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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독자에게] 세르지오 레오네

주말이면 TV에서 무슨 영화를 하나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시절이 있었다.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토요명화> 등이 인기를 끌던 TV영화의 전성기는 서부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인디언을 물리치는 기병대의 활약과 홀로 악당에 맞서는 보안관의 모습에 환호했던 유년기에 어딘가 미심쩍은 웨스턴과 만났다. 스파게티 웨스턴 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불렀던 영화들이다. 장고나 튜니티가 존 웨인과 게리 쿠퍼를 대신하는 서부의 영웅이 됐을 때 배신감에 속이 상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미국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깔끔한 옷차림이 아니었고 음식을 먹을 때도 무척 게걸스러웠으며 어슬렁거리는 동네도 심하게 촌스런 느낌을 줬다. 할리우드가 이상화한 서부와 때깔이 틀린 서부가 한동안 적응이 안 됐기에 “나의 서부를 돌려달라”고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정통 웨스턴과 스파게티 웨스턴 사이에 클래식과 팝음악을 가르는 장벽 같은 게 있던 때라고 할까. 그 장벽이 무너진 것은 휘파람에 실려온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때문이었던 것 같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삼부작은 총의 격발음과 휘파람, 그리고 말발굽 소리와 맞물리면서 몸이 먼저 반응하는 정서적 감흥을 던졌다. 물 흐르듯 연결되는 음악과 액션의 비범한 조화가 레오네라는 이름으로 기억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지만 확실히 그의 영화들은 잊혀지지 않는 잔영을 남겼다. 이번호 기사에서 한국의 많은 감독들이 이런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걸 보니 흥미롭다. 1960년대 이탈리아에서 웨스턴을 만들었던 감독이 남긴 영향이 1960년대 한국영화가 남긴 것보다 커 보인다. 사정이 이렇게 된 데는 복잡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레오네의 영화가 장철, 호금전의 무협영화에 영향을 끼쳤다거나 볼 수 있는 영화가 한정된 상황이었다거나 하는 원인들. 또 하나 꼽자면 변두리 정서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지나치게 멋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할리우드영화와 달리 지저분하고 평범하지만 그래서 가난하고 영어도 못하는 우리랑 통할 듯한 느낌. 현지인을 캐스팅한 듯한 무명의 단역배우들을 보면 확실히 그런 인상을 갖게 된다.

레오네 영화의 권위자 크리스토퍼 프레일링은 레오네가 스파게티 웨스턴을 만든 이유를 그의 개인사에서 찾을 수 있다는 언급을 한 적 있다. 미국영화와 미국 대중소설을 좋아했던 레오네는 청소년기를 무솔리니 치하에서 보내야 했다. 공산주의자인 아버지를 둔 그는 무솔리니가 미국영화와 소설을 금지하던 시기에도 몰래 미국 문화를 접하며 미국에 대한 환상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무솔리니가 물러나고 이탈리아에 들어온 미군은 영화와 소설로 보던 멋진 미국인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인과 하등 다를 것 없는 미군의 모습은 그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할리우드 서부영화보다 현실적으로 그려진 하나의 이유가 된다. 웨스턴 고유의 신화적인 면모를 간직하면서도 레오네 영화에서 악당은 더 악랄하며 주인공도 타의 모범이 되는 인물이 아니었다. 돈 몇푼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온갖 꼼수를 부린다. 레오네 영화의 정서적 친화력은 미국에 대해 우리가 갖던 상반된 감정과도 관계있을 것이다.

레오네가 남긴 영화적 유산에 좋은 것만 있을까? 여전히 그런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프레일링은 여전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강간장면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레오네 영화에서 여성의 자리는 철저히 대상화되거나 배제된다. 한국영화의 남성성이 지나치다고 느낀다면 레오네의 영화를 편식한 악영향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국에서 특정 영화만 볼 수 있던 시대의 산물이긴 하지만. 물론 그렇다고 레오네 영화를 와이드스크린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곤란하다. 이번 회고전이야말로 레오네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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