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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을 위해, 즐겁게

장이모의 <금릉의 13비녀> (金陵十三釵)

●캐스팅 중 ●출연 미정

“많은 사람들이 내가 기수가 되어 모두를 어딘가로 인도해주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어떤 심오한 가치관이나 예술의 경지 혹은 선구자 같은 거창한 명제를 짊어지고 싶지도 않고, 그러한 적도 없다.” 2010년을 앞두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는 장이모 감독은 무척이나 편해 보였다. 아니, 본격적으로 ‘13억 인민의 감독’이라는 어마어마한 칭호를 무책임하게 버리려는 사람치고는 수상할 만큼 너무 즐거워 보였다. 올림픽, 발레, 건국 60주년 행사 연출까지 지난 3년간의 외도로 생긴 갈증을 단숨에 채우려는 듯, 올해 장이모 감독은 여느 때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일 예정이다. 지난해 말 코미디영화 <심플 누들 스토리>를 개봉했고, 3월 <산사나무>라는 멜로영화를 내놓을 그는 제작비 1억달러에 할리우드 배우 톰 행크스, 톰 크루즈, 브래드 피트 등과 접촉 중인 난징대학살 소재의 전쟁영화 <금릉의 13비녀>를 준비 중이다.

일본군이 난징을 점령한 1937년 겨울.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교회 성가대의 슈주엔은 미국인 목사의 도움으로 친구들과 함께 교회로 몸을 숨긴다. 시체 더미 속에서 살아 나온 부상병들과 6명의 성가대 여학생들, 교회의 성직자들이 함께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 불안 속에서 잠시 고요한 시간을 보내던 중, 난징시 한 유곽의 매춘부 13명이 교회로 피신해 들어온다. 슈주엔은 그녀들 중에서 아버지의 연인이었던 위모를 발견한다. 이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난징대학살이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갈가리 찢긴 인성과 함께 개인, 민족의 원한과 증오, 복수를 풀어낸다.

대만영화 <소녀소어>, 첸카이거 감독의 <매란방>의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옌거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할 거대 프로젝트이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 것은 5세대 감독으로서 장이모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주제들의 종합이다. 부모의 불륜에 대한 복수, 증오, 밀폐된 공간, 남성의 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과 발버둥. 소설의 각색을 맡은 사람이 <국두> <홍등>의 시나리오를 쓴 리우헝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영화가 단순히 스케일과 화려함에 가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충분히 해볼 수 있다.

하지만 철학적인 명제와 가치관을 벗어던지고 인민을 위한 봉사, 즐거움이라는 좀더 알기 쉬운 대전제를 선택한 장이모 감독은 고통과 갈등에서 탈피해, 이해와 희생, 복수, 승화라는 훨씬 더 대중적인 방식으로 이 영화를 만들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슈주엔과 위모의 화해, 여학생들을 대신해 위안부를 자청하는 13명의 여성들, 성가대 복장을 하고 가슴에 가위를 품은 채 일본군과 대적하려는 그들, 그리고 영웅적인 죽음까지. 이런 통속적인 영화의 결말은 중국영화의 세계화를 이루려는 제작자 빌 콩의 의도와도 딱 맞아떨어진다. 이미 개봉했던 난징 소재 영화들이 넘지 못했던 민족성, 국가 위상 고취라는 장벽을 장이모 감독이 과연 어떻게 영화적으로 풀어갈지를 상상해보는 것도 이 영화가 기다려지는 또 다른 이유다.

tip <금릉의 13비녀>는 원래 소설 <홍루몽>에 등장하는 13명의 미녀를 지칭하는 말. 따라서 할리우드 남자 배우 외에 여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때 인터넷에서는 <색, 계>의 탕웨이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장이모 감독은 영어 대사를 소화할 수 있는, 난징 출신의 신인배우를 찾는 중이라고 밝혔다. 공리, 장쯔이에 이어 누가 장이모의 여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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