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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야한 영화
고경태 2009-07-24

“아해가야하다고그리오.” 이상의 시 <오감도> 1호를 비틀어보았다. 본래는 “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다. 같은 구절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난해한 시다. 식민지 시절의 문인 이상이, 자신의 시 제목과 같은 2009년 영화 <오감도>를 본다면 “야하다”고 읊조릴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주변 지인들 중엔 그렇게 평하는 이가 드물었다. 영화평론가 한동원씨는 “키스신만 되면 극장 가득 울려퍼지는 닭뼈 빠는 사운드… 아무런 감흥이 없으니 이건 거의 눈물의 바다”라고 어디엔가 독하게 썼다. 에로스를 소재로 한 다섯편의 옴니버스영화라는데, 나로서도 ‘오감’이 열리지 않아 ‘유감’이었다.

최근 한국영화 중에 가장 야한 작품은 무엇이었을까. 한 후배에게 질문을 던지니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2006)과 <바람난 가족>(2003)을 꼽는다. 둘 다 문소리가 등장한 작품이다. 강혜정, 박해일이 나온 <연애의 목적>(2005)과 김민선의 <미인도>(2008)에 각각 한표씩 던지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색, 계>처럼 도발적인 충격을 던지며 야한 영화사의 새 지평을 열어준 작품은 못 본 듯하다.

AV(Adult Video)라 불리는 성인물은 어떠한가. 웹하드로 다운로드되는 성인물 시장의 문을 두드려보았다. 최근의 ‘국내 박스오피스 1위’는 <웹디자이너 이진아 셀프카메라>였다. 10위권 안의 다른 작품들은 죄다 <옆집 아줌마 벗기고보니> <과외선생 떡치기>처럼 거론하기조차 낯뜨거운 제목이었는데 1위만 차분하고 점잖았다. 올 초부터 6개월여간 독보적 선두라고 한다. 뭐가 다른지 궁금해서 일부러 보았다. 극영화 형식 대신 유사 다큐멘터리처럼 촬영하려 애쓴 흔적이 참신하기는 했다. 참고로 하나 더 밝히자면, 일본 성인물 중에선 배우 이름이 낯익은 <아오이 소라의 치한전차>가 1위를 기록 중이다. 멜로에 코미디를 섞은 작품이라고 한다. 그렇다 하여 합법적으로 다운받는 성인물에 획기적인 뭔가가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별로다. 어쩌면, 전혀 아니다. 여전히 AV시장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성인물은 웹하드 다운로드 시장에서 유통되는 전체 영화물량 수에서 절반의 비중을 뛰어넘었다. 당연히 매출 규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야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포르노 감상을 취미처럼 즐기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얼마 전 출간된 <15조원의 육체산업>이라는 르포집을 권해본다. 지은이인 이노우에 세쓰코는 일본 AV산업을 경제·사회적으로 뜯어보면서 대중의 성문화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한다. AV 감상에도 인문적 소양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한 책이다. 한데 이 책은 야할까 안 야할까. 다시 시인 이상의 문체로 답해보자. “아해가착하다고그리오.”(그럼에도 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