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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총결산]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 5

<씨네21>이 2008년의 한국영화를 정리하는 시간이다. <씨네21>의 기자와 평론가 31명이 설문 투표에 참여했고 올해도 어김없이 최고의 한국영화와 영화인을 선정했다.

1위 <밤과낮>

홍상수 감독의 <밤과낮>이 2008년 올해의 영화로 선정됐다. 우연히 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뒤 파리로 도피성 여행을 떠나온 화가 성남. 그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외로운 또는 고단하면서도 절실한 이 여행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표했다. 엄청난 지지를 받은 부동의 1위다. 홍상수 감독은 영화가 살아 있는 활성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믿는 것 같은데, <밤과낮>은 시간과 감각과 감정이 무언가 육체를 얻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까지 준다. 종전보다 더 과감해진 직선의 서사와 일기체 등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정의 내리기 힘든 성질과 분위기들이 겹겹이 영화를 에워싸면서 불균형하면서도 단단한 주름의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 영화의 영화적 주름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격찬이 있었다.“<밤과낮>을 보는 유일한 방법은 이해가 아니라 동행이다. 동행하며 불현듯 등장했다 사라지고 비슷하지만 다른 형상으로 되돌아오는 것들을 응시하는 것이다”(허문영)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밤과낮>이 일면 짧고 단순해 보이지만 겹쳐놓은 인상과 감정들을 끝없이 느낄 수 있는 여행이라는 걸 지적하는 셈이다. 때문에 “희극과 비극, 천국과 지옥, 꿈과 현실의 신비로운 조화”(남동철)라는 격찬도 가능하게 한다. “홍상수 영화라는 시리즈를 담담히, 그러나 가끔 찔리면서 보는 재미”(김소영)라는 평까지 접하고 나면 그의 영화가 늘 예기치 않은 유머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사실까지 떠올리게 된다. <밤과낮>이 올해의 영화가 된 것은 홍상수의 영화가 멈춰 있지 않다는 사실을, 게다가 많은 이들이 그걸 알고 지지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올해의 기억할 만한 사건이다.

홍상수, 그 희미한 미소의 정체

“정말 고맙고 진심으로 격려가 됩니다.”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가 <밤과낮>이라는 말에 홍상수 감독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렇게 고마움을 표한다. 2008년 최고의 영화가 된 <밤과낮>은 촬영을 코앞에 두고 애초 제작사가 손을 떼면서 잠시 흔들렸으나 감독의 말처럼 “운이 좋았고, 영화사 봄이라는 좋은 제작사가 맡아줬고, 좋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서” 아무 탈 없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2008년의 가장 빛나는 영화가 나왔다. 그러니 고맙고 격려가 된다는 말은 감독이 평자들에게 할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지지한 평자들이 감독에게 전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외양을 봐서는 좀 느려(?) 보이지만 홍상수 감독은 감각이 무뎌지도록 내버려두는 일이 결코 없으며 영화적으로 삶을 발견해가는 기쁨에 늘 취해 있다. 그게 바로 홍상수 감독이 촬영장에서 자주 짓는 희미한 미소의 정체일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밤과낮> 이후 벌써 9번째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완성했고 내년 상반기 개봉예정이다. 어떤 감독은 홍상수 감독이 적은 돈으로 그런 좋은 영화를 만드는 통에 돈 없어서 좋은 영화 못 만든다는 말을 못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는데, 말이 된다.

2위 <멋진 하루>

갑자기 생활이 어려워져 빌려준 돈 300만원을 받기 위해 전 애인을 찾아가는 여자(전도연)와 지금은 돈이 없지만 꾸어서라도 줄 테니 다만 돈을 빌리러 다니는 동안만 같이 있어 달라고 부탁하는 엉뚱남(하정우)의 이야기가 구차하기는커녕 이렇게 멋지고 아련한 분위기로 완성될 줄 누가 알았을까. <멋진 하루>는 신선하고 산뜻하다. 얼핏 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까지 전부 그러하다. 이윤기 감독은 과장하지 않고 튕겨내지 않고 세심하게 조율하면서 아름다운 화음을 완성해냈다.

하루 동안의 이 마지막 이별여행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가슴에 바람을 일으키고 온통 흔들어놓은 것이 분명하다. “품위없이 구질거리는 이별을 품위있게 보듬어 안으려는 영화의 공기가 쓸쓸하고 애처롭고 아름답다”(남다은), “나의 한심한 삶을 하루 동안 지켜봐주고 떠난 천사”(송효정), “‘나의 사랑하는 적’인 인물과 서울의 어떤 하루의 환상적인 조합. 가장 멋진 서울의 로드무비”(변성찬)라는 평을 보면 알 수 있다. 육체적 손길 하나 없이도 서로를 따뜻하게 감싸안는 것 같았던 전도연과 하정우의 연기에 대한 감탄이 많았고, 올해의 촬영감독 부문에서 2위를 차지한 최상호 촬영감독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의견도 많았다. <멋진 하루>는 우리 곁에 불현듯 찾아온 판타지이며 작지만 보살펴야 할 감정으로 가득 찬 보물창고 같은 영화다.

3위 <추격자>

말 그대로 혜성같이 나타났다. 2008년에 등장한 걸출한 신인감독 나홍진, 그의 인상 깊은 장르영화 <추격자>가 단숨에 3위를 차지했다. 기대작이라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센 녀석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관객 500만명을 넘어서며 엄청난 호응도 확인했다. 몇몇 결함이 지적돼왔지만 평단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선정적 소재와 과도한 시각적 잔인성을 용인하게 만드는 긴장감있는 전개”(김지미)라는 평에서도 알 수 있듯 오랜만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물건 하나가 나왔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장르적 완성도와 기술적 숙련도가 무엇보다 장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추격자>는 영화 한편의 장점을 넘어서 좀더 큰 의미로도 받아들여진다. 한국영화의 어떤 장르적, 상업적 기준을 제공한 롤모델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한국형 장르영화의 모범답안을 제시”(김봉석), “옆길로 새지 않고 뚝심있게 밀고 나간 점이 흥미롭다. 한국 스릴러영화의 모범”(김종철)이라는 지적이 그렇다. 그 밖에도 영화가 담은 함의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이 영화가 주는 에너지의 근원은 추격의 욕망이다. <추격자>는 장르적인 관습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주제의식에서는 장르적인 관습을 넘어서고 있다”(이현경),“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의 무기력증과 불안이 담겨 있다. 장르적으로도 사회학적으로도 흥미로운 텍스트를 만났다”(안시환)는 평들이다. 여러모로 <추격자>는 2008년 가장 뜨거웠던 영화 중 하나로 말해질 것이다.

4위 <나의 친구, 그의 아내>

“신동일의 영화는 장르영화가 아니며 익숙한 방식의 예술영화도 아니다. 그가 말을 건네는 방식은 너무나 독창적이어서 그의 영화를 신동일표 영화라 부르고 싶다”(이용철), “그는 자기 세대- 386세대- 의 정신을 가장 자기 것으로 향유하며, 가장 현재적으로 전유한 감독이다. 계급의 문제와 자본의 가치를 좇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밀도있게 보여 준다”(황진미). <나의 친구, 그의 아내>에 관한 평자들의 지지선언이다.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5에서 가장 예기치 못한 돌풍은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가 아닐까 싶다. 일단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더러는 이 영화를 보고 단점을 지적하는 건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그중 도식적이라는 건 쉽게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나와 친구와 나의 아내와 그리고 그 사이에서 죽어간 아이의 관계를 배치시킨 다음 자본주의적 시스템을 아이러니하고 통렬하게 은유하고 가격하는 이 영화에 관해 많은 사람들은 강력한 지지를 표명할 수밖에 없었다. 늦깎이 개봉이라는 시기적 문제도 그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는 못했다. 신동일 감독의 영화가 어떻게 더 활발해질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그가 좀처럼 사회악에 관해 눈을 뗄 것 같지는 않다. 이른바 80년대 학번 감독들이 모두 빠져나간 그 자리에 신동일은 문득 들어와 지금 깃발을 흔들고 있다. 지금 이 시대의 강성 사회파 영화라는 놀라운 뚝심이 돋보인다.

5위 <중경>

장률 감독은 2008년에 <중경>과 <이리>라는 두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두 영화의 제목은 중국과 대한민국에 속한 두개의 도시 이름이며 그건 무엇이 먼저이건 간에 앞과 뒤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중경에서 살다가 이리로 건너가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 여자가 도착해 있는 땅 이리에는 또 한 여자가 살고 있다. 제작 초반에는 한편의 영화로 구상됐으나 완성은 개별 작품으로 나오게 됐다. 때문에 둘은 별개의 것이기도 하지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쌍둥이다.

그런데 눈여겨볼 만한 건 <이리>보다 <중경>이 특히 더 높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다. 장률 감독은 두편의 영화에 같은 무게를 두었겠지만 대체로 평자들은 <이리>보다는 <중경>이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한다. “홍상수, 김기덕과 함께 동시대의 걸출한 시네아스트. 아버지의 성매매 관계가 불러일으킨 문제를 딸이 더 복잡하게 풀어낸다. 딸과 아버지의 사유에 대한 과묵한 전복”(김소영)이라는 평은 장률의 <중경>을 꿰뚫는 말이다. 한편 “장률은 우리 마음의 폐허를 돌아보게 한다”(남동철)는 평은 장률의 세계를 한마디로 정의해낸다.

장률 감독은 두 번째 장편 <망종>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매년 <씨네21>의 베스트5 안에 들고 있다. 폐허를 다루는 감독 장률, 그가 <중경>에서 보여준 그 힘은 질기고 강하며 절실하다. 그 점이 <중경>을 이 자리에 오르게 했을 것이다.

과대 혹은 과소평가 받은 작품은

몰라봐서 미안해 <경축! 우리사랑>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과대평가받은 영화, 과소평가받은 영화를 선정했다. 지지가 많으면 그만큼 비판도 많은 것인가. <추격자>(6표)가 과대평가받은 영화로 꼽혔다. 평자들의 평이 극단적으로 갈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장르영화로서의 허점도 그 장점만큼 많다.”(허문영) <추격자>의 장르적 장점이 말해지고 있지만 실은 장르적 세공술이라는 측면으로만 국한해보더라도 단점 또한 많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는 윤리적 비판이다.“잘 만든 데뷔작인 건 알겠는데 이 영화의 윤리에 대해서 침묵하는 건 몰라서 그러는 걸까, 모르는 척하는 걸까.”(남다은) <추격자>의 뒤를 잇는 영화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5표)이다.“속도감있는 편집과 연기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한국영화를 능가하는 부분이 없다”(송효정)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과소평가받은 영화로는 <멋진 하루>(3표)와 <경축! 우리사랑>(3표)이 꼽혔다. <멋진 하루>는 베스트 순위 2위이며 <경축! 우리사랑>도 순위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적지 않은 평자들이 지지를 보냈다. 그러니 덜 평가받았다는 것보다는 덜 다루어졌다는 아쉬움인 것 같다. 평론가 남다은은 “이 작품을 전도연과 하정우의 무난한 연기호흡으로 지탱되는 가벼운 소품 정도로 여기는 대중의, 아니 평단의 분위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최근 몇년간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이는 이별여행이다”라고 <멋진 하루>를 평했다. 평론가 황진미는 “공동체를 진정한 의미의 뉴타운으로 변모시킨다. 이보다 전복적인 여성주의 텍스트를 본 적이 있는가”라고 <경축! 우리사랑>을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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