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개개인의 인물들에 의해 돌아가는 지구 <피쉬 스토리>
이화정 2009-07-29

synopsis 전설적인 펑크 록밴드 ‘게키린’의 곡 <피쉬 스토리>는 1975년 발표 당시 인정받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설이 된 노래다. 1982년, 불량배한테 당하는 여성을 구하는가 하면, 2009년엔 여객선 하이재킹을 저지한다. 미스터리한 전설의 곡 <피쉬 스토리>가 발표되기 1년 전 <피쉬 스토리>의 녹음날, 거듭되는 앨범의 실패로 낙담한 게키린의 멤버들은 평생 꼭 한번 마지막으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연주를 하는 것을 허락받는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게키린의 연주와 함께 사람들은 마침내 지구를 향해 돌진하는 혜성에 맞설 용기를 얻게 된다.

뒤섞기 좋아하는 감독과 마찬가지로 그걸 즐겨하는 원작자가 만나 두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밥 딜런의 노래를 통로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낸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의 감독 나카무라 요시히로와 원작자 이사카 고타로가 <피쉬 스토리>로 새로운 협업이다. 이번 작업은 무수히 꼬인 관계망 때문에 ‘감히 영화로 만들기 난해하다’는 평가를 들은 전작을 훌륭히 완수한 감독에 대한 원작자의 보너스 같은 영화다. 벌써 다섯편의 영화의 원작자가 된 이사카 작가의 작품을 탐내는 감독이 줄을 섰음에도 나카무라 감독을 택했으니 말이다(둘은 벌써 세 번째 협업이 될 <골든 슬럼버>를 촬영 중이다). 원작의 ‘사이버테러’가 ‘지구멸망’으로 변경된 걸 제외하고 이 두 감독과 작가의 주특기인 해체와 결합의 구성은 그대로다. 상업영화의 틀 속에서 색다른 시도를 하는 감독의 스타일도 뚜렷해지는 느낌이다.

<피쉬 스토리>는 하나로 보이는 선을 일일이 해체하는 수고스러운 작업이다. ‘지구멸망’이라는 거대한 선은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면면히 이어진다. 시대별로 나열된 에피소드들은 결국 선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점들이다. 미스터리한 록 발라드 ‘피쉬 스토리’는 결국 점과 점을 이어붙여 선으로 만드는 일종의 점토흙 같은 존재다. 이 과정에서의 나열은 좀 복잡하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전 과정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각각의 의미를 알 수 있는 퍼즐의 조각처럼 존재한다.

영화의 날선 형식에 비해 <피쉬 스토리>가 전달하는 주제는 소박하다. 혜성의 충돌로 인한 지구멸망이라는 거대한 사건에 노출됐지만, 멸망에 앞선 영화 속 인물들에게서 ‘영화적인’ 제스처를 발견하긴 힘들다. 지구를 구할 <20세기 소년>다운 영웅 집단이 결성된다거나, 불세출의 할리우드 영웅의 존재가 출연하는 허무맹랑한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곧 닥쳐올 불행에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레코드숍에서 수다를 떠는 점원과 손님이, 그리고 힘센 친구에게 늘 눌려사는 소심한 청춘이 있을 뿐이다. 결국 ‘누가 누구를 구한다’는 정의로운 명제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영화적인 허구일지 모른다. 오히려 지금 이 시기를 살아가는 무수한 점들, 개개의 인물들에 의해서 지구는 꾸준히 돌아간다. 수선떨지 않는 담백한 철학이 허무하지만, 그런대로 꽤 설득력이 있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