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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되고 삭제되었던 한국 록의 역사 <고고70>
주성철 2008-10-01

라이브 공연 쾌감 지수 ★★★★☆ 실제 가수들 숨은 그림 찾기 지수 ★★★★ 조승우와 신민아의 로맨스 지수 ★★

지난 10년간 4편. <바이준>(1998) 이후 최호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결국 피 끓는 한국 청춘에 대한 풍경화다. 성인으로의 진입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청춘의 방황(<바이준>), 애타게 새로운 시대와 접속하려는 청춘의 의지(<후아유>), 어느덧 사회의 찌꺼기가 돼버린 가혹한 청춘의 숙명(<사생결단>) 등 그는 언제나 청춘의 근심에 매달려왔다. <고고70> 역시 거기서 멀지 않다. 데블스 멤버로 헤쳐 모인 그들이 서울로 오는 것, 주인공이 마치 씻김굿을 하듯 공연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씻어내는 것은 모두 성인이 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다. 하지만 당시 한국사회는 누구나 성인이 되고 싶어 했지만 모두가 성인이 될 수는 없었다. 머리가 길고, 손에 악기를 들고, 나쁜 것을 입에 대고, 자정이 넘어 귀가하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말하자면 영화 속 데블스가 그랬고 휘닉스가 그랬듯 사회의 구성원이 되지 못해 늘 주변부로 밀려다녀야 했다. 그래서 그들이 앨범 재킷을 찍기 위해 화사한 옷을 입고 풀숲에 서 있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더없이 밝은 정서의 장면이지만 왠지 그들이 이 도시와 사회의 일원이 영영 되지 못할 것 같은 아련하고 쓸쓸한 감정까지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렇게 불쑥 빛나는 장면들을 숨겨놓았다. 미미와의 로맨스보다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데블스의 알몸 전시회야말로 <고고70>의 모든 것이다.

경북 왜관의 한 기지촌 클럽. 보컬 상규(조승우)와 그 일행은 새로운 솔 음악을 구사하는 또 다른 기지촌 토박이 만식(차승우)의 팀과 조우하게 된다. 6인조 밴드 ‘데블스’로 의기투합한 그들은 더 큰 무대를 꿈꾸며, 가수 지망생 미미(신민아)의 아이디어로 서울로 올라간다. 독특한 무대매너와 창법으로 유명 팝 칼럼니스트 이병욱(이성민)의 눈에 띄게 된 그들은 한국 최초의 고고클럽 ‘닐바나’의 개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무대에 서게 된다. 낯선 솔 창법으로 외면당하던 데블스는, 곧 미미가 고고댄스를 유행시키기 시작하면서 서울 밤문화의 제왕으로 우뚝 서게 된다. 하지만 통행금지 시대 미친 듯이 노래하고 춤추던 청춘의 해방구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게다가 조금씩 금이 가던 멤버들 사이는 정부의 탄압과 맞물려 완전히 갈라지게 된다.

이야기는 ‘한국판 <도어즈>’, 콘서트는 ‘한국판 <샤인 어 라이트>’. 최호 감독은 암울하고 억압된 시대를 경유하면서 거의 단절되고 삭제되다시피 했던 한국 록의 역사를 불러낸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최호답지 않게(?) 시대의 우울함을 애써 멀리하면서 의외로 대중적 전형성을 충실히 따른다. 멤버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우연한 기회에 성공을 거두는 가운데 괴팍하거나 웃기거나 둘 중 하나인 매니저(혹은 팝 칼럼니스트)가 나타나 감초 역할을 하는 등 기존 할리우드 대중음악영화에서 볼 수 있던 익숙한 관습들이 꽤 질서있게 배치된다.

그 전형성에 가해진 최호의 손길이라면 영화 속 데블스가 모델로 삼고 있는 실존 그룹 데블스가 ‘록그룹’이 아니라 흑인음악에 충실했던 ‘솔그룹’이었기에 처음에는 그들 사이에서도 사실상 기지촌 출신의 비주류였다는 점, 멤버들 자체의 이별이나 화해와 별개로 시대와의 불화를 필연적으로 마주해야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같은 청춘의 이야기라도 카메론 크로의 <클럽 싱글즈>나 벤 스틸러의 <청춘 스케치>, 아니면 케빈 스미스의 <체이싱 아미>처럼 마냥 ‘쿨’하고 싶으련만 이 좁은 반도 무채색 사회의 그들은 매일 새마을운동 깃발을 마주해야 하는 퇴폐와 향락의 장본인들이 된다. 그 지점에서 최호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 어렵사리 해후하게 된 데블스는 뒷수습 생각 않고 그냥 까짓 거 어른이 안 되면 어때, 라고 결심하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 공연 준비에 나선 것. 다양한 앵글과 워크와 사운드 실험으로 담아낸 그 공연장면의 퀄리티는 단연 독보적이다. <고고70>은 완벽주의자 최호 감독이 일궈낸 새로운 성취다.

tip/클라이맥스 공연장면을 라이브 실황 중계처럼 보여주기 위해 총 10대의 카메라가 동원됐다. 그래서 믿기 힘들지만 김병서 촬영감독 외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이모개, <달콤한 인생>의 김지용, <밀양>의 조용규 등 국내 최고 촬영감독들이 한 현장에 함께했다.

숨은 인물 찾기

영화 속 데블스, 휘닉스, 템퍼스는 실제 당시 존재했던 밴드들의 이름이다. 템퍼스는 록발라드 중심, 휘닉스는 좀더 하드한 음악 중심으로 미묘한 성격 차이도 있었다. 특히 음악평론가 신현준이 쓴 <한국 팝의 고고학>에 따르면 데블스는 ‘록그룹’이 아니라 흑인음악에 충실했던 ‘솔그룹’이었다. 더불어 “그룹사운드라는 단어에 충실하게 누구 한명이 설쳐대는 음악이 아니라 멤버가 똘똘 뭉쳐서 응집된 사운드를 들려준 존재로 유명”했던 그룹이다. 물론 흑인음악을 연주한 그룹답게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이리저리 스텝을 밟으며 춤을 추고 각종 묘기도 보여주는 등 쇼맨십이 풍부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홍대 앞을 비롯 실제 지금 맹활약하고 있는 음악인들이 각 밴드 멤버로 참여하게 된 것도 <고고70>이 그동안 없었던 ‘음악영화’라는 공감대가 컸기 때문이다. 과거 노브레인의 핵심 멤버였던 ‘차차’ 차승우는 현재 문샤이너스로 활동하고 있고, 문샤이너스의 드러머 손경호는 영화 속 데블스의 드러머로 그대로 출연한다.

데블스와 경쟁하는 템퍼스의 보컬이자, 당시 드물었던 학사 출신 가수 ‘장헌’ 역에는 최근 ‘토이’의 ‘뜨거운 안녕’으로 인기를 얻은 뒤 라디오 게스트 출연, 홍대 클럽 공연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홍대의 원빈’ 이지형이 출연했다. 데블스가 서울로 진출하기 전 이미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로 독보적인 인기를 차지, 데블스가 라면 먹을 때 탕수육 시켜먹었던 휘닉스는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두 아들, 신윤철과 신석철이 이끄는 밴드 ‘서울전자음악단’이 맡았다. 치렁치렁한 머리로 장발 단속을 피해갈 수 없었던 휘닉스의 리더 ‘심하연’이 바로 신윤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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