들은 유령들과 함께 밥 먹을 시간이 되면 한자리에 다시 모여 밥을 먹는다. 그리고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허우샤오시엔은 다시 한번 <해상화>를 찍었다. 세기말 상하이의 호사스러운 사창가에서 귀족들은 아름다운 창녀들을 사기 전에 진수성찬을 먹는다. 그 자리에서 점점 청조 말 봉건귀족들은 사라져가고 그 대신 부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빨간풍선>은 다시 한번 밥상 앞에서 진행된다. 수잔의 집에 들어가서 왼쪽 방문을 바라보면서 가운데 밥상을 놓고 그 자리를 중심으로 신이 반복된다. 말하자면 수잔의 밥상. 세상으로 나가는 문. 집으로 들어오는 문. 오로지 이 구도만이 <빨간풍선>에서 동일한 자리, 동일한 거리, 동일한 프레임으로 반복된다. 하지만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어떻게 이 집에서 세상으로 나가는지, 혹은 세상으로부터 어떻게 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 집을 이해하는 것은 그 사람의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 집에 어떻게 들어갈 것인가, 그 집에서 어떻게 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그 집의 창문에서 보이는 세상은 어떠한가, 그 집의 문은 몇개인가, 그 집의 문은 몇개의 방으로 연결되는가? 그러나 우리는 수잔의 집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본 적이 없다. 다만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빨간 풍선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의 구름과도 같은 풍선. 오로지 허우샤오시엔이 몰입하는 것은 세상으로 나가거나, 세상에서 들어오는 문 옆의 밥상뿐이다. 그때 허우샤오시엔이 이 밥상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지키는 것은 더이상 다가가지 않는 그 거리에 있다. 우리는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을 알지 못한다. 허우샤오시엔은 파리에 사는 여자 수잔과 그의 아들 시몽의 현대 프랑스 가정생활 안으로 들어가서 일상의 신기한 리듬을 쳐다본다. 항상 밥상에 늦게 도착하는 엄마 수잔. 그녀는 단 한번도 제때 밥상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런 다음 호들갑. 무심한 아들 시몽. 걸핏하면 침입하는 이웃. 그때 낯선 삶에 대한 경외감을 유지하는 태도. 혹은 오즈 이후 타인의 낯선 삶의 이해에 대한 포기라는 예절의 아시아적인 전통. 허우샤오시엔은 그 순간 우리에게 태도가 만들어내는 퍼즐을 제공한다. 빨간 풍선. 실제로 <빨간풍선>에서 빨간 풍선은 아무것도 더하거나 대신하지 않는다. 하지만 만일 이 영화에서 빨간 풍선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빨간 풍선은 영화 안에서 활동하는가, 아니면 영화 바깥에서 지시대상을 재현하는가? 수잔은 중국인 인형사가 마술처럼 다루는 조종인형(marionette)을 본다. 빨간 풍선은 정확하게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그 조종인형이다. 하지만 누가 조종하고 있는가? 지시대상은 자기의 언술 주어를 정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영화의 안과 바깥은 점점 희미해진다. <빨간풍선>은 점점 초현실적인 동화가 되어간다. 아니, 차라리 마그리트의 말을 빌려 이 영화의 제목을 <이것은 빨간 풍선이 아닙니다>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다.

두 번째 여행, 파리로 간 홍상수의 <밤과 낮>

두 번째 여행. 혹은 파리 여행의 변주. 허우샤오시엔보다 1년 늦게 파리에 간 홍상수는 그가 잠시 살았던 도시를 찍으면서 이상할 정도로 그 어떤 매개없이 대하고 있다. 허문영은 <밤과 낮>이 “홍상수의 영화에서 처음 등장하는 두려움을 가진 남자를 삭막하고 섬뜩하게 그려냈다”(<씨네21> 제643호, ‘목적지 없는 여행의 두려움’)고 말했다. 나는 삭막한 느낌 대신 매우 유물론적으로 그려냈다는 인상을 받았다. 홍상수가 보러간 그림을 오르세에서 보지 못하자 거리에서 기어이 그와 동일한 광경을 볼 때 마치 증명이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림으로부터 광경으로의 이동. 재현으로부터 실재에로의 확인. 두개의 스펙터클의 차이. 허우샤오시엔은 간단한 이야기를 만든 다음 그 위에 몇개의 퍼즐을 얹어놓는다. 그런데 그 퍼즐은 허우샤오시엔이 파리에서 더이상 진척되지 않는 인상을 미스터리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종종 허우샤오시엔은 그 자신의 권리를 양보한다. 홍상수는 파리에 대해서 어떤 미스터리의 정서도 끌어들이지 않는다. 파리 15구의 동네 풍경은 종로(<극장전>)나 경주 혹은 춘천(<생활의 발견>)이나 부천(<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 그냥 단순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불어를 듣지 못해도, 그래서 <밤과 낮>에 자막이 없더라도, 이 영화를 보는 데 아무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우선 동일한 점. 허우샤오시엔의 <빨간풍선>과 홍상수의 <밤과 낮>의 공통점은 신기하게도 두편 모두 오르세 미술관에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의 공통점은 거기까지이다(그런데 왜 아무도 허우샤오시엔과 홍상수의 파리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허우샤오시엔은 오르세에서 펠릭스 발로통의 그림 <공> 앞에 서서 여선생님과 아이들 사이에서 긴 대화를 진행한다. 홍상수는 오르세에서 쿠르베의 <돌깨는 사람들>을 보러 갔다가 그게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 대신 <세계의 근원> 앞에 성남과 유정을 잠시 세워놓은 다음 재빨리 미술관에서 빠져나온다. 그는 오르세 안에 걸려 있는 인상주의 그림들에 한눈을 팔지 않는다. 혹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런데 홍상수는 늘 세잔을 말한다. 세잔의 그림들도 역시 오르세에 걸려 있다. 그러나 왜 홍상수는 세잔을 외면하고 쿠르베 앞에 간 것일까?(물론 홍상수는 세잔느가 쿠르베의 영향 아래 그림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쿠르베에게 이끌린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없는 그림에 이끌린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 다음 그걸 거리에서 본다. 말하자면 홍상수에게 파리의 거리는 일종의 미술관이다. 성남은 마치 미술관을 돌아다니듯이 파리 시내를 돌아다닌다. 홍상수의 산책. 안토니오니의 산책. 영화가 시작하고 드골공항을 나서자마자 누군가가 등장해서 그에게 담뱃불을 빌리며 성남에게 “조심해, 당신, 조심하라고”라고 말할 때 마치 나는 미술관 앞에 붙어 있는 ‘조심하세요, 손대지 말고 그저 감상만 하세요’라는 글귀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거기서 그림을 재현하거나 혹은 현실을 그림 안에 고립시키지 않는다. 홍상수는 그걸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물러나서 그저 관계의 모델을 설정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홍상수가 거리에서 돌 깨는 인부들을 볼 때 그것이 쿠르베의 그림을 떠오르게 만들긴 하지만 핵심은 쿠르베가 아니라 그것이 세잔이 말한 세계 안의 세계, 현실 안에서 돌발적으로 다가오는 인상, 문득 형상을 성립시키는 외양의 순간과의 마주침이다. 말하자면 홍상수는 세잔을 유물론적이라고 부르는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유물론적이다. 같은 말의 다른 표현. (마르슬랭 플레네가 설명했던) 앙리 마티스를 완전히 매혹시켰던 세잔의 바로 그 방법. 감각의 유물론. 나는 그 방법에 거의 홀린 듯한 인상을 받았다. 둘은 완전히 분리된 다음 문득 나타나서 현실 안에 얼룩을 만든다.

똑같은 순간의 다른 방법. 허우샤오시엔의 <빨간풍선>에서는 두 가지 혹은 세 가지가 동시에 문득 마주친다. 송의 영화 속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빨간 풍선과 똑같은 모양의 풍선이 그려져 있는 건물의 벽. 포개놓기. 송의 영화,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알베르 라모리스의 영화, 파리의 어느 건물의 벽. 이때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서로 다른 텍스트, 서로 다른 경로, 서로 다른 시간에 있어야 할 이미지의 동어반복이다. 외양상으로는 단순한데 갑자기 여기에는 보여주기와 가리키기 사이의 불일치가 퍼즐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함으로써 허우샤오시엔은 파리에서 자기가 느끼는 낯선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분리를 통해서 유사성만을 남겨놓은 채 그 위에 서로가 정확하게 포개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조형적으로는 실현되지만 행위는 여기서 재현되지 않는다. 홍상수와의 반대 방식. 그 모든 것이 공존하는 공통의 자리.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지시기능도 숨긴 채 빨간 풍선은 문득 우연인 것처럼 위장하고 파리의 하늘 위로 일순간에 날아올라가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보여주기를 버리고 가리키기를 따라가야만 한다. 여기에 허우샤오시엔은 송의 설명을 덧붙이면서 말하기를 더한다. 보여주기, 가리키기, 말하기. 그때 문득 그들 사이의 관계가 오로지 사유 안에서만 성립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시대상이 만들어내는 경계의 모호함. 가능성과 잠재성 사이의 내기. 이미지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지만 지시대상은 숨바꼭질을 벌인다. 말하자면 허우샤오시엔의 퍼즐.

하지만 홍상수의 이곳과 저곳.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 홍상수는 여행을 한다기보다는 그의 앞에 이곳과 저곳이 있을 뿐이다. 경치의 고정관념이라고 할 만한 희극적이고 무의미한 방문. 그는 경치의 깊이에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장소의 베일을 벗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그가 항상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를 오해하는 것이다. 홍상수는 <밤과 낮>을 <해변의 여인> 방식으로 찍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심리적인 숏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의도적으로 제외시키고 있다(기회가 닿으면 거기에 대해서 맹렬하게 생각해볼 것이다. 미처 쓰기도 전에 영화가 끝나버렸다. 이 영화가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끝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이 영화를 방어하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두 영화가 가장 다른 것은 <해변의 여인>은 풍경을 찍고 있지만 <밤과 낮>은 오로지 장소의 숏만 진행하고 있다. 두 영화는 정확하게 홍상수가 필름으로 찍을 때와 디지털로 찍을 때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필름으로 찍을 때 홍상수는 이따금 사람에서 시작해서 풍경의 사물을 바라보면서 숏을 끝낸다. 그러나 디지털로 찍을 때 그는 프레임에서 사람이 빠져나가면 재빨리 숏을 끝낸다. 홍상수 자신은 두개의 서로 다른 질감 사이의 차이를 부정하고 있지만 디지털을 선택했을 때 그는 감각에 대해서 완강한 유물론자가 되었다. <밤과 낮>이 이상할 정도로 숏이 시작할 때 사람이 프레임으로 들어오는 순간과 빠져나가면서 숏의 엔드 포인트를 결정할 때 심리적인 데드 타임을 부인하고 행동의 동선에만 집중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게 보게 만든다. 이것은 이 영화의 시점숏에서도 마찬가지로 일관성있게 진행된다. 이를테면 <해변의 여인>에서 종종 프레임을 성립시키는 시점숏들을 통해서, 좀더 정확하게 프레임을 요구하는 시선을 통해서 풍경의 숏을 만들 때 <밤과 낮>은 풍경 ‘이후’라고 부를 만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성남은 단 한번도 멀리서 파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멀리서 보지 않을 때 풍경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파리는 하나의 세계로 보여지지 않는다. 다만 파리 14구의 골목들 혹은 카페, 대부분 숙소 앞의 길 위에서만 오고 갈 뿐이다. <밤과 낮>의 가장 이상한 숏은 이제까지 홍상수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방식으로 오르세 미술관이 바라다보이는 다리, 아마도 12번 메트로를 타고 솔페리노역에서 내린 다음 잠깐 걸어서 도착한 퐁 로이얄 혹은 어쩌면 내가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 맞은편 다리 위에서 카메라가 팬을 할 때이다. 카메라가 팬을 하면 풍경은 성립하지 않고 공간의 연속성만 남는다. 홍상수는 서울에서는 남산타워에 관심이 많지만(“저건 아무 데나 있네”라는 <극장전>의 대사) 파리에 갔을 때 성남은 구름을 보기는 하지만 에펠탑을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파리에 가면 ‘에펠탑은 아무 데나 있다’. 서울에서 동수 혹은 상원은 길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풍경 안에 있다. 성남은 길을 잃고 비를 맞으면서 도시를 둘러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처량한 몰골로 숙소로 돌아온다. 동선이 끊어질 때 홍상수의 주인공들은 길을 잃는다. 말하자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문호. 성남은 장소 안에 있다. 그래서 <밤과 낮>이 서울로 돌아왔을 때 단 하나의 서울 거리 숏이 없는 것은 필연이다. 그걸 보기 위해서는 성남의 꿈을 빌려야 한다. (허문영의 말에 의하면) 성남의 꿈은 원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문호의 꿈이었다(고 한다). 동선을 놓친 두 남자. 한 남자는 집에 돌아오지 못한 채 밤거리에서 차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집에 돌아온 남자는 집에 갇힌 채 꿈을 꾼다. 그런데 그 둘의 차이는 무엇일까?

세 번째 여행, 미국에 간 왕가위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세 번째 여행. 그런 다음 지구 반대편에서 진행된 왕가위의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 이것은 여행에 관한 세 번째 방법이다. 나는 전영객잔의 친구들에게 미국에 와서 활동하는 ‘외국감독들이라는 방식’에 대해서 질문했다(<씨네21> 제645호 ‘미국영화는 지금 다시 태어났다’). 나는 ‘존재’라는 표현 대신 ‘방식’이라고 썼다. 말하자면 외국감독은 미국영화가 작동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대답을 얻지 못했고, 리안은 어떤 블랙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리안은 미국을 에덴동산처럼 찍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다음 상하이로 가서 <색, 계>라는 방식으로 대답을 우회하였다. 리안의 영화는 단 한번도 훌륭하다는 생각을 안 했지만 그의 행보는 점점 흥미로워지고 있다. 리안은 일종의 게임을 벌이고 있다. 그러는 동안 왕가위는 뉴욕에 가서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동의를 얻지 못했다. 가장 예민한 감식가 김혜리와 이동진은 이구동성으로 불평을 늘어놓았다(<씨네21> 제645호 ‘메신저토크’). ‘나의 낮은 당신의 밤보다 아름답다’(김혜리)는 “감독도 배우도 자신들에게 절실하지 않은 감정을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라고 쌀쌀맞게 말했고, ‘마이 엔드리스 나이츠’(이동진)는 “왕가위는 탁월한 감성과 스타일의 힘으로 컵의 부피를 키워서, 결국 그 감상이 찰랑대기만 할 뿐, 넘치지 않게 하는 뛰어난 감독이죠. 그런데 이 영화에선 그게 컵 밖으로 왕창 흘러넘치고 있다는 거예요. 그건 기본적으로 감상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컵의 부피를 키우지 못해서이기도 합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나는 메신저토크를 읽은 다음에야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를 보았다. 보고난 다음 나는 왕가위의 (감정의) 표면장력에 대해서 생각했다. 컵의 부피라는 이 재치있는 비유. 그런데 이동진의 유머가 사실상 이 영화의 진정한 목표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심지어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의 첫 장면은 컵에 담긴 블루베리 파이 위에 얹힌 아이스크림이 흘러넘치는 숏이 아니던가? 의도적으로 ‘왕창 흘러넘치는 감정’으로 시작하는 영화. 하지만 그 컵의 부피가 영화라는 텍스트가 아니라 그 영화를 찍고 있는 미국이라는 부피에 대한 왕가위의 감정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그것이 <중경삼림>의 홍콩, <아비정전>의 마닐라, <해피 투게더>의 부에노스아이레스,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라는 지리적 장소에 대한 부피의 변주라는 형식으로 나타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 반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안에 감정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의 문제. 나는 왕가위의 첫 번째 영화 <열혈남아>의 중국어 제목이 <몽콕(旺角) 카르멘>이었음을 기억한다. 몽콕이라는 거리에 대한 감정 혹은 삶의 리듬. 그 안에서 순환하는 사랑과 그 중단.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에서는 어떤 조건이 바뀌었는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반복되었냐고 물어보는 대신 그 반복을 성립시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가 <2046>의 다음 영화임을 잊으면 안 된다. 시간의 부피로부터 거리의 부피에로의 이행. 왕가위는 뒤죽박죽이 된 시간의 부피를 셈하기 위해서 홍콩이 필요했지만, 그 반대로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까지 가장 먼 거리의 두 꼭지점 사이의 (감정의) 선을 연결하기 위해서 미국을 필요로 한다. 뉴욕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의 선. 그런 다음 다시 되돌아오는 선. 그렇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부피.

나는 컵의 부피라는 문제에 사로잡혔다. 그 안에서 우글거리는 감정. 말하자면 감정의 밀도. 그런데 부피 안의 밀도는 같은 컵 안에 담겨 있을지라도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밀도의 내재적인 구성을 따져 물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밀도의 내재적 구성. 그 안을 성공적으로 여행하기.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미국이라는 특질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나설 것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사막. 그 사이를 연결하는 점과 같은 도시들. 그 여행에 관한 짧은 연대기. 미국은 영화가 여행하기에 좋은 나라가 아니다. 심지어 미국인들조차 여행할 때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다는 것을 알았다. 존 포드의 <역마차>. 그럴 바에는 차라리 여행을 포기하고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만드는 편이 더 편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이 나라를 찾아오는 외국인들은 두 가지 문제에 부딪혔다. 하나는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풍경이다. 두명의 독일인은 반대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무르나우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간 다음 독일 우파(Universum-Film AG) 방식을 고수하였다. 프리츠 랑은 우파에서의 방식을 버리고 할리우드 시스템을 존중하였다. 프랑스인들은 미국이 느닷없이 나타나서 지구 위의 대중문화를 점령한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자본주의와 예술의 거래. 하지만 장 르누아르는 잠시 머문 다음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장 돌아갔다. 누벨 ‘카이에’ 바그의 감독들은 미국영화를 통해서 영화를 배웠지만 아무도 할리우드에 가서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 다만 루이 말이 ‘프랑스영화처럼’ 다섯편의 영화를 찍은 다음 돌아갔다. <아틀란틱 시티>는 마치 비스콘티가 뉴욕에 온 것처럼 진행된다. 그러나 <알라모의 총성>은 끔찍하다. 프랑스인들보다는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에 대해 훨씬 가까이 있었다.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의 후예들. 콜럼버스의 역사. 펠리니는 몇 가지 계획이 있었지만 곧 포기하였다. 그 대신 도널드 서덜런드를 치네치타 촬영소에 초대하여 <카사노바>를 찍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반전시위와 LSD와 히피와 사이키델릭 록과 마르쿠제가 뒤범벅이 된 1969년에 미국을 방문해서 마치 베트남전쟁이 진행 중인 사이공에 온 것처럼 <자브리스키 포인트>를 2.35 파나비전으로 찍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안토니오니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그러나 그는 정글 대신 마치 미국이 사막인 것처럼 다룬다. 그런 다음 마지막 순간 황홀할 만큼 매혹적으로 폭발시켜버린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할리우드의 자본과 스타를 끌어들이기는 했지만 미국에서 영화를 찍지는 않았다. 미국영화는 전후 독일인 세대를 거의 홀렸다. 파스빈더와 서크. 스트라우브-다니엘 위예와 존 포드. 벤더스와 서크 혹은 니콜라스 레이. 벤더스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에서 “양키들은 우리의 무의식까지 식민지로 만들었다”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지 5년 뒤에 코폴라의 초대로 할리우드에 가서 <해밋>을 찍었다. 그런 다음 그는 돌아가지 않고 폴라로이드 카메라와 함께 미국을 여행했다. 그리고 마치 기행문을 작성하듯이 <파리 텍사스>를 1.85로 찍었다. 그 다음 이루어지지 않은 프로젝트. 원래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는 그의 ‘신곡’ 삼부작 중 두 번째 영화 <지옥>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찍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고, (다니스 타노비치의) <랑페르>는 파리에서 2.35로 찍혔다. 만일 키에슬로프스키가 캘리포니아에서 찍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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