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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웨스턴 혈맥을 잇는 혼합 장르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김혜리 2008-07-16

액션 화력 지수 ★★★★★ 배우 카리스마 지수 ★★★★ 동선 및 플롯의 선명도 지수 ★★☆

김지운 감독이 누아르영화를 만들겠다고 할 때, 그것은 다시 말해 좁고 긴 복도를 따라 혼자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찍고 싶다는 뜻이다. 김지운 감독이 서부극을 하겠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말 타고 황야를 질주하는 한 무리의 사내를 근사하게 찍겠다는 뜻이다. 김지운 영화에서 ‘결정적’ 공간과 이미지가 점하는 지위는 사뭇 절대적이다. 이를테면 그들은 시간과 이야기에 우선한다. 김지운의 연출은 귀납적이다. 영화의 전체적 여정과 윤곽을 확정한 다음, 부분을 목적에 봉사하도록 배치하지 않는다. 반대로 스크린에 미칠 듯이 올리고 싶은 그림과 분위기를 담은 장면을 잡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꿰어나간다. 따라서 김지운 영화에서는 서사의 흐름과 플롯의 아귀보다, 앞뒤로 인접한 두 장면 혹은 두숏이 충돌해 발하는 효과가 한층 중대한 관심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은 만주 웨스턴의 혈맥을 잇는 혼합 장르물이다. 아이콘과 설정은 서부극의 전통대로지만, 영화의 몸통은 <소오강호>처럼 호걸 군상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코미디 어드벤처 성격이 강하다. 온갖 민족과 문화가 찌개처럼 들끓는 <놈놈놈>의 공간과 의상, 소품은 1930년대 만주의 재현보다 <스타워즈>의 타투인 행성이나 <블레이드 러너>의 포스트모던한 미래를 연상시킨다. 이야기의 도화선은 친일파 조선인 부호와 대한독립군이 동시에 갖고 싶어하는 정체불명의 지도. 각기 의뢰를 받은 마적단 두목 창이(이병헌)와 현상금 사냥꾼 도원(정우성)은 동시에 표적에 당도하지만, 지도는 영문 모르는 열차강도 태구(송강호) 손에 떨어진다. 물욕으로 시작된 추격전은 해묵은 원한이 드러나고 일본군까지 가세하며 눈덩이마냥 커진다. <놈놈놈>의 성취는 세 차례 액션 스펙터클에 집중돼 있다. 도입부의 제국열차 시퀀스는 좁고 긴 공간에서 세 주인공을 소개하고 엇갈리게 한다. 마지막 대평원의 추격전은 가장 강렬한 비트의 음악에 맞춰 모두가 몸을 흔드는 파티의 절정 같다. 밀도가 돋보이는 귀시장 싸움은 공중과 지하까지 활용해 싸움터를 수직 확장한 다음 세 캐릭터의 개성을 액션에 담아 풀어놓는다. 부드럽고 차가운 전문가 도원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시야를 확보한 다음 솔개처럼‘먹이’를 잡아챈다. 히스테리컬한 창이의 칼놀림은 자기 현시적이며 희생자의 고통을 음미한다. 손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무기로 삼는 태구의 움직임은 혼돈스럽지만 살아남는 데에 최적이다.

<놈놈놈>에 부족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감각이다. ‘좋은 놈’의 진의가 끝까지 불분명하고, 삼인의 동기가 충돌하고 얽히는 고비가 제대로 각인되지 않는다. 결말이 주는 심리적 카타르시스가 미약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리와 서사가 반드시 액션의 파괴력과 별개는 아니다. 인물의 동기가 관객을 휘어잡고 상황의 중대함이 관객을 압박해야 액션의 쾌감도 증폭된다. <놈놈놈>은 강점과 약점을 아울러 김지운 영화의 화려한 중간 결산이다.

Tip/<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현장에는 첨단 촬영 장비로도 답이 안 나오는 화면을 만들기 위해 스탭들의 모험과 발명품이 난무했다. 말 액션을 위해 슈팅 차가 고안됐고 열차 내부와 외부를 컷하지 않고 연결하려는 욕심에‘가제트 팔’이 등장했다. 기차가 급정거하는 장면에서는 트래킹 속도를 늦추지 않기 위해, 매트리스를 붙인 벽에 촬영감독을 던지다시피했다. 구르는 인물의 시점 숏을 위해 카메라와 촬영기사가 들어가 직접 구르는 통도 발명품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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