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내 젊음에, 내 작품에 용기를 준 영화들
문석 2009-01-29

배우 권해효가 추천하는 <선셋대로>

“배우로서 동병상련의 공포를”

이 행사에서 지난 3년 동안 개막식 사회를 봤는데 이제는 정식으로 친구가 돼 기쁘게 생각한다. 빌리 와일더 감독은 대학 시절부터 좋아했지만, <선셋대로>는 좀 다른 의미에서 내게 각별하다. 무성영화 시대의 한 여배우가 유성영화 시대를 맞아 몰락해가는 모습을 통해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영화는 연기도 훌륭하고 그림과 같은 장면 장면이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배우의 이야기라는 점이 가슴에 와닿는다. 나 또한 배우 입장에서 당장 내일 또는 몇년 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갖고 있는데, 이 영화는 그런 느낌을 전해준다. 대중으로서는 글로리아 스완슨의 모습이 과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로서는 동병상련 비슷한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김지운 감독이 추천하는 <소년, 소녀를 만나다>

“레오스 카락스는 MTV 시대의 작가”

지난해 <도쿄!>를 개봉하던 당시 젊은 관객의 반응을 보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을 잘 모르더라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감독이 되기 전 한창 영화에 흥분하고 열광할 때 레오스 카락스는 왕가위와 함께 대단한 존재였는데 말이다. 그는 당시에 함께 주목받았던 뤽 베송이나 장 자크 베넥스에 비해 이미지를 잘 다뤘던 것 같다. 이미지를 언어화하고 이미지로 사유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그를 MTV 시대의 새로운 작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영화적으로 보면 <나쁜 피>가 더 훌륭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강렬하게 잔상이 남아 있는 쪽은 <소년, 소녀를 만나다>이다. 감독이 되기 전 시네필로서 시네마테크에서 내가 열광했던 영화였다는 의미에서 이 영화를 추천했다.

류승완 감독이 추천하는 <캘리포니아 돌스>

“여체의 선정성과 장르의 쾌감을 동시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큰 사건을 다루거나 뭔가 휘황찬란한 영화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삼는 영화가 좋다. <캘리포니아 돌스>는 쉽게 얘기해서 루저 또는 주류가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다. 섹시한 여성들이 진흙 레슬링을 하면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그리는 이 영화는 쭉쭉빵빵한 여체가 주는 선정성과 장르영화의 쾌감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은 그 안에서 사람들의 내면을 뛰어나게 포착해낸다. 그리고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왠지 진흙탕 안에서 몸으로 부대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그래도 쟤들보다는 내가 낫지 않아?’ 하는 생각이 들지 모르니 말이다.

배창호 감독이 추천하는 <분노의 포도>

“이것이 존 포드의 스타일”

난 존 포드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스타인벡의 원작을 영화로 만든 <분노의 포도>는 포드의 여러 특징이 한데 어우러진 작품이다. 가족애를 강조하고 사회적인 시선이 담겨 있으며 시정적인 영상이 두드러지고 연출의 절제력도 돋보인다. 감독 특유의 센티멘털리티도 잘 어우러진 영화다. 포드 스스로도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영화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원작에 비해 사실감이 떨어지지만 당시 할리우드 시스템을 고려하면 이같은 소재를 다룬 것만 해도 인정할 가치가 있다. 또 소설과 달리 가족들이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것으로 결말지어진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인간의 방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관에 중점을 둔다. 나 또한 그의 이같은 로드무비에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변영주 감독이 추천하는 <>

“나도 시대극을 만들고 싶어”

나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이 누구나 봐야 하는 영화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왜 추천했냐고? 내 숨겨진 욕망 때문이다. 나는 예전부터 시대극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언젠가 감독으로 성공하면 시대극을 만들겠다고 다짐을 하곤 했다. <>이 흥미로운 점은 영국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을 배경으로 한 시대극의 틀 안에서 변주하는 방식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구로사와는 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능력만은 대단한 것 같다. 관객 또한 분명 그러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시대극을 만들고 싶냐고? 스릴러를 시대극 안에서 담아내는 영화다. 내 다음 다음 영화는 시대극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배우 안성기가 추천하는 <미드나잇 카우보이>

“우리에게 큰 힘을 준 아메리칸 뉴시네마”

솔직히 말하자. 나는 <미드나잇 카우보이>를 완전하게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이 영화는 1969년 만들어졌지만 한국에서는 75년쯤 개봉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남자 매춘부나 마약이라는 소재 탓에 검열을 통과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개봉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잘 기억나지 않지만 보나마나 뭉텅뭉텅 잘린 버전이었으리라. 그리고 나중에 비디오가 나왔는데 어찌하다 보니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 영화를 포함해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당시 우리에게 큰 힘을 줬다. 할리우드영화는 우리에겐 높은 벽이었지만,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사람들이 실제 사는 모습과 사회문제를 파헤쳐 우리에게 큰 용기를 안겼다. 관객과 함께 이 영화를 완전한 버전으로 볼 수 있다니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