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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가족을 구하고 세상을 구한다 <쉿! 그녀에겐 비밀이에요!>
박성렬 2008-09-03

신토불이 지수 ★★★★ 비밀 지수 ☆ 리키 김 지못미 지수 ★★★★

<쉿! 그녀에겐 비밀이에요!>를 가장 잘 표현하는 해묵은 명제 하나. 사랑은 가족을 구하고 세상을 구한다. 영화는 국적부터 다른 두 사람 앞에 사랑으로 건너가야 할 장애물을 떡하니 던져준다. FBI 워싱턴 본부의 비밀요원 앨버트 리(리키 김)는 한국인 미미(김규리)와 연인이다. 국적을 극복한 커플이지만 앨버트 리의 떳떳하지 못한 직업 때문에 갈등하던 미미는 한국으로 돌아간다. 미미를 따라간 앨버트 앞에 이름부터 구수한 낙지성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고 미국인을 ‘양놈’이라고 부르는 보수적인 부모가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국적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다. 첩첩산중이다. 낙지성 마을의 땅을 노리는 암흑세력도 두 사람의 결합을 방해하는 골칫거리다. 첫 장면에서는 근사한 특공복을 입고 한껏 뽐내는 앨버트지만 마을에서는 정체를 숨겨야 하기에 의존할 대상이라곤 미미를 향한 사랑뿐. 쫄쫄이 내복의 부끄러움에 아랑곳하지 않는 앨버트 리의 사랑은 토라진 미미와의 관계를 풀칠하고 마을을 지켜낸 뒤 결혼에 골인한다. 가족을 구하고 세상을 구하는 우직한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이 티코를 벤츠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불같은 사랑도 어설픈 눈속임은 못 감춘다.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흠들은 보기에 제법 민망하다. 새까맣게 도장한 헬기에 FBI 세 글자를 새긴 것만으로 진짜 FBI 헬기로 받아들여달라는 눈치에, 뇌물이라며 건네주는 1천원짜리 돈뭉치는 또 무엇이며 파워포인트의 기본 템플릿을 그대로 사용하는 FBI의 체면은 또 뭐란 말인가. 방만하고 뻔뻔하다. 배우들의 표정은 정극처럼 사뭇 진지하다. 티코를 벤츠로 믿어달라는 뻔뻔한 용기는 똑같은 장소를 자막만 바꿔 세 번씩 우려먹는 <킬러 토마토의 대공습>(Attack of the Killer Tomatoes)에 버금간다. 뒤집어 말하면 뜻하지 않은 웃음들이 많이 포진한 영화다. 같은 이유로 <다찌마와리: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처럼 컬트성이 다분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낡았다. 주성치의 <도학위룡>처럼 코미디와 첩보작전을 한데 섞는 전개를 선보이고, 장중한 관현악이나 세련된 외국인들로 묵직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80년대 홍콩영화 스타일이다. 사랑은 금메달감이지만 영화의 본질은 구형 티코다.

낡은 구성에 비추어 애국심은 아첨처럼 보이기도 한다. 낙지성 마을의 고루한 풍경도 모자라 민속촌의 떡 찧는 풍경과 씨름판이 등장하고 아버지 박용식은 북을 울리며 전통을 고수한다. 거기에 악당은 민속촌을 헐고 리조트를 짓겠다는 졸부다. 사랑으로 메우기에는 흠이 너무 깊고 넓다. 열연하는 훈남 리키 김을 묘사할 수 있는 수식어는 단 두 가지다. 흠좀무(흠 좀 무리군요),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리키 김. <쉿! 그녀에겐 비밀이에요!>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한계점을 넘어서지 못한다.

tip/ <쉿! 그녀에겐 비밀이에요!>는 ‘영화감독’ 이인수로서는 세 번째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주로 TV에서 다큐멘터리와 기획프로그램을 제작했다. KBS의 <일요스페셜> <수요기획> 등을 연출하다 2005년에 <한길수>로 영화감독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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