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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같은 방식의 이야기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정재혁 2008-08-27

에이타 완소 지수 ★★★★ 미스터리 지수 ★★★ 밥 딜런 즐청 지수 ★★★★

대학에 들어가면서 집을 떠나 센다이시로 이사 온 시이나(하마다 가쿠)는 의문의 남자 가와사키(에이타)를 만난다. 옆집에 사는 이 남자는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아냐며 접근하고 평소 그 노래를 곧잘 흥얼거렸던 시이나는 가와사키와 곧 친해진다. 하지만 가와사키는 시이나에게 이상한 제안 하나를 한다. 또 다른 옆집에 사는 남자 도르지를 위해 고지엔 사전을 훔쳐주자는 거다. 도르지는 현재 일본에서 유학 중인 부탄인 학생으로, 얼마 전 친구 둘을 동시에 잃어 슬픔에 잠겨 있다. 다소 엉뚱한 제안에 시이나는 가와사키를 멀리하려 하지만 가와사키는 끈질기게 시이나를 꼬여내 서점 습격사건을 계획한다. 장난감 총을 들고, 바보 같아 보여도 치밀한 작전으로 서점을 턴 두 남자. 하지만 가와사키는 고지엔 사전이 아닌 고지린 사전(고지엔은 2차대전 이후 발행된 대형 국어사전으로 다이지린과 함께 가장 널리 쓰이는 사전. 고지린은 1925년 발행된 사전으로 단어의 표기나 방식이 고지엔과 다르다)을 훔치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이사카 고타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가져온 영화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는 미로 같은 방식의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밥 딜런의 노래 <Blowin’ in the Wind>를 모티브로 인물들의 사연이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며, 영화는 이를 서로 얽고 꼬아 들려준다. 도르지가 두 친구를 잃게 된 사연과 가와사키가 도르지, 도르지의 여자친구와 얽히게 된 일들이 퍼즐의 조각처럼 시간을 오가며 보여진다. 2004년작 <루트 225>에서 사춘기 소년, 소녀의 방황을 무한소수인 225의 루트값으로 표현했던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도 주인공 가와사키/도르지의 내면과 심리상황을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편집, 수수께끼 같은 방식의 화법으로 보여준다. 힌트처럼 제시된 에피스드와 대사들이 바다에 뜬 부표처럼 부유하다 후반부에 가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식이다. 복잡한 구성 탓에 영화화가 힘들다는 평이 많았던 소설이지만, 나카무라 감독은 이야기를 숨기고 드러내는 데 있어 좋은 균형감각을 유지하며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탄력있는 영화로 완성했다.

집오리와 들오리. 극중 가와사키의 여자친구인 고토미(세키 메구미)의 말에 의하면 이 둘의 차이는 고향이다. 집오리는 외국에서 온 오리고, 들오리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오리다. 영화에서 오리가 등장하는 건 고토미의 대사 속뿐이지만 집오리와 들오리는 곧 가와사키와 도르지에 대한 기표다. 일본의 모든 말이 담겨 있는 사전을 훔쳐서라도 이방인이 세상과 섞일 수 있게 도와주려 했던 일본인과 꿈을 품고 일본에 도착했지만 원룸 맨션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던 한 이방인. 이 둘을 엮어주는 건 세상의 모든 이치를 바람에 맡긴 듯 노래하는 밥 딜런의 목소리며, 영화는 그 노래의 정서를 그리워한다. 사실 차이도 없는 대상을 서로 다른 단어로 구별짓고 사고하는 방식이 별 의미가 없음을 영화는 조심스레 주장한다. 영화의 후반부 가와사키와 시이나는 <Blowin’ in the Wind>가 흘러나오는 카세트테이프를 지하철 코인로커에 집어넣는다. 원룸보다 더 작은 공간에 스스로를 묻어버리는 상황이 답답하긴 하지만 최소한 그곳에 집오리와 들오리의 차이는 없다. 수차례의 굴곡, 복잡한 미로를 지나온 이야기는 끝내 차이가 없는 평화, 영화가 ‘신의 목소리’라 주장하는 바람으로 수렴된다.

TIP/소설의 원작자인 이사카 고타로는 미스터리물을 주로 쓰는 작가다. 2000년 <오듀봉의 기원>으로 데뷔해 <중력 삐에로> <칠드런> 등을 발표했고, 7차례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다. 청춘의 우정과 사랑, 꿈을 그린 작품이 많으며 <명랑한 갱이 지구를 움직인다> <사신의 정도> <피쉬스토리> 등 영화화된 작품이 5편이다.

나카무라 요시히로

나카무라 요시히로 감독은 최근 일본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감독 중 한명이다.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를 만든 2007년에는 일본영화제작자협회가 장래가 촉망되는 감독에게 수여하는 신도 가네코상을 최연소로 수상했고, 이후 1년 동안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추리닝의 두 사람> 등 두편의 영화를 연출하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도호 배급으로 개봉한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흥행에도 성공하며 대중성도 입증받았다. 세이조대학 영화연구소에서 8mm 작품 <오월우주방>을 만든 게 시작으로, 이 작품은 그해 피아필름페스티벌 준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이후 최양일 감독의 <형무소 안에서> <>에서 조감독으로 현장을 익혔으며, 나카다 히데오 감독의 <검은 물 밑에서>에선 각본을 맡았다. 장편 연출작으로는 1999년 <로컬뉴스>가 처음이다. 그가 연출한 작품 중에는 <루트 225>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 등 미스터리를 바탕으로 인물의 심리와 내면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루트 225>는 소년, 소녀의 성장담을 기발한 판타지로 변주한 영화로 나카무라 감독은 이 영화를 계기로 평단과 관객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연출한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과 <추리닝의 두 사람>은 모두 소설이 원작인 영화. 나카무라 감독의 색깔이 다소 배제된 느낌의 작품이라 아쉽지만 평범한 드라마 속에 스릴러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연출은 여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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