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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과 공식의 조합으로 생산된 영화 <프로포즈>
김혜리 2009-09-02

synopsis 뉴욕의 출판사 편집장 마가렛 테이트(샌드라 불럭)는 사내에서 ‘마녀’로 불리는 유능한 폭군. 앤드류 팩스턴(라이언 레이놀스)은 오직 편집자가 될 날만 고대하며 3년째 그녀의 수발을 든다. 비자문제로 즉시 추방될 곤경을 맞은 캐나다 출신 마가렛이 앤드류에게 결혼해줄 것을 명령하자 그는 승진을 조건으로 수락한다. 급조된 가짜 커플은 이민국의 눈을 속이기 위해 알래스카에 있는 앤드류의 본가로 약혼 발표 여행을 떠난다.

여기 프라다를 입는 악마가 또 한명 있다. 그리고 그녀의 무가당 두유 카페라테를 목숨줄처럼 붙들고 아침마다 질주하는 조수가 있다. 이번에는 남자 조수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풋내기가 보스에게 한수 배우는 이야기였으나 <프로포즈>가 가는 방향은 반대다. 몸을 옥죄는 슈트와 눈썹이 치켜 올라가도록 당겨 묶은 포니테일. 일급 편집장 마가렛 테이트로 분한 샌드라 불럭은 강한 여성의 전형적 패션을 두르고 영화 속으로 입장한다. 그러나 예민한 관객이라면 하이힐을 신은 그녀의 걸음걸이가 눈에 띄게 불안하다는 걸 눈치챌 것이다. 부축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강력한 신호다. 과연, 마가렛과 앤드류가 남자의 고향인 알래스카 시골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도시에서 소심한 부하 직원에 불과했던 앤드류는 웃통을 벗어던지고 강인한 면모를 보여주는 반면, 마가렛은 서툴고 무력해진다. 아름다운 전원, 가족과 이웃의 정은 경직된 마가렛의 자세를 풀어주고 결핍을 위로한다. 이어지는 고백. 알고 보니 마가렛은 어려서 혈육없는 외톨이였고 크리스마스마다 홀로 <폭풍의 언덕>을 탐독하는 정열에 목마른 영혼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설정에서 출발한 <프로포즈>는, 위장 결혼 로맨스 <그린카드>의 전개를 거쳐, 전원에서 도시인의 자아를 찾는 <닥터 할리우드>류의 고전적 해결로 나아간다. 벽촌 주민의 일치단결이 빚어내는 <로컬 히어로>식 코미디의 잔재미와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 선보였던 누드 슬랩스틱도 관객을 심심치 않게 한다. 전형과 공식의 조합으로 생산된 이 영화에서 개성적 요소는 배우 샌드라 불럭 정도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울고 싶을 때 헛기침으로 애써 무마하는 성격의 여인을 무난히 연기한다. 억눌린 욕망을 막춤으로 발산하는 장면은 코미디언으로서의 재능도 인증한다. <프로포즈>의 감독과 작가는 주연배우를 위해 이보다는 좀더 창의적인 시나리오와 연출을 제공해야 했다. 여러 결함에도 <프로포즈>의 결말은 오늘날 로맨틱코미디의 관객이 공유한 환상 하나를 암시한다. 나의 단점을 속속들이 알면서도 끝내 곁을 지켜줄 남자, 직업적으로 유능하면서도 내 품 안에서만큼은 온순한 여자. 당신들은 그런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냐고 <프로포즈>는 떠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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