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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 대한 청춘의 기록영화 <여기보다 어딘가에>
김도훈 2008-08-20

O.S.T 구입욕구 지수 ★★★★ 배우 차수연 활기지수 ★★★ 주인공수연 활기지수 ★

딱 20대 중반이 그렇다. 그 나이의 청춘은 그제야 현실과 꿈의 거대한 균열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절규한다. 여기가 아닌 어디라도 좋겠다고. 수연(차수연)이 꿈꾸는 어딘가는 영국 리버풀의 음악학교다. 하지만 이 철없는 계집애는 유학을 보내달라고 부모에게 생떼를 쓰거나 유학비를 벌겠다고 집안 물건을 장터에 내다 파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러다가 결국 가출을 한다. 수연이 향한 곳은 이제 막 제대하고 복학한 친구 동호(유하준)의 옥탑방이다. 동호도 뮤지션을 꿈꾸는, 약간 순하고 얼빠진 청춘이다. 둘은 밴드를 조직해 인디음악페스티벌 입상을 꿈꾸며 연습한다. 하지만 수연은 명확한 목표 앞에서도 끝내 좌절한다.

수연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캐릭터다. 수연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몽롱한 읊조림 속에서 어딘가를 꿈꾸며 여기를 떠돌 뿐이다. 심지어 이승영 감독은 그녀에게 꿈을 꾸도록 허하지도 않는다. <고양이를 부탁해>처럼 주인공들을 비행기에 태워 보내지도 않은 채, 영화는 공항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는 수연과 동호를 프레임 밖으로 내보내며 끝낸다. 그들은 똑 닮은 동반자를 찾았지만 아무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작은 희망을 조심스럽게 제시하면서도 그게 밥을 먹여줄 리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는 영화다. 그래서 포복절도할 코미디와 우울한 성장담을 능란하게 변박자로 섞는 이 청춘영화는 종종 웃기게 서글퍼진다.

영화 속 청춘들의 무기력함에 동의하지 않는 청춘들이라면 가슴이 답답해질 테지만 영화적인 완성도에 답답함을 느낄 겨를은 없을 거다.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중앙대학교첨단영상대학원과 KM컬쳐의 지원을 동시에 받아서 만들어진 HD영화다. 예산은 겨우 1억원이지만 기술적 완성도는 몇년간 개봉한 독립영화들 중에서도 발군이다. 특히 <그때 그사람들>의 조명감독 고낙선이 담당한 촬영은 HD 독립영화가 예산 부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밤장면에서도 아무런 흠집이 없다. 배우들은 더 좋다. 차수연, 유하준과 방준석은 물론, 한국영화에서 가장 어색한 존재 중 하나인 가족 구성원들의 연기까지도 물이 흐르는 듯 하다. 덕분에 <여기보다 어딘가에>는 더욱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청춘의 기록영화 같다.

tip/ 조연급 배우들의 연기가 워낙 자연스러운 영화긴 하지만 히든카드는 방준석이다.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경력을 열거해보자. 그는 1994년 전설적인 록그룹 유앤미블루로 데뷔한 뮤지션이다. 지금은 영화음악창작집단 복숭아프로젝트에서 활동 중이며 <공동경비구역 JSA> <즐거운 인생> <님은 먼곳에> 등의 음악을 만들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근사한 음악을 만드는 음악감독 중 하나라는 의미다. 그가 <여기보다 어딘가에>에서 맡은 역할은 수연을 잠자리로 꼬이려는 느끼한 유학파 뮤지션 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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